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일인의 삶
브룬힐데 폼젤 지음, 토레 D. 한젠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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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5일 금요일

The April Bookclub

 

어느 독일인의 삶

-괴벨스 비서의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브룬힐데 폼젤 지음. 토레 D. 한젠 엮음/박종대 옮김

 

나치 시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그 속에서 독일인으로, 히틀러 지휘 아래 살아갔던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무엇을 생각하라고 이 책이 나왔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몰랐다는 주장을 하는 폼젤. 지금 나도 그 무지의 밭에서 나뒹굴고 있다. 정치하는 인간들은 다 극악무도한 것들이라고 욕만 하고, 알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그런 인간들의 깔아주는 판 속에서 허우적대며 불안을 다독이려 애쓴다. 세상이 썩은 정치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에 대한 저항은 아무것도 없다. 입만 나불대고 있고, 실상은 내 몸사리기에 바쁘다. 더는 괴롭히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밖에 없다. 가만히 있는 게 중간은 가는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말을 하면서 행동하는 사람들을 비판의 그릇 안에 집어 넣는다. [거짓과 증오의 확산으로 동조자를 점점 늘려가고 있다.] 아닌 것에 대해서 아니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멋진데. 건강한 건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독일은 국가 이기주의와 그에 따른 행동으로 벌을 받았어요. 거기엔 사회와 정치에 대한 무관심도 한몫했겠죠.] 무지보다는 외면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나도 세상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계속 당하면서도 저항하지 않고 계속 당하게 된다.

히틀러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그들의 잔혹성이 세상에 알려지고, 폼젤이 수용소에서 생활을 마치고 난 뒤, [요즘은 속으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요. 너한테 일어난 그 모든 일을, 그렇게 고약하고 나빴던 일들을 네가 참 잘 이겨 냈구나.]라고 말한다. 그래야 삶이 살아져서 일까? 아니면 원래 이런 인간이었기에 그 지난했던 시대를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일까.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일본인들도 조선인들을 외면하면서 살아간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 그리고 폼젤처럼 생각하면 끝이었겠지. 멀지 않은 시대에 겪었음에도 되물림하지 않으려는 노력보다는 안일한 현재만을 살고 있는 나에게 쉬이 가라앉지 않는 먹먹함을 안겨주는 말이었다.

 

나에게 피해가 없다면 다른 이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쉽게 외면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 [우리는 오히려 순종하는 가운데 조금씩 서로를 속이고, 거짓말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에 익숙해졌어요.] 나만 건드리지 말아줘. 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삶을 개인 이기주의 삶으로 착각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 붕괴. [우리가 무관심과 수동성으로 도덕적 붕괴에 빠질 위험은 상존한다.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도 무덤덤하게 대하고, 자신의 안전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폼젤의 이야기가 끝나고도 한참을 엮은이가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대표적으로 이야기하면서 포퓰리스트들에 대항한 우리들의 자세를 함양하고 행동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바로 외면하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늘 타인들을 조심하면서 살아왔는데, 그러는 나는 내 속의 보통 사람입니다. 그 보통 사람 속에는 군대 전체의 배반과 폭력을 조장하기에 충분한 관성적 부조리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다들 얼마간 품고 있는 폼젤을 늘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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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 - 작가들의 작가에게 듣는 글쓰기 아포리즘
줄리언 반스 외 지음, 존 위너커 엮음, 한유주 옮김 / 다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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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

작가들의 작가에게 듣는 글쓰기 아포리즘

줄리언 반스, 커트 보니것, 스티븐 킹 외 지음

 

유튜브의 글쓰기 관련 동영상을 보면, 올라오는 추천 책 중의 하나.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처럼 명언을 적어놓고, 자신의 생각을 이어 쓴 글도 음... 인데, 아예 명언 제조기 집은 좀 당황스럽다. 책은 인물, 동료작가, 비평, 대화, 좌절, , 편집, 용기, 장르, 문법 등 각 소주제에 맞는 유명 작가들의 생각의 말들을 열거해 놓았다. 작가마다 패턴이 있고, 그래서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이 있다. 나에게 맞는 말들을 선별해서 골라서 보면 좋겠다만, 그런 혜안이 작동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글들의 이어짐이 피로도를 올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 몇몇 말들을 담아봤다. 담은 걸 줄인게 이정도네... ...

