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 기분을 표현하는 단어 네 개(오후의 글쓰기 과제)

     

기분을 표현하려는데 생각이 끼어든다. 기분과 감정이 무엇인지 개념 정의부터 하려든다.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그런 사고개입을 막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또 평소 내 기분과 오늘 내 기분이 짬뽕된다. 더 이상 오염시키지 말고 지금 내 기분에 집중해 보자.

 

오늘 내 기분을 표현하는 단어는 차분함, 억제된 화, 먹먹함, 위축.

 

표면적으로 오늘의 나는 차분하게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무탈하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정해진 것을 나의 의지가 아닌 외부요인에 의해 방해를 받는다고 여기면 화가 일어났다. 감정을 건드리는 시각이나 청각이 개입되면 마음이 먹먹해 지기도 했다. 회사 내에서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암묵적인 시선이 나를 위축시켰다.

 

이렇게 하루, 한 시간, 몇 분 안에도 내 안에 수많은 기분들이 또아리를 틀고 앉아서 혀를 낼름거리지만, 나는 그것들을 제대로 구분도 하지 못한 채 휘둘리기 일쑤이다. 그런데 타인이 조절하지 못한 감정을 드러낼 때, 나의 반응은 어땠던가. 미친년 바라보듯, 개똥 피하듯이 대하지 않았던가. 그 사람도 자신을 어찌하지 못하는 그 기분의 소용돌이 안에서 헤매고 있었을 텐데.

 

왜 우리는 모두 자신의 기분 하나 감당하지 못하고 지낼까? 내가 나의 주인인데 기분이라는 녀석 하나를 어찌하지 못해 화를 내기도, 울음을 터뜨리기도, 우울해하기도 하는걸까?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마치 기분에게 내 안방을 내어주기라도 한 것 같아 억울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걸 다시 바꿔 생각해보면,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있었던가. 밥을 먹다가 멀쩡한 혀를 깨물기도 하고, 평소 잘 들던 컵을 와장창 깨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숨을 안쉬고 살고 싶어도 숨을 쉬어야 살고, 밥을 먹어야 살며, 잠을 자야 산다. 우리는 각자에 대해 주인이라는 명목하게 권력을 휘두르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게 지키고 다독여주며 사랑해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 있다. 주인이 아니라 주인의식을 갖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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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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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데이터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듣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책임감을 느끼고 회복의식을 갖는 것. 좋은 의도다. 하는 이도 선하고 받는 이도 선하게 한다. 그런데도 드는 이 이질감을 어찌할 수 없다.

 

노동계층의 부모를 만났고, 그 부모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에 그 직업마저 잃었다. 머리는 좋았지만, 대학에 갈 수 있을지 막막했다. 낮에는 수업을 듣고, 밤에는 서빙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

이러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데이터로 이야기 좋아하니, 잘 알고 있으리라. 이 사회는 이러한 사람들이, 그 환경에서 자란 어른아이가 더 많다. 그러나 이 글을 쓴 이에게서는,

좋은 부모를 만났다. 공부도 잘했다. 큰 어려움없이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해외로 유학도 갔다. 그리고 데이터로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데이터로 설명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라는 문장이 느껴진다.

 

이 책을 읽다가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삶을 이야기할 때 전공의가 환자들을 볼모로 이렇게 열악하면 제대로 돌보겠냐는 이야기가 갑툭튀하면 화가 많이 난다. 사회적 강자의 입장에 있는 이들의 삶도 이리 힘든데, 그것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직업전선은 말해 뭐하겠는가 싶다. 그래서 저자의 선한 의도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커지는 이질감을 주어담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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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서 내가 잘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지 못하게 칭찬을 받는다면, 그 말을 잊을 수 있는이가 얼마나 있을까. 그 말을 곱씹지 않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이십대 후반에 근무하던 시골의 작은 병원에서 원장은 나에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했다. 그리고 몇 차례 글을 써온 후, 원장은

선생님은 수필을 쓰시면 잘 쓰실 거 같아요.”라고 강아지풀처럼 부드럽고 조용한 말투로 말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수필에 어울리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물론 이말은 독후감을 수필처럼 써왔다며 애둘러 표현한 것이겠지만, 나는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10년이 넘게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나는 성장을 멈추고 고단한 세상의 껍질을 쌓아갔다. 그러다 약 1년 전, 친구와의 독서모임을 계기로 다시 독후감과 수필이 결합된 글을 가끔씩 쓰고 있다.

