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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패권의 몰락 - 혼돈의 세계와 미국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한기욱, 정범진 옮김 / 창비 / 2004년 5월
평점 :
현실을 비판적이고 온전한 정신으로 분석하는 지적 과제, 우리가 오늘날 우선권을 부여해야 할 가치들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도덕적 과제, 그리고 ... 현재의 혼돈스러운 구조적 위기에서 벗어나 ... 우리가 즉각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는 방도를 결정하는 정치적 과제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근대세계체제 시리즈를 통해서(최근 4권까지 발표되었다) 세계체제론이라는 입장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한 그는 단순히 과거를 살펴보고 정교하게 분석해내는 학자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그 이론적 틀을 지금 현재에도 적용해서 적극적으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고 있기도 한 실천가이기도 하다.
‘미국 패권의 몰락’은 그런 실천가의 입장에서 쓴 글들을 모은 책이고 구체적으로는 9.11 테러 이후의 상황 속에서 미국에 관해 그리고 다른 여러 관심들과 반체제운동, 앞으로의 가능성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2001.09.11 뉴욕 세계무역센터(WTC)빌딩 테러부터 2003.03.20 이라크 전쟁까지
월러스틴은 충격적이었던 9.11 테러로 인해서 그리고 그 이후 순식간에 연이어 일어난 상황들로 인해서 모든 것이 그 이전과는 달라진 것이 아니라 이미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헤게모니 hegemony 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으며 자본주의 체제 또한 그 내적 모순으로 인해 붕괴되어가고 있는 것이 정확한 상황 분석이라는 입장에서 지금 현재를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아보려고 하고 있다.
경제력에 있어서도
정치력에 있어서도
이미 예전의 강함을 잃고 저물어져가고 있었으며 그나마 군사력으로 세계를 움켜쥐고 있는 지금이지만 그것도 점차 어려워질 것이라는 그의 입장에 한편으로는 납득하면서도 트럼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너무 앞선 생각은 아닐까? 라는 의문도 들게 된다.
다만 그가 계속해서 강조하듯 앞으로의 변화와 가능성을 위해서는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 그리고 그 이후 때때로 가능했던 정치권력 획득을 통한 개혁과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며 그 방식은 보다 민주적이고 다양한 의견이 함께 아우러져야 할 것이라는 주장에는 공감하게 된다. 다만 그 느슨한 연대가 흐리멍덩하고 갈팡질팡한 선택이 안 되도록 어떤 대안이 필요한 것인지는 막연하게만 느껴진다.
월러스틴이 자주 반복해서 말하는 이행의 시대에서 과연 우리들의 지적 과제, 도덕적 과제, 정치적 과제는 무엇인지를 더 잘 살펴봐야만 할 것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더 잘 알아봐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쉽게 생각되진 않기에 모호한 가능성이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해봐야 할 것 같다는 어정쩡한 긍정을 해보게 된다.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까? 어려운 숙제지만 그걸 풀어내야만 보다 낙관적인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월러스틴의 말에는 그다운 분석과 결론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을 송두리째 흔들면서 새로운 입장과 새로운 시선을 통해서 이해해보도록 해주는 월러스틴의 분석이 조금은 낯설고 당황스럽지만 그가 학자로서 그동안 꾸준히 연구했던 세계체제론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분석이고 세계체제론이라는 틀을 현실에 비춰본다면 어떤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 직접 시도하고 있어서 세계체제론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약간의 도움이 될 것 같다.
여러 관심을 한 책에 묶어놓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산만하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9.11 테러 이후의 상황 속에서 가장 시급하게 논의해야 할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며 읽는다면 적당한 주제들로 꾸며져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될 것 같다.
다른 월러스틴의 책도 구할 수 있게 된다면 잘 읽어봐야겠다. 그게 아니면 읽은 다음 집 어딘가에 나뒹굴고 있을 월러스틴의 책을 제대로 읽어보기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