 

-자질과 자격-

원한은 작가의 눈을 예리하게 만든다. 적개심은 작가의 킬러 본능을 날카롭게 한다.

존 그레고리 던

 

인간이 불멸자인 이유는 피조물들 사이에서 홀로 지칠 줄 모르는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 아니라 연민과 희생, 그리고 인내를 포용하는 영혼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포크너, 1950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비결-

많은 사람이 중도에 글쓰기를 포기한다. 당신이 그만두지 않는다면, 글을 고친다면, 점점 더 좋은 출판사에서 책을 내게 된다면, 당신은 비결이 뭐예요? 라는 질문이 실은 질문이 아니라 즐거우세요?“라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로버트 립사이트

 

-왜 쓰는가-

글은 찬사를 받으려고 쓰는 것도 아니고 읽는 사람을 생각해서 쓰는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다. 자신과 펜 사이에서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들을 글로 써내는 것이다.

브렛 이스턴 엘리스

--> 내가 글 쓰는 이유

 

-글 쓰는 습관-

매일 아침 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 과정이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든다. 이걸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추어로 남는다.

제럴드 브래넌

-->글에 대한 자세

 

작가의 삶

자네가 아버지와 언쟁을 벌였다니 유감이군. 하지만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자는 자네가 가고 있는 길가에 앉아 있는 셈이고, 자네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은 오직 하나뿐인 것 같네. 그건 바로 자네가 이 책을 다 써야하고, 그 다음에는 다른 책을 써야한다는 것이지. 만약 그게 뭐든, 스스로 파멸을 극복하고, 스스로 하던 일을 멈춘다면, 그게 한순간이 아니라 말일세. 그렇다면 자네는 어쨌든 작가가 아니며 나와 의논할 일도 더는 없네. 자네가 못되게 굴고 불평하고 싸우고, 허우적거려야 한다는 말이 아니네. 다만 중요한 건 자네가 자네의 일을 마쳐야 한다는 것일세. 그 가정에서 설사 누군가 다친다고 해도 자네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네. 하지만 유별나다고 말하는 사람들로부터 언젠가 너그러이 받아들여질 순간이 올 거란 기대는 추호도 하지 말게. 그런 일은 없을 테니! s조차도 아직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네. 언젠가 소나무로 짠 관에 들어갔을 때에야 안전한사람으로 여겨질 테지. 내가 쓴 <분노의 포도>는 많은 독자가 읽기도 했지만 가끔은 불에 태워지기도 했네. 공공 도서관의 사서들은 나의 가족들을 잘 알고 있는데, 부모님이 먼저 돌아가셔서 이 부끄러움으로 고통스러워히지 않으셨으니 운이 좋다고 말했네.

-->걱정말고 논문, 글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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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빙수의 전설 웅진 모두의 그림책 21
이지은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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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빙수의 전설

이지은 글, 그림

 

<친구의 전설>을 읽고, 마음이 아렸다.

가슴에 뭉그러진 감 같은 주황빛 물질이 스멀스멀 차올라서 뭉게지는 그 뭉그러짐이 나를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민들레가 자신을 불어주기 전의 호랑이에게

우리 친구 맞지? 라는 말이

길가에 핀 민들레를 쉬이 지나치지 못하게 했다.

 

팥빙수의 전설은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한다.

글에 음을 넣어서 아이들에게 읽어주니, 대단히 좋아한다.

