유럽적 보편주의 - 권력의 레토릭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김재오 옮김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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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두꺼운 책 보다는 얇은 책을 찾게 되고 (순저히 들고 다니기 편하다는 이유로) 그래서인지 많은 시간 책장에 ()버려두었던 이 책을 꺼내 읽게 됐다. “대중강연을 단행본 형식으로 정리했기 때문에 읽기 어렵지 않았고(그렇다고 쉽다는 뜻은 아니다)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때로는 이런 식으로 강연록을 읽은 다음 주저를 읽는 게 도움 될 때가 있다. 월러스틴처럼 폭넓은 논의를 한 사람의 경우는 특히 더.

 

우리가 전지구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 가치라고 믿는 것들이 실제로 전지구적인가에 대해 묻는다. 일반 독자들도 읽기 쉽고 편하다.

보편적이라고 인식되는 가치나 윤리 역시 역사화해 사고하여 지배이데올로기로부터 진정한 보편주의를 견인할 것을 주문한다. 국제사회의 약소국에 대한 개입 정당화,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의 경계, 이행의 시대를 통과하는 지식인의 역할 등 21세기 지구화시대의 화두에 대한 진지하고 통쾌한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저자가 여러 방식으로 논의해왔던 것들을 강연의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보편성의 허위와 위선 그리고 권력, 지배이데올로기, 세계체제, 지식인이라는 존재 등등 어디선가 저자가 언급했고 다뤘었던 내용을 축약해서 설명해주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핵심적인 점만 강조하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초 제국주의시대에도 제국 팽창의 명분이 문명의 빛을 세상에 비춘다는 계몽주의의 확산이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성’ ‘자유’ ‘인권등의 보편주의 담론은 언제나 역사적으로 특수한 정치성을 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월러스틴은 이러한 담론이 적어도 16세기 이후로 근대세계체제의 역사 내내 강자들의 기본적인 레토릭을 구성해왔으며, 결국에는 편파적이고 왜곡될 수밖에 없는 유럽적 보편주의’(european universalism)일 뿐임을 강조한다.

자연법에 기초하고 기독교의 세례를 받아 문명화된 서구가 타자에 대해 우월하다는 인식에 입각한 유럽적 보편주의는 결국 현실세계에서 타자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과 착취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월러스틴은 이러한 보편주의의 정치성을 낱낱이 밝혀내면서 그가 보편적 보편주의’(universal universalism)라 일컫는 진정한 보편주의를 모색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옳다고 믿어온 정당성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지지, 그리고 진정으로 집단적이고 따라서 진정으로 전지구적인 보편주의에 대한 지속적인 탐색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 더불어 월러스틴은 유럽적 보편주의와 보편적 보편주의의 싸움을 현세계의 핵심적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이해하고 그 결과가 향후 세계체제의 향방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가 될 것임을 역설한다.”

 

아마 저자 본인도 자신이 내놓는 대안에 대해서 조금은 모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의식에는 공감할 순 있어도 제안과 해법에는 막연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시하는 생각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떤 식으로 그런 방향으로 향할 수 있을지 뚜렷한 방법이 떠올리지 않을 뿐이지.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차분하게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지배층이 만들어낸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평등한 체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강자의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넘어서 인간성의 새로운 윤리적 기획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보편주의를 둘러싼 앞으로 다가올 20년에서 50년 사이의 싸움은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 사이의 결정적인 헤게모니 경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지식인은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며 동시에 분명한 윤리적 선택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방향을 타진하는 일을 지속해야 한다.

물론 지식인이 이런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강자들로부터의 압력을 견디는 일이며 초조하게 변화를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답답하게만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월러스틴은 이행은 언제나 어려운 과정이며 적확한 분석만이 미래의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유럽적 보편주의의 시기를 지나 보편적 보편주의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가며 역사적 분석의 깃발을 놓지 말자는 그의 주장은 그래서 더욱더 시대의 요청으로서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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