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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자본주의자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고 완전한 삶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숲속의 자본주의자
박혜윤 지음
2023년 5월
The Bookclub
[창조적인 기쁨, 놀이의 즐거움이 되는 선에서 멈춰야 한다. 이제 우리의 일상은 인내하며 생산하는 것과 소비하는 즐거움이 따로 있지 않다. 생산을 하면서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한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렇게 열심히 알아내야 할 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내가 그것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말해준다는 것도 그렇게 알게 됐다. 직장에서 건강과 시간을 소진해가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왜 인정받지 못할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이 나에게 그런 요구를 한 적이 없다. 설사 요구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후의 대가에 대한 약속을 한 적이 있던건가? 이 세상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라고 나에게 약속한 적이 없었다. 나의 권리라고 믿는 것도 나 자신이고 무언가를 요구한 것도 나 자신이다. 범죄에 해당될 정도로 나를 감금하거나 폭력을 가하거나 사기를 친 사람이 아니라면 너는 나에게 이만큼 해야 한다는 것은 내 생각이다.
전혀 감사하거나 기뻐히지 않아도 된다. 세상은 요구하지 않는다.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만큼 세상에 무엇을 해줄 필요도 감사하거나 보답할 이유도 없다. 그런 부담이 없을 때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비로소 공평해졌으니 말이다. 나는 그러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정말 나는 이지러지고 있다.
내 노력과 꿈과 나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모든 마음이 잠잠해진다. -저자가 그래서 숲속으로 떠났나? 서울대 나와서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한 만큼의 결실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지쳤나?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숲속으로 들어갔나? 그런 것에 대해서는 나와있지 않은데, 그려진다.
나를 구박하고 잔인하게 대하는 세상보다 나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철저하게 무심한 세상이다.- 그럴까? 나는 잔인하고도 철저하게 무심한 세상 속에서 일하고 있다. 언제까지? 매일 싸우는 부모는 이혼을 하지 않고 싸움의 크기만 키웠다. 내 꼴도 마찬가지다. 나는 점점 병들어서 어디까지 더 들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 속으로 들어가지만 퇴사를 하지 않은 채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염려하지도 않고, 누가 싫은 소리를 해도 신경이 안 쓰인다. 보통 사람들이 주위 사람 눈치 때문에 차마 못하는 행동들도 그냥 해버리곤 한다. 나의 현재에 중요한 의미, 맥락을 이해하고 나만의 삶을 가꾸겠다는 목표를 가지면, 조금씩 나에게 맞는 것들만 남는다.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엄마가 되고, 너는 네가 되고 싶은 딸이 되면 그만이다.
언제 이혼해도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꽤 괜찮은 결정을 한 거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까
대신 나의 주인이 댔다. 지금의 행동, 나의 책임,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불행이나 잘못의 원이나 책임을 나에게 돌리지 않고, 그 상황을 내 일부로 인정했다. 내 힘으로 잘못과 불행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내 것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결혼이 준 기회를 인정하는 것도 내 결정이다. 나에게 맞지 않는 회사나 도시의 문제에 내가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의 중심에 선다.
변화가 필요없는 맥락과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들이 변화하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이 뜻을 벼락같이 깨달았던 순간이 있었다.
세상의 모욕 앞에서 나를 지키는 시선. 아이들 이야기 앞에서는 더 많이 흔들리고 더 많이 상처받는다. 세상의 모욕은 그렇게 자칫 내 삶의 통제력을 가져가버릴 수도 있다. 나를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듯한 이야기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화가 치민다. 분노와 공포, 불안에서 비롯된 행동들은 꺼내놓고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과장됐다는 것을 매번 환인한다. 그다음 상대방을 연구한다. 내가 상대에게 들은 이야기는 명백한 모욕이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참견은 자기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다. 사람들이 타인을 보며 판단할 때, 그들은 늘 자기 자신을 비춰보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내 반응이 내가 누구인지 가장 정학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별 쓸모도 없는 의심이 든다. 내가 정말 문제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내가 뭘 해도 칭찬해주는 사람들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긴다. 이런 사람들의 존재는 나를 지켜주는 유일한 방어막이다.나는 그 대신 나를 존중해주고 무조건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는다. 내가 실제로 칭찬받을 만큼 대단한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찾아내서 그들의 말을 열심히 듣는 것이다. 나를 칭찬하고 나를 긍정해주는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은 꽤나 든든하다.
쓰면서 내가 즐거운 글을 쓴다. 내가 즐거우면 그것을 똑같이 즐겁게 읽어주는 독자가 틀림없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를 하고 성공이 아닌 나만의 재미라도 맛볼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자유를 충분히 누리고 있는가?
아이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는 일은 언제나 귀찮은 일이지만 이 순간의 아이도 나도 다시는 똑같을 수 없음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렇게 듣는 일을 시작한다. 그러면 아이의 세계 속으로 푹 빠지는 일은 쉬운 일이 된다.
갑자기 그만두어도 억울하지 않을 정도로 대충한다. 다음에 할 일, 내일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에너지나 돈이 항상 남아 있기를 바란다. 아무렇게나 한다. 그렇지만 한다.
걱정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다. 갑자기 한국에 가서 책방이나 상담소를 차릴지도 모르고, 앞으로 펼쳐질 시간에도 지금까지도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게나 언제든 그만둬도 된다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