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하듯이 쓴다 - 강원국의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법
강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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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의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법

강원국 지음

 

소제목과 반대의 이야기를 하거나, 한참 그래그래 알았어 알았어 하고 읽고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하면? 맥이 빠진다. 이 책은 주로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저자의 의식의 흐름이나 말하는 방식이 그런 식이리라.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잘 썼다고, 더 이상 고칠 게 없다고 하는데, 글을 잘 쓰지 않았는데...? 내가 글을 저자보다 잘 써야 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을 잘 못 써도 남의 글이 잘 썼는지 못 썼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글이 정신없이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면에서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기는 한다.

 

그런데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이 보면 담아서 쓸 수 있는 짤들이 여럿 있다. 회사 생활에서의 팁을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면 더 좋았겠다. 글을 잘 쓰는 게 주요 주제이기보다는 오히려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회사 생활을 해 나가야하는 지에 대한 충고, 조언의 내용이 잘 쓰여져 있다.

그 중 하나가 험담은 하지 말되,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회사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불이익을 감내하며 진실을 말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이견과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독선적 상사 아래서는 더욱 그러하다. 모두 그의 입만 쳐다보고 그의 말만 따를 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위협을 무릅쓴 채 비판하고 저항하고 바른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천 길 낭떠러지인 줄 알면서도 내딛고야 마는 그런 사람 덕분에 사회는 발전하고 역사는 진보해 왔다.]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당하고 나서 뒷전에서 험담만 하고, 아닌 것에 대해 앞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 별로다. 별로인 나로 있게 하는 이 곳을 그만 안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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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전설 웅진 모두의 그림책 42
이지은 지음 / 웅진주니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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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전설

이지은 지음

  

아이들과 읽을 책으로 종종 알라딘에서 몇몇 그림책 작가들의 책을 집어든다. 현대와 해학이 공존하는 그림체계와 이야기가 있는 구조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고,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모르는 제멋대로 호랑이가 의도치않게 자신의 꼬리에 붙은 민들레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저 사람만 없어졌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이 주변에 꼭 있다. 타인의 입장에서 조망하지 못하고 행동이 앞서기 일쑤인 사람. 그리고 내면이 외로운 사람.

 

책을 읽는 내내 언젠가 민들레와 작별을 할 호랑이가 염려되어 아픈 마음을 이어가며 읽었다. 누군가가 다가와 좋은 관계로 나아가는 것과 끝이 있는 것과 다시 공존해 가는 것. 그것이 삶이라지만 나는 아직은 보살핌을 받고 싶다.

 

그리고 알라딘~ 97일에 주문한 팥빙수의 전설은 언제 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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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의 카페
존 스트레레키 지음, 고상숙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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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의 카페

존 스트레레키 지음

 

익숙하지 않은 것들 속에 고이지 않은 물이 되는 것을 택할 때가 있다. 그중 하나가 언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어English는 나와 먼 나라 아주 먼 나라 정도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작업에 끌렸다. 작년의 일이다.

 

항상 힘든 시기이지만, 가족도 친구와도 나눌 수 없는 마음에 대해 난이도를 계산하지 않고 주고받는 과정을 한 미국인과 나누게 됐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돈을 빌려달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하여 정중하게 거절했음에도 마치 떼인 돈 받는 것처럼 집요하게 요구해 왔다. 목적이 있는 친절함이었다. 그렇게 마음에 상처만 깊게 새기고 외국인과의 우정은 끝이 났다. 한동안 낯선 언어 사용이 강제 중지됐다. 그리고 올해 독일에서 살다가 한국에 법 공부를 하러 왔다는 30대 초반의 여성이 연락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추천받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책 이야기를 하다가, 독일 작가인 줄 알고 소피의 세계와 같은 책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소피의 세계 저자는 노르웨이 사람이라고 일침을 날리는 그녀. 좋다. 그리고 이런 류를 좋아한다면 ‘The way are you here cafe’라는 책을 추천한다고 했다. 번역서가 나왔는지 찾아봤는데 없었다. 그래서 저자 인스타그램에 번역서를 기대한다고 글을 남겼다. 그러다가 며칠이 지나 우연히 번역서를 찾게 됐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고 굴러다니게 하다가, 아이가 유튜브를 보는 한 시간 동안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은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데, 페이지당 들어있는 글밥이 별로 많지 않다.

 

당신은 왜 여기에 있습니까?

죽음이 두려우십니까?

