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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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계속해서 미루기만 했다. 괜한 핑계만 만들면서 한도 끝도 없이 미루고만 있다가 이제야 읽게 됐다.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만 앞섰는데, 막상 펼쳐보니 생각보다 수월하게 읽혔다.

 

개정증보판 <징비록>은 기존 <징비록>(2003년 출간)의 내용상 오류를 바로잡고 편집을 새롭게 했을 뿐 아니라, 유성룡이 <징비록>을 쓰는 데 밑바탕이 된 글을 모아 '유성룡 종군의 기록'이란 이름으로 뒤에 덧붙였다. 그 글은 유성룡의 저작집인 <서애집>에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옮긴이가 직접 가려 뽑고 요약, 정리한 결과물이다.”

 

임진왜란이 어떤 성격의 전쟁이고 그 의미에 대해서 무슨 말이라도 꺼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알고 있는 게 너무 부족하니 뭔 말을 꺼내기 전에 우선은 좀 알아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읽게 된 징비록지난 실책을 반성하고 후일을 대비하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몸소 겪고 지켜본 류성룡이 쓰디쓴 마음으로 전란이 어떤 식으로 시작해서 끝났는지를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류성룡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군사 업무를 관장하는 전시 재상이었다. 임진왜란이 이후 영의정 자리에서 물러나 전쟁을 회고하며 반성하는 의미로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유성룡은 1542101일 경상도 의성현 사촌리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과 어머니 안동 김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호는 서애(西厓),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4세부터 글을 읽고 14세에는 향시에 합격하는 등 명석한 두뇌를 지녔던 그는 일찍이 많은 시험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지냈다. 21세에 퇴계 이황에게 가르침을 받고 23세에 생원 회시 1, 진사시 3등으로 급제하여 이듬해에 성균관에 입학했다. 25세에는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하면서 병조좌랑, 이조좌랑, 홍문관 부제학, 대사헌,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의 관직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직후에는 영의정에 임명되었다가 파직되지만 다시 도체찰사의 자리에 올라 조선의 내정과 군사 상황을 총괄하였다. 이순신 장군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유성룡은 왜란에 대비하여 이순신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등용하여 왜란으로 인한 국가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자 힘썼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끝난 1598, 북인의 탄핵으로 영의정에서 파직당하고 이듬해에 고향인 하회마을로 낙향하였다. 이후 조정에서 다시 벼슬을 내렸으나 저술에만 힘썼으며, 이후 병산서원에 위패가 모셔졌다. 그가 저술한 임진왜란 회고록인 징비록은 당시의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실제적인 묘사와 기록이 담겨있다. 더불어 지난 실책을 반성하고 후일을 대비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어 가치가 높은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징비록에 대해서 뭘 더 말할 건 없을 것 같다. 워낙 알려진 책이고 국보로 지정되었을 정도니 덧붙일 건 없을 것이다. 임진왜란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면 꼭 읽어봐야 할 글이고, 그걸 떠나서도 전란의 과정에서 보게 된 다양한-서글픈 모습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생각보다 술술 읽을 수 있으니(물론, 기분 좋게 읽을 순 없다) 아직 주저하는 사람이라면 편한 마음으로 읽기를 시도하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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