달다 달다 꿀 달다. 달다 달다 꿀 달아

새콤 달콤 달달콤

빠샤 와 같은 단어에 음을 넣어서 이야기하면 웃음 코드에 잘 들어맞는다.

감동은 없다. 말 그대로 팥빙수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맛있는 거 주면 안 잡아먹지 하며 외치는 호랑이의 이야기를 버무려서 만든 글이다.

그림, , 아이들의 코드를 잘 저격해서 만든 책이다.

친구의 전설과 합체해서 읽으면 감동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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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양식집에서 - 피아노 조율사의 경양식집 탐방기
조영권 지음, 이윤희 그림 / 린틴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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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양식집에서

조영권 지음/이윤희 그림

 

오래된 추억의 돈까스집. 돈까스에 소주를 시켜서 먹는 다는 것을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돈까스에 소주라니. 다시 들어도 생경한 조합이다. 그런데 경양식집에서 돈까스와 소주를 시켜 먹는 이가 있으니 메뉴에 있겠지?

 

목차에는 어느 지역인지 나와 있지 않다. 경양식집 상호와 먹은 메뉴를 적어놓고, 그 챕터에 가서야 어느 지역에서 먹었는지 알 수 있다. 아쉽다. 책 초반에는 신선했다. 동네에 있어도 잘 가지 않을 것 같은 허름한 돈까스집, 외진 곳에 가서 맛을 평가하는게 말이다. 그리고 여행을 간다면 나도 그곳에서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후식에 대한 생각의 차이도 매우 신선했다. 식사를 마치는데 후식이야기가 없어서 별도로 요청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식사를 하기 전에 후식 주냐며 먼저 달라고 해서 먹는다고 하는 대목이 매 챕터 나온다. 후식을 밥먹을 때 미리 달라고 할 수 있구나. 왠지 후식은 메인을 먹고 가게의 선심으로 먹는다고 생각해서 물어봐주면 고맙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인드가 다른다. 밥값에 포함된 거니 물어보고 밥과 함께 먹는다. 대단한 생각이다.

 

글은 밋밋하다. 밋밋한 글이 나까지 밋밋하게 만들 정도였다. [참 저렴한 느낌의 맛이면서도 정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익숙하니까. 결혼식장 뷔페에서 맛볼 수 있는 맛이다.] 저자의 글도 그렇다. 저렴한 맛이 난다. 그런데 정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익숙한데 말이다. 글이 기계식으로 쓰여져 있다. 글의 구조가 정해져 있어서 구성이 반복되는데, 같은 이야기가 연이어 나올때도 있다. 비평가의 입장에서 써내려갔는지, 값이 싼 곳에 가서 갑질 글을 쓴 것 같아서 기분이 안좋아지는 대목도 있었다. 긍정적인 것에 대해서는 담백하게 쓰고, 옷에 무엇이 묻었거나, 사다쓰는 스프라서 치워놨다거나 하는 말들은 담대하게 썼다.

 

책 속에 아저씨 돈까스가 나와서 반가웠다. 나는 오래된 천쇼파의 크룸크룸한 냄새가 섞인 것 같은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경양식집을 떠올리면 그 쇼파 생각이 난다. 약간 으슥하면서도 스산한 그느낌.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세월과 함께 옛날 돈까스가 다시 먹고 싶어졌다. 집 근처이니 살방살방 걸어가서 돈까스를 시켜볼까. 그리고 맥주가 있나 메뉴판을 보고 있으면 시켜봐야지. ~ 맥주에 돈까스. 은행동은 젊은이들의 거리를 넘어 청소년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래서 청소년에 포커스를 맞춘 가게들이 많다. 거기에서 내가 대낮에 돈까스와 술을 곁들이고 걸어보리라. 생각만해도 근사하다.