충만한 삶을 살고 계신가요?

이 물음에 대한 책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별 큰 문제는 없는데, 안 풀리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런데 힘든 때가 있다. 그럴 때 덩그러니 놓여있는 카페에 들어갔다가 이러한 질문을 받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스토리다. 답은 나와 있지 않다.

답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 만으로도 가슴에 출렁이는 추를 느낀다.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면 목적 없이 남들이 사는 대로 사는 것에서 한걸음 떨어져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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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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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양윤옥 옮김

 

이 글이 나에게 다가온 의미는 크게 두가지이다. 첫 번째는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성실하게 대할 것, 두 번째는 즐거움을 느끼는 일을 할 것이다.

 

글쓰는 작업은 한마디로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 업]이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쓰는 것], 그것이 글쓰기이다.

 

새벽에 일어나 6시간 정도 글을 쓰고, 마라톤을 하는 일상을 가지고, 근면 성실을 모토로 달려온 작가다. 그런 작가가 쓴 에세이가 재미있을리 만무하다. 고리타분하다. 그런데 이 고리타분함이 소설가라는 직업과 맞닿아 있어, 애잔함마저 풍긴다. 바로 수없이 반복하고, 미련하게 몸으로 직접 습득하는 일이다. 장기적인 일을 할 때 규칙성이 얼마나 중요한 작용을 하는가. 그래서 비단 소설가로서의 직업을 이야기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많은 의미가 전해지는 것이리라.

 

정해진 시간 동안 마주하는 책상, 정해진 분량. 하나하나 들인 시간의 퀄리티가 작품에 대한 납득성으로 이어지는 것. 그리고 혹독한 비판에도 할만큼 했다는 실감이 의연하게 해주는 것. 이 일을 30년이 넘게 해나가는 것. [말할 것도 없이 지속력이다.] 그것이야 말로 삶에 대한 자세이다. [시간을 소중하고 신중하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은 곧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이 일을 해나가기 위해 [오후에는 낮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리 방해가 되지 않는 책을 읽기도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아무래도 운동 부족에 빠지기 쉬워서 날마다 한 시간 정도는 밖에 나가 운동을 한다. 그리고 다음 날의 작업에 대비한다. 날이면 날마다 판박이처럼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매일 다섯시간에서 여섯시간, 의식을 집중에서 집필한다]와 같이 피지컬한 업을 함께 해 나간다.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들어서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육체적인 운동과 지적인 작업의 일상적인 조합은 작가가 행하는 종류의 창조적인 노동에는 매우 이상적인 영향을 끼친다].

 

[혹한의 아침에, 혹서의 한낮에, 몸이 나른다고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 자 힘을 내서 오늘도 달려보자라고 따스하게 격려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듯 일상을 해 나간다. 아마도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강함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신체적 건강 뿐만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마음의 강인함을 유지하기 위한 체력을 증강하고 관리 유지하는 것이다.

 

흔들림 없는 의지와 자신에 대한 적절한 긍정성이 이 사람의 모습이다. 내가 가장 닮고 싶은 부분이다. 글을 쓰는 일에 신뢰롭게 예의를 갖추고 매일을 대하고 있다. 매일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분량을 쓰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대한다는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해서라기 보다는 예의다. 사랑한다는 것은 예의를 갖춘다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가장 기본은 나의 건강을 체크하고 돌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새벽까지 폰을 보고 있는 것은 나의 몸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행동이 아니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어떡해 해야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 행동을 해야 내안의 나도 나를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고 곧게 갈 수 있다. [그 다음 일은 또 그다음 일이다].

 

다음은 즐거움이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어쨌든 불평 불만 없이 열심히 한다.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 즐거움은 변함이 없다. 뭔가를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적은 한 번도 없다. 다양한 표현 작업의 근간에는 늘 풍성하고 자발적인 기쁨이 있어야만 한다. 오리지낼리티는 바로 그러한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제약 없는 기쁨을,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생생한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와 충동이 몰고온 결과적인 형체에 다름 아닌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즐기면서 한적이 있나? [즐겁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이란 아무리 살아봤자 별로 즐겁지 않다]. ...... ‘글을 쓰고 싶다/논문 써야지하는 생각민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나를 보며 매일이 괴로웠고, 지금도 괴롭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것을 하기만 하면 되는데 왜 괴로울까. 원인은 능력에도, 마음 상태에도 있을 테다. 몇주 논문 쓴다고 마음만 갈팡질팡하고, 정작 논문을 본 시간은 얼마되지 않고, 글도 한자 안쓰니, 이거 원 글쓰는 것도 까먹는 거 같다. 그런데 그런 거 재껴두고, 그저 꾸준하게 무언가를 하는게 중요하다. 재미없어 보이는 사람의 일상이 사실은 자신의 인생에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제일 재미있게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사랑을 매일 하고 있는 사람이니.