 

이제껏 누군가가 내게 글을 써달라고 부탁한 적 없다. 그런데도 나는 왠지 뭐라도 계속 써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있다. 그래서 여러 번 글쓰기를 시도했지만 내리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굳은 마음으로 꾸준한 글쓰기에 성공하고 싶다. 그리고 이왕 쓸 거면 잘 쓰고 싶고, 잘 썼다는 칭찬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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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글쓰기 - 자발적 글쓰기를 시작하는 어른을 위한 따뜻한 문장들
이은경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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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글쓰기

이은경

 

 각 장마다 글쓰기 과제가 있다. 던저주는 소재가 불씨가 되어 적당한 크기의 불이 되는 경우가 있다.

      

1. 과제다.

      

드라마 '봄날'을 보고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주인공은 고현정인데, 당시 모래시계를 끝으로 결혼을 하고 연예계를 잠정 은퇴한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이혼후 찍은 첫 작품으로 많은 화재를 불러모았었다. 게다가 서른아홉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20대의 조인성과 호흡을 맞춘다는 것에 질투심을 안고 봤었던 기억이 있다. 그 드라마를 십년도 더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보고 있다. 그만큼 나이를 먹은 내가 다시 그 드라마를 보니 드라마속 인물들은 DSM-5에 나오는 무수히 많은 장애들로 설명이 가능했다. 그런 면에서 명작이다.

 

고현정: 극중 이정은. 함구증

조인성: 극중 은섭. 불안정한 애착으로 양육되었고, 어릴 적 엄마가 손목을 그으면서 자살시도 한 것을 목격한 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피를 보면 구토증상이 올라옴.

지진희: 극중 은섭. 교통사고 이후 해리 증상

은섭의 엄마(은호의 새엄마). 경계선 성격장애, 의부증. 열등감

한고은: 어린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2층 높이에서 뛰어내리기도 함. 밝은 성격으로 보여지나 아픔이 있음. 은호의 소꿉친구이자 옛 연인.

작가가 DSM책을 보고 인물들을 구성한 것 같은 스펙터클한 드라마였다.

 

당시에 볼 때는 고현정이 화장을 하지 않고 나왔네. 그런데 어찌 저리 이쁠까. 조인성 너무 멋지다. 라며 봤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작품이 잘 만들어진 것 같네. 고현정의 연기가 그때가 더 나은 것 같네를 넘어 병리적인 특성들을 바라보면서 보고 있었다. 나는 직업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할 때만 내 직업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세상을 이 틀로 바라보는 버릇이 생겨버린 것 같다. 이게 좋은지 나쁜지 잘 모르겠는 감정을 안고 오늘 아직 다 보지 못한 드라마 봄날의 끝을 봐야겠다.

 

정은이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버려졌다. 버려진 정은이를 제주도 비양리의 보건소 의사가 데려다 손녀로 키웠다. 고집을 부리지 않는 아니였는데, 피아노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하지만 정은이를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피아노를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음을 이렇게 애둘러 표현하고 있다. 정은은 자신을 버린 엄마를 성인이 되어 찾아갔다. 슈퍼를 운영하던 엄마는 정은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가게 앞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가라고 했다. 그 뒤 정은이는 입을 닫았다. 말을 하면 의미를 두고 마음을 두고 갖고 싶어진다고 했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 욕심도 마음을 두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살아가던 정은앞에 은호가 나타났다.

 

은호는 의사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의사아버지가 외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룸살롱에서 일하던 여자가 은호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하고 은호의 엄마를 몰아내고 안주인 자리를 차지한다. 자신을 아내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는다고 하거나 은호의 엄마의 머리채를 잡아 내쫒는 등 기상천외한 일을 벌여 의사사모님이 되지만, 자신의 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남편이 냉대하는 것은 아닌지, 바람을 피는 것은 아닌지 순간순간 주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실로 확장해 나가면서 난동을 피웠다. 그런 가정에서도 은호는 밝게 잘 자랐다. 성인이 되면 엄마를 만나게 해준다는 아버지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33살이 되어도 아버지는 엄마를 만나게 해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은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맺어준 제주도 비양리 보건소의 의사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정은을 만난다. 정은의 마음은 닫혀 있었다. 그런 정은에게 마음의 소리를 내 뱉으라고 소리쳐주고, 피아노를 선물하며 다가온다. 은호가 떠나는 곳으로 정은이 달려간다. 그리고 가지마라고 말을 내뱉는다. 은호는 엄마를 만나고 정은에게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엄마를 만나고 다시 공황으로 가는 도중 교통사고가 난다. 당시 운전하던 엄마는 즉사하고 은호는 의식을 읽는다.