 

첫 아이를 낳고 피아노를 한 대 구입했다. 아파트 소움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다가 디지털 피아노를 선택했다. 피아노 가게가 생각보다 없었다. 외관이 허름한 가게 하나를 찾았다. 들어가니 생각보다 넓고 피아노가 꽤 있었다. 디지털 피아노와 일반 피아노의 가격차가 크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피아노가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클래식 피아노는 조율이 문제다. 주기적으로 조율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된 음색을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처음 결정대로 디지털 피아노를 사기로 했다. 디지털은 야마하인줄 알았는데, 커즈와일이라는 브랜드를 거기서 처음 알게됐다. 영창에서 커즈와일이라는 브랜드를 사서 국내에 들여왔다는 사장님의 친절한 설명에 계약서를 썼다. 그리고 디지털 피아노는 조율이 필요없는 대신, 소리가 한 개만 나지 않아도 모든 판을 갈아야되서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고 했다. 이 피아노가 어느새 5년이 넘어간다.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마다 잡음이 들린다. 그리고 클래식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 느끼는 그 묵직함도 없다. 얼마전부터 코로나로 인해 피아노 학원에는 보내지 못하고, 집에서 아이 레슨을 받고 있다. 아이의 손에 디지털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게 하니 마음이 좀 그렇다. 아이가 클래식 피아노 건반의 그 느낌을 알면서 배우면 더 좋았겠다. 싶다. 이사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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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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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10

The April Bookclub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몇 주 머물다 가는 날 위해 귀한 주말 시간에 긴 산책을 함께해주고, 아늑한 홈파티에 한 자리를 내어준 분들의 환대가 얼마나 깊은 마음에서 나왔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감사하게 되었다. 그분들께 안부를 전하고 싶다. 내가 아는 뉴욕 사람들, 이제는 뉴욕에 없는 뉴욕 사람들에게.

역시 사랑스럽다.

인생 최고의 소풍이었다.]

 

[시선으로부터] 초반을 읽고, ‘글을 잘 만지는 사람이구나싶었다. 이 책도 초반에 끌어당기는 힘이 너무 강해서 매료될 수 밖에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압도적인 작품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 원하게 되는 것 같다] 책이든 드라마든 처음에 강렬함도 중요하지만 이끌어가는 힘이 더 중요하다. 이 책은 잘 읽히고,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지나치게 다 좋은 점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여행한 곳마다 각각의 색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가도 같은 곳을 간 것 같은 다 좋았다는 결론이 현실이 아닌 판타지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해졌다. 그런데 그 지나친 밝음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자양분이기도 했다. 역설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근사하다가 씁쓸해졌다는를 반복했다. [인생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초췌하게 얼어 있던 나를 다정히 포옹해주어, 긴장과 두려움과 피로가 씻겨나갔고 그렇게 얻은 용기로] 세상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싹이 고개를 내밀게 해준다. 내가 쓰는 문체, 방향이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면 나는 부정의 단어들로 향연하고, 작가는 긍정의 단어들로 향연하는 것. 부정적인 것도 최대한 긍정적인 단어의 언저리에서 찾아 쓰는 것이었다. 작가는 생소한 단어를 적제적소에 잘 섞어 우려내고, 다독하고 성장해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세계가 얼마나 크게 변하는지, 나쁜 쪽으로 변할 수 있다면 좋은 쪽으로도 변할 수 있기를 늘 바랄 뿐이다] 작가는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구나. 나는 온통 부정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채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누군가를 좋아하면 확실히 무리하게 된다]라니. 나는 누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좋아한다고 매달려주기만 바라고, 무리는커녕 재지나 않으면 다행인 삶인데. 나는 여전히 그 자리다.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이 쉬워진 세상이지만,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 분명 더 행복하지 않을까?]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이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기르게 돕는다.