 

[사람들 마음의 벽에 새로운 창을 내고 그곳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고 싶다. 그것이 소설을 쓰면서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이고 희망하는 것이다. 이론 따위는 빼고, 그냥 단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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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연구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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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이창희 옮김

 

2021813

The April Bookclub

 

열역학 1, 2 법칙으로 지구의 모든 현상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제법 설득력이 있다. 물론, 이 법칙을 이해한다고 해서 세상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는 항상 한시 앞도 보지 못해 끙끙대지 않던가.

 

그럼, 열역학 법칙을 간단하게 보자.

 

열역학 제 1 법칙: 우주 안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불변하며, 따라서 창조될 수도 없다. 단지 그 형태만 바뀔 뿐이다. 우주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다.

 

열역학 제 2 법칙: 일명 엔트로피 법칙.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변한다고 규정한다. 즉 유용한 상황에서 무용한 상태로, 획득 가능한 상태에서 획득 불가능한 상태로,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만 변한다.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엔트로피는 더 이상 일로 전환될 수 없는 에너지의 양을 측정하는 수단이다. 어떤 시스템 내에서 존재하는 무용한 에너지의 총량.

 

세상이 점점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지고 있다. ?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일정한 구조와 가치로 시작해서 무질서한 혼돈과 낭비의 사태로 나아가니까. 이 방향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에너지는 창조될 수 없다. ,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사람들은 적절한 기술만 개발하면 우리가 소모해버리는 것을 거의 모두 재생하여 재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생각이다. 고립된 시간과 장소에서 엔트로피 과정을 역행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전체 환경의 엔트로피 총량은 증가한다. 재생이라는 것은 유용한 에너지원을 희생하고 전체 환경의 엔트로피 총량을 증대시키는 대가를 치러야만 가능하다. 미래의 생명체에게 유용한 물질의 양이 줄어드는 것이다. 에너지는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갈 때마다 일정액의 벌금을 낸다. 일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가 손실된다.

 

사유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도 모두 포함된다. 사람이 죽는 것도 엔트로피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유용에서 무용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에너지를 모두 쓰면? 죽음에 이른다. 그러면 사고로 갑자기 죽게 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지? 또 병으로 요절하는 것은 그 사람의 에너지 총량이 거기까지 였던 것이라는 말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먹이사슬 구조도 엔트로피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먹는 것. 결국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내가 살아남는다는 것. ... 내가 얻으면 누군가는 잃어야 한다는 생존의 법칙이 엔트로피로 설명되니, 다시금 뜨끔해진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모두 다른 사람의 희생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굉장히 철학적이고 현학적이어진다. 문명의 본질은 욕구를 증가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이를 의도적이고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데 있다. 소유와 소비는 계속 열악해져 가는 세계의 일시적 현상으로 우리의 주의를 돌려 삶을 어지럽힐 뿐이다. 우리가 소유하는 것들은 결국 우리를 소유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거기에 집착한다. 소유물을 빼앗길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가졌는가에 따라 스스로를 판단한다. 바가바드 기타(흰두교의 경전)에는 이런 말이 있다. 물질에 대해 생각하면 인간은 거기에 집착한다. 집착함으로써 갈망이 생기고 갈망함으로써 분노가 탄생한다. 분노함으로써 망상이 생기고 망상은 기억을 지워버린다. 기억을 잃으면 분별력이 없어지고 분별력이 없어지면 파멸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존은 자연과 화해하고 생태계와 협동하며 살아가려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다. 바로 코로나 시대가 우리에게 안겨준 숙제이다. 코로나가 터지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생각도 [덕분에 자연이 좀 쉴 수 있겠군. 그동안 계속 못살게만 굴었으니]

 

과학이란 결국 우리 세대의 가장 어리석은 사람조차 지난 세대의 천재보다 앞서갈 수 있는 학문이다. 그러니 누구보다 잘 나가려고 부단히 애쓰기보다 진정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데 도움되는 노동에서 가치를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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