 

한편 기다리던 은호가 오지않고 소식도 없다. 그러던 중 은호가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은은 무턱대로 서울로 간다. 가서 은호 간병을 한다. 그러다가 은호의 동생 은섭을 만나게 된다.

은섭은 아버지가 무서워 의사가 됐지만, 어린 시절 엄마가 손목을 긋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을 목격한 뒤로 피만 보면 자신의 몸을 가눌수 없을 정도로 공황증세가 나타난다. 구석에 숨어 벌벌 떨며 구역질을 하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은섭이 누워있는 동안 은정과 은섭이 자주 마주치게 된다. 어쩌면 처음부터 은섭은 은정이 신경쓰였다. 그리고 형의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은정도 은섭을 향한 마음이 처음부터 있었다는 것을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은호를 향해, “당신은(은호씨는) 나를 울게 하는데, 당신 동생은(은섭씨는) 나를 웃게해요라는 말로 복선을 나타낸다.

 

사람은 모두 특별하다. 자폐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고 내원한 만 5세 남자아이의 아버지가 아이에 대해 우리 아이가 좀 특별해요.”라는 말을 여러차례 사용하였다. 다른 아이들과 다른 행동증상을 보이는 것에 대해 특별하다는 말로 표현하는 부모는 처음 만났다. 특별하다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은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문이 열리고 닫히는 모습을 하루 종일 지켜보고 있다거나 중문을 열고 닫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특별하다고 표현하지는 않잖은가. 그런데도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증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 아이는 특별하다라는 말을 먼저 사용하였다. 아버지가 단어의 뜻을 모르고 사용했을까? 수많은 단어를 고민하다가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특별하다는 단어를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게다. 부정적인 것에도 좋은 의미로 말하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특별하다는 말이, 이 드라마를 보면서도 떠올랐다. 장애가 있다고 그 사람이 특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은 존재만으로도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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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위에서

 

앞코가 뚫려 있는 5센티 높이의 베이지색 구두를 신은 뒤에, 연한 청바지, 블라우스, 카디건을 입고, 걸어서 출근했다. 평소 구두를 잘 신지 않아서 더 근사해 보인다. 약 이십 여분을 걸어 회사에 도착했을 때쯤, 구두에 닿는 엄지와 새끼발가락 부분에 아픔을 느꼈다. 통증은 점점 심해, 구두를 벗고 보니 진물도 난다. 보건실에 들러 밴드를 받아와 발에 붙였다.

퇴근할 때가 되어 구두를 신어 보니 발을 넣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 걸음걸이에 신경 쓰기는 커녕 어서 집에 도착하기만을 바라면서 고행 길을 걸었다. 집에 돌아오니 물집은 다 터져서 쓰라렸고, 벌건 속살이드러났다. 보기에는 참 편해 보이는 구두였다. 굽도 두껍고 굽 높이도 적당했다. 처음 발을 넣었을 때도 정말 편했다. 그런데 신은 지 이십 분도 안됐는데, 내 발은 견디지 못하겠다고 울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이는 것과 실제는 다를 수 있다. 이 길이 꽃길 같아서 신나게 걷는데, 걷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렇지 않음을 알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그 길로 묵묵히 걷는 것을 택한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면 미련스러울 만큼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행한다. 그렇게 버티다가 몸이 무너지며 고통을 알려줄 때에서야, 잠시 쉬어간다. 그때, 도착지에 가는 방법은 더 편한 신발을 신거나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선택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고통의 길을 계속 걸어간다.

나는 살아가는데 고통을 없애고 편리한 방법만을 선택하지 않는다. 미련스러워 보이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장인의 길을 걷는 사람들,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미래의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들, 쉽게 변하지 않으면서 속세에 물들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나는 응원한다. 그 길 앞에서 위로를 하거나, 받지도 못하지만, 그들의 삶이 있어 세상이 빛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서툴러도 피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내게, 사랑의 눈길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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