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기와 거주하기 - 도시를 위한 윤리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임동근 해제 / 김영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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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분야의 책을 검색하던 중에 알게 된 짓기와 거주하기는 제목만 봐서는 뭘 다루는지 아리송하게만 느껴지지만 도시와 공간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척 흥미롭게 읽혀질 것이다. 그런 분야에 관한 책들을 즐겨 읽기는 하지만 이번처럼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고대 아테네에서 21세기 상하이까지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도시에 대해 사유하고 제안한다. 파리, 바르셀로나, 뉴욕이 어떻게 지금의 형태를 갖게 되었는가를 돌아보면서 제인 제이콥스, 루이스 멈포드를 비롯하여 하이데거,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 등 주요 사상가들의 생각을 살펴보는가 하면, 남미 콜롬비아 메데인의 뒷골목에서 뉴욕의 구글 사옥, 한국의 송도에 이르는 상징적 장소를 돌아다니며 물리적인 도시가 사람들의 일상 경험을 얼마나 풍부하게 하고 사회적 유대를 강화시킬 수 있는지, 혹은 그 반대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의 박학함에 놀라게 되지만 특유의 글쓰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읽게 해주고 있다.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다가 그것을 곧바로 사회학적 이론과 사회 현실의 논의로 연결하며, 수시로 화제를 바꾸면서 좌충우돌하는 것 같지만 어느새 핵심을 말하는 독특하다고 할 수 있을 글재주고 여러 논의를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다루고 있어 편한 기분으로 글을 읽게 해준다. 다만, 다루는 영역이 무척 방대하고 여러 사상가들과 별의별 사례들이 순서 없이 이어지고 있어 뭘 얘기하고 있는지 순간적으로 놓칠 수도 있으니 너무 느슨하게 읽진 말아야 할 것 같다.

 

건설되는 물리적 도시인 ville’과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정신적 도시 시테cite’의 관계가 끊임없이 변주되어 있는 이 책에서, 세넷은 넓고 깊은 지식과 섬세한 통찰력을 발휘하여 닫힌 도시, 즉 건축적 분리와 사회적 불평등이 서로를 강화해주는 도시가 어떻게,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살펴보고, 그 대안으로 열린 도시를 제안한다. 열린 도시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고 받아들이며 복잡성을 다루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고, 기후위기 같은 단기적이면서도 장기적인 위협과 불확실성에 맞서서도 더 잘 회복될 수 있다.”

 

도시와 공간에 대해서 기초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다루고 있어 그쪽 영역에 관심이 있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잘 다루지 않는 부분도 충실히 살펴보고 있어 폭넓은 시야에 감탄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입장이 확고한 점도 있어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불편한 혹은 반박하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읽게 될 것 같다.

 

세넷은 지어진 것the built과 사는 것the lived, 즉 빌과 시테 사이의 균열이 세 가지 이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한다. 첫 번째는 도시의 팽창, 고속 성장이다.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의 도시지역 인구비율은 92%에 이른다. 세계적으로도 55%,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며, 이 비율은 계속 증가하여 2050년이 되면 세계인구 10명 중 7명이 도시에 살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가 가장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상대적으로 저개발 상태였던 인도, 중국, 나이지리아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인데, 이들 지역의 델리, 상하이 같은 도시에서 일어나는 폭발적 성장과 그에 따른 몸살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고속 성장을 이루어낸 우리에게도 익숙하다.(4)

두 번째는 타자의 배제다. 20151, 독일 드레스덴에서 페기다(PEGIDA)라는 반이슬람 단체가 시위행진을 했다. 이들은 우리 문화의 보존을 위해 독일에서 이슬람의 추방을 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드레스덴 외의 대다수 지역에서는 반페기다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더 많았고, 1년도 채 안 되어 독일은 시리아 내전에서 탈출한 난민들을 형제로서 맞았다. 이제 통합이 남았다. 세넷에 따르면 난민들에게 통합은 실제적으로는 구원이지만 경험적으로는 상실인데, 이들이 새로운 사회에 통합되어 이웃이 될 수 있을까? 난민 같은 종교적, 인종적, 민족적, 계급적 타자를 오늘날의 도시는 공간적으로 분리시킨다. 우리가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대표적인 예다.(5)

세 번째는 테크놀로지 이슈이다. 테크놀로지는 삶을 부드럽고 매끈하게 만들어 타자의 무게를 가볍게 해준다. 꿈의 직장을 넘어 신의 직장이라고까지 불리는 구글. 세넷은 구글 사옥을 둘러보며 세탁소도 있고, 의사를 만날 수도 있으며, 체육관에서 체력 단련도 할 수 있는 이런 자족적 공간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묻는다. 이런 건축 양식은 주변 지역의 주택 가격과 임대료를 올려 젠트리피케이션을 조장하고, 회사가 외부의 자유 시장을 파괴할지라도 내부에서는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교환을 자극하도록 지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아무 저항 없는 내향적 환경이 정말로 창조성을 고무할까? 세넷은 마찰 없는 사용자 친화적이라는 가치가 사용자들에게 어떤 정신적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한국의 송도와 브라질의 쿠리치바 등 두 종류의 스마트 시티를 비교하며 보여준다.(6)

이것이 세넷이 읽은 오늘날의 도시와 속하지 않는 곳을 헤매면서 스스로를 정착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존재”(184)인 인간의 모습이다. 하지만 한 인터뷰에서 인생의 끝자락에서 낙관론자가 되는 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그게 정말로 가능하다고 믿는다고 말한 세넷은 도시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모두에게 열린 도시를 만들 수 있을지 자신의 실험과 도전을 공유하며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한다.“

 

위와 같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고, 저자의 생각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되고 그 고민을 함께 해보게 된다.

 

 

 

 

참고 : 인천 송도국제도시가 잠시 언급되고 있다. 당연히... 부정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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