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 위에서

 

앞코가 뚫려 있는 5센티 높이의 베이지색 구두를 신은 뒤에, 연한 청바지, 블라우스, 카디건을 입고, 걸어서 출근했다. 평소 구두를 잘 신지 않아서 더 근사해 보인다. 약 이십 여분을 걸어 회사에 도착했을 때쯤, 구두에 닿는 엄지와 새끼발가락 부분에 아픔을 느꼈다. 통증은 점점 심해, 구두를 벗고 보니 진물도 난다. 보건실에 들러 밴드를 받아와 발에 붙였다.

퇴근할 때가 되어 구두를 신어 보니 발을 넣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 걸음걸이에 신경 쓰기는 커녕 어서 집에 도착하기만을 바라면서 고행 길을 걸었다. 집에 돌아오니 물집은 다 터져서 쓰라렸고, 벌건 속살이드러났다. 보기에는 참 편해 보이는 구두였다. 굽도 두껍고 굽 높이도 적당했다. 처음 발을 넣었을 때도 정말 편했다. 그런데 신은 지 이십 분도 안됐는데, 내 발은 견디지 못하겠다고 울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이는 것과 실제는 다를 수 있다. 이 길이 꽃길 같아서 신나게 걷는데, 걷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렇지 않음을 알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그 길로 묵묵히 걷는 것을 택한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면 미련스러울 만큼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행한다. 그렇게 버티다가 몸이 무너지며 고통을 알려줄 때에서야, 잠시 쉬어간다. 그때, 도착지에 가는 방법은 더 편한 신발을 신거나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선택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고통의 길을 계속 걸어간다.

나는 살아가는데 고통을 없애고 편리한 방법만을 선택하지 않는다. 미련스러워 보이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장인의 길을 걷는 사람들,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미래의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들, 쉽게 변하지 않으면서 속세에 물들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나는 응원한다. 그 길 앞에서 위로를 하거나, 받지도 못하지만, 그들의 삶이 있어 세상이 빛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서툴러도 피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내게, 사랑의 눈길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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