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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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프란츠 카프카

 

202156일 목요일

The April Bookclub

 

가족의 생계를 훌륭하게 책임지고 있는 미혼의 남성, 그레고르.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아침이지만, 다르다. 그레고르의 2층 방에는 거대한 갑충이 된 자신이 있다. 부모님, 여동생, 집 모든 것이 그대로이지만, 더 이상 그대로일 수 없는 하루의 시작이 거기에 있다. 거대한 바퀴벌레같은 존재로 바뀌면서 가족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 그리고 어떻게 삶을 마감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요즘 접하는 글들은 은유적이다. 직설적인 글 같은데, 참으로 은유적이다. 그런 글들은 범접할 수 없는 찬란함까지 느껴진다.

 

멀쩡하던 사람이 사고를 당한 뒤, 그와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말로를 떠올리게 한다. 사고 이전에 우수한 사람이었던 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가족에게는 애물단지가 되고, 더 이상 사람으로서의 자신은 없는 상황. 자신만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어제까지의 환경도 없다. 그대로인 환경에서, 변화된 환경을 만나는 것.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내가 이렇게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데, 이전의 기능을 할 수 없는 내가 되어 버린다면.

그들이 지금처럼 나를 대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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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부터 친구와 단둘이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그게 뭐가 독서모임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독서모임이다!!!!” 라고 말하겠다. 이 책의 독서모임 일원들처럼 이름있는 구성원들도 유명한 단체도 뭣도 아니다. 그래도 나는 자신있게 The April Bookclub 이라고 외치겠다.

나이 서른 여덟에 모임을 시작해 1년을 잘 지내왔고, 나름 만족스럽다. 처음에는 책을 다 읽느냐 마느냐/너는 읽었네, 나는 안읽었네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안다. 책을 사서 한 줄이라고 읽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전혀 다른 세상임을. 물론 정해진 책을 온전히 다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 금상첨화겠지만 말이다.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읽어야지하고 생각만 한 채,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나날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알라딘에(지금은 매주 목요일로 생각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글을 올리는 것으로 연결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달에 한 권, 책을 읽는 일은 단순히 읽는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삶의 원동력이 되어 다른 일들도 잘 해 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준다. 이렇듯 북클럽(영화 제인오스틴 북클럽을 의미있게 보고, 책모임을 묵클럽이라고 말한다)은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해 우울한 자기를 생성하던 나의 내면을 채워주고 있다. 이를 통해 과거의 나를 보듬고 치유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는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오래된 빈집을 매일매일 고쳐나가는 일과 같다. 지치고 방치되어 있던 내 마음을 어떤 날은 정성을 들여, 어떤 날은 무심한 듯 하지만, 손을 놓지 않고 토닥여 주는 것. 그리고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내 마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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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 기분을 표현하는 단어 네 개(오후의 글쓰기 과제)

     

기분을 표현하려는데 생각이 끼어든다. 기분과 감정이 무엇인지 개념 정의부터 하려든다.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그런 사고개입을 막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또 평소 내 기분과 오늘 내 기분이 짬뽕된다. 더 이상 오염시키지 말고 지금 내 기분에 집중해 보자.

 

오늘 내 기분을 표현하는 단어는 차분함, 억제된 화, 먹먹함, 위축.

 

표면적으로 오늘의 나는 차분하게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무탈하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정해진 것을 나의 의지가 아닌 외부요인에 의해 방해를 받는다고 여기면 화가 일어났다. 감정을 건드리는 시각이나 청각이 개입되면 마음이 먹먹해 지기도 했다. 회사 내에서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암묵적인 시선이 나를 위축시켰다.

 

이렇게 하루, 한 시간, 몇 분 안에도 내 안에 수많은 기분들이 또아리를 틀고 앉아서 혀를 낼름거리지만, 나는 그것들을 제대로 구분도 하지 못한 채 휘둘리기 일쑤이다. 그런데 타인이 조절하지 못한 감정을 드러낼 때, 나의 반응은 어땠던가. 미친년 바라보듯, 개똥 피하듯이 대하지 않았던가. 그 사람도 자신을 어찌하지 못하는 그 기분의 소용돌이 안에서 헤매고 있었을 텐데.

 

왜 우리는 모두 자신의 기분 하나 감당하지 못하고 지낼까? 내가 나의 주인인데 기분이라는 녀석 하나를 어찌하지 못해 화를 내기도, 울음을 터뜨리기도, 우울해하기도 하는걸까?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마치 기분에게 내 안방을 내어주기라도 한 것 같아 억울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걸 다시 바꿔 생각해보면,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있었던가. 밥을 먹다가 멀쩡한 혀를 깨물기도 하고, 평소 잘 들던 컵을 와장창 깨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숨을 안쉬고 살고 싶어도 숨을 쉬어야 살고, 밥을 먹어야 살며, 잠을 자야 산다. 우리는 각자에 대해 주인이라는 명목하게 권력을 휘두르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게 지키고 다독여주며 사랑해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 있다. 주인이 아니라 주인의식을 갖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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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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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데이터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듣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책임감을 느끼고 회복의식을 갖는 것. 좋은 의도다. 하는 이도 선하고 받는 이도 선하게 한다. 그런데도 드는 이 이질감을 어찌할 수 없다.

 

노동계층의 부모를 만났고, 그 부모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에 그 직업마저 잃었다. 머리는 좋았지만, 대학에 갈 수 있을지 막막했다. 낮에는 수업을 듣고, 밤에는 서빙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

이러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데이터로 이야기 좋아하니, 잘 알고 있으리라. 이 사회는 이러한 사람들이, 그 환경에서 자란 어른아이가 더 많다. 그러나 이 글을 쓴 이에게서는,

좋은 부모를 만났다. 공부도 잘했다. 큰 어려움없이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해외로 유학도 갔다. 그리고 데이터로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데이터로 설명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라는 문장이 느껴진다.

 

이 책을 읽다가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삶을 이야기할 때 전공의가 환자들을 볼모로 이렇게 열악하면 제대로 돌보겠냐는 이야기가 갑툭튀하면 화가 많이 난다. 사회적 강자의 입장에 있는 이들의 삶도 이리 힘든데, 그것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직업전선은 말해 뭐하겠는가 싶다. 그래서 저자의 선한 의도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커지는 이질감을 주어담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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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서 내가 잘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지 못하게 칭찬을 받는다면, 그 말을 잊을 수 있는이가 얼마나 있을까. 그 말을 곱씹지 않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이십대 후반에 근무하던 시골의 작은 병원에서 원장은 나에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했다. 그리고 몇 차례 글을 써온 후, 원장은

선생님은 수필을 쓰시면 잘 쓰실 거 같아요.”라고 강아지풀처럼 부드럽고 조용한 말투로 말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수필에 어울리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물론 이말은 독후감을 수필처럼 써왔다며 애둘러 표현한 것이겠지만, 나는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10년이 넘게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나는 성장을 멈추고 고단한 세상의 껍질을 쌓아갔다. 그러다 약 1년 전, 친구와의 독서모임을 계기로 다시 독후감과 수필이 결합된 글을 가끔씩 쓰고 있다.

 

이제껏 누군가가 내게 글을 써달라고 부탁한 적 없다. 그런데도 나는 왠지 뭐라도 계속 써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있다. 그래서 여러 번 글쓰기를 시도했지만 내리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굳은 마음으로 꾸준한 글쓰기에 성공하고 싶다. 그리고 이왕 쓸 거면 잘 쓰고 싶고, 잘 썼다는 칭찬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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