 

얼마 전부터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다. 에세이 형식이지만, 자체 검열 속에서 무뎌지다 못해 더 이상 칼의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글을 매만지고 있는데, 작가는 고백하며 [놀라움과 해방감을 느꼈다. 말해도 되는구나. 왜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약한 부분을 햇볕 아래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라니. 내가 쓰는 글이 무슨 시사포럼도 아니고, 무슨 자체검열을 그리도 해서 살을 모조리 파먹고 있는지. [표현하고 싶은 사람은 표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아프니까]. [내가 쓰는 언어의 요철을 없애면서도 예각을 잃지 않는 것]. 그 중용의 힘을 기르는게 필요하다.

 

둘째가 찾아오고, 봄의 먼지처럼 공황이 왔다. 숨을 쉬지 못해서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는 게 낫겠다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공황이 오기 전의 신체증상(목이 아프고, 감기 증상)을 알아차리고 공기정화 식물을 사들였다. 공황 약을 먹지 않아도, 신체 증상을 미리 조절하고 호흡을 하면서 나름 잘 이겨냈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할 운명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니까.

베란다에는 식물이 많다. 화분, 흙을 사다가 거기에 씨앗부터 심는다. 물을 주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식물들이 올라온다. 올해 5월부터 집안에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서 계속 피어났는데, 그만큼 식물들도 죽어갔다.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도 잘 지내던 식물들이 전염병에 걸린 것 마냥 다 죽어갔다. [느슨한 동행이 있어 한층 즐거웠다]. 그러다가 소강된 상태, 용암의 불이 덮여 있는 휴지기에 이르자, 식물들이 다시 살아났다. 신기하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식물들을 좀 더 자주 보게 된다. 식물들도 다 느끼고 있구나. [화분에 새잎이 나면 기분 좋은 충격을 받는다]. 충격까지는 아니어도, 이 기분 좋음을 만끽할 필요가 있구나.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구나. 식물들이 나에게 위로를 준다. [경이를 경이로 인식할 수만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특별해질 것이다. 덧없이 사라진다 해도 완벽하게 근사한 순간들은 분명히 있다]

 

[폭력이 근사하게 나아갔던 것들을 하루아침에 뒤로 돌려버린다는 사실을 몇 년에 걸쳐 알게되었다.] 과장의 신임을 얻은 후임이 갑자기 나를 불러 직무를 다하지 않았으니 나가라고 했다. 일의 방식을 계속 논의해왔고, 열심히 해왔다. 그런데 익명의 게시판에 욕을 한 이들과 한패가 되어 나가라고 했다. 가해자들이 휘두르는 횡포는 이미 결론이 나 있었다. 나갈 수 없다고 버티고 있지만, 내 마음은 떠나라고 한다. 휴일이 끝나는 날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뒤로 물러나 버린다. <어느 독일인의 삶>에서처럼 삐뚤어진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죽일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조금만 경계를 낮추면 악의는 습기 높은 계절의 곰팡이처럼 기세를 떨치며 확산하고 지우기 어려운 얼룩을 남긴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내 삶을 매도하는 이들에게 휘둘리지 말아야 하는데, 내가 잘 지내는 것 같을 때면 무참히 폭격을 해온다. 무시하고 있는데, 내 마음은 실상 그렇지 못해 인권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인권센터에서는 휴직을 하거나 이직 이야기를 건냈다. 고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을 토로하는 시간이었기에, 상담사도 실상을 담담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발끈했다. 그런데 그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들고 있다. 그들과 싸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버티는 것도 힘들다면, 벗어나는 것도 방법이다.. 내 운명은 나를 사랑하고 있는데, 가혹하게 내몰 필요가 있나 싶은 것이다. 히틀러, 괴벨스같은 무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빨리 손절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데.

 

[아끼는 사람들에게 기댄 채, 지나치게 좌절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마음 속의 저울이 잘 작동하는 사람들과만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마음속의 저울은 옳고 그름, 유해함과 무해함, 폭력과 존중을 가늠한다. 그것이 망가진 사람들은 끝없이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힌다. 사실 이미 고장 난 타인의 저울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저 내 저울의 눈금 위로 바늘이 잘 작동하는지 공들여 점검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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