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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누아르 1 : 3월의 제비꽃 (북스피어X) ㅣ 개봉열독 X시리즈
필립 커 지음, 박진세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베를린에 필립 말로가 있었다면 어떤 활약을 펼쳤을까?
베를린 누아르 혹은 베른하르트(베르니) 귄터 시리즈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않았다. 하드보일드 소설 혹은 범죄소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소문처럼 전설처럼 알려졌다고 하지만 그다지 그쪽 분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은지 생소하게만 들렸다.
어렵사리 국내에 번역-출판이 됐다는 베를린 누아르 3부작에 대해서 주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어차피 범죄소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그리 없을 것이니 당연한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도 관심 있어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알게 됐고 우연찮게 읽게 됐다.
저자인 필립 커의 기본적인 세계관은 레이먼드 챈들러가 창조한 위대한 (추악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타락한 기사이자 범죄소설 주인공의 영원한 교본과도 같은) 필립 말로가 베를린에서 활동했다면? 이고 그 설정은 무척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다만 아쉽게도 그 흥미로운 생각은 생각 이상의 무언가를 안겨주지는 못하고 있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 ‘3월의 제비꽃’을 읽으면서 주인공 귄터의 모습은 필립 말로의 모습을 많이 찾게 된다. 동일 인물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냉소적인 말투와 독백들
허무와 염세가 잔뜩 묻어나는 모습
당돌하거나 건방지다고 말할 수 있는 행동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모습들과 반골기질 혹은 반발심으로 가득한 모습들
전혀 고분거릴 생각 없는 위태로운 모습
필립 말로가 자주 보여줬던 모습을 많이 확인할 수 있고 저자는 그걸 멋지게 재현해내고 있다. 다만 그 반복은 그저 반복에 머물러 있어 한편으로는 반갑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실망도 하게 된다.
필립 말로의 그림자가 너무 짙지만 다행인 것은 이 시리즈가 영리하게 흥미로운 시대와 배경 속에서 활동하도록 해 생동감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1936년 독일
저자는 나치가 득세하던 시절의 독일이라는 공간을 히틀러에 열광하고 찬양하던 시기의 베를린을 무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이색적인 분위기를 그리고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단순히 범죄소설로서 완성하는 것이 아닌 역사소설의 성격을 더해서 읽는 재미를 만들고 있고 그래서인지 그 당시의 불길하면서도 폭발직전의 광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광기에 빠졌거나 광기가 거슬렸던 사람들 모두 질식 직전의 그 당시를 신경 쓰이도록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아쉽게도 무대와 시대적 배경은 흥미롭지만 귄터가 겪는 사건 자체는 특색이 있다고 말하기가 어려워 색다름 이상을 찾지는 못하게 된다.
수상한 의뢰
살인사건과 잃어버린 물건
수수께끼들
사건을 파고들수록 점점 더 늘어나는 의문들
겉으로는 안정된 것 같지만 비밀국가경찰-게슈타포로 대표되는 넘치고 만연된 폭력과 위협
나치 시대의 베를린의 겉모습과 그리고 음침한 뒷모습
구불거리며 진실을 조금씩 찾아가지만 계속해서 뒤집어지고 뒤바뀌는 상황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고 그 과정에서 예측 가능한 반전 그리고 허탈한 마무리까지
사건의 진행은 어지럽고 복잡하게 만들고 있고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와 등장인물 그리고 수수께끼가 내놓아진다. 열심히 읽지 않고 적당하게 읽다보면 대충 어떤 식으로 반전이 있을 것이고 상황이 뒤집어질지 예상할 수 있고 크게 틀리지 않는 수준으로 그런 진행을 보인다. 그렇다고 진부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읽는 재미는 충분히 있으니 나쁠 것 없는 완성이라 말할 수 있다.
그저 그렇고 전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진행을 보이다가 갑작스럽게 사건의 진행은 속도를 내고 그렇게 약간의 반전으로 마무리하리라 생각했지만 느닷없이 저자는 이 소설이 나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하려고 한다.
다하우 강제 수용소
끝부분의 약간을 할애해서 저자는 그 시대의 잘못을 분명하게 알려주려고 하고 있다. 밋밋하게 다루기보다 미치광이들이 어떻게 날뛰었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해주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주인공 귄터를 수용소에 향하도록 만들고 이건 일부러 의도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야기 진행을 더 흥미롭게 만들기보다는 나치의 광기를 더 직접적으로 폭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이런 식의 진행보다는 오히려 귄터가 나치 시대의 광기에 대해서 처음부터 반감을 갖고 있는 주인공이 아닌 무관심하고 모호한 태도를 보이다가 점점 적나라한 진실을 알아가며 환멸하게 되는 인물로 그렸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저자라면 그런 식으로도 충분히 잘 풀어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조금은 욕심이 나게 된다.
처음부터 나치에 대해서 그리고 그 시대 정서에 대해서 분명하게 부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쉽게 귄터라는 주인공에 호감을 갖게 되지만 그건 너무 간단한 방식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립 말로를 좋아하고 귄터나 필립 말로처럼 냉소적이고 제멋대로인 주인공을 좋아하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며 읽기는 하지만 약간의 아쉬움 또한 느끼게 된다.
좋게 생각한다면 무척 흥미롭고 범죄소설이 만들 수 있는 여러 재미들로 꾸며진 소설이지만 달리 본다면 필립 말로가 나치 시대의 베를린에서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훌륭한 재현이지만 새로울 것 없기도 한 결과물이기도 할 것 같다.
이걸로 끝이었다면 단정하면서 마무리를 하겠지만 3부작 시리즈이니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시리즈가 이어졌다고 하니 어쩐지 다 읽어보고 판단하고 있다.
매력 있으니까.
누가 필립 말로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까? 그것도 나치 시대의 베를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