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쓴다는 것

 

가끔씩 일기를 썼다. 욕받이 일기장이다. 아픈 마음을 안전하게 하소연할 곳이 이곳 밖에 없다 여겼다. 마음이 먹먹하거나 아플 때 여백에 미운 글씨를 채운다. 판도라의 상자. 침팬지 잠자리처럼 이곳저곳에 끄적거린 뒤 버리곤 했다.

이제는 시간, 장소를 정해 본격적인 느낌을 얹기로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일기를 쓰면 그날의 내가 있는데, 나는 보통 아침에 쓴다. 무의식적인 흐름에 가까운 내용이 주를 이룬다. 처음에는 평이하게 쓰다가 나중에는 저격 글이 되고 마는 것은 같지만.

내 마음이 이렇게 거칠고 악하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일기장을 가방에 넣어 함께 다닌다. 내가 없을 때 누군가 열어보면 절대 안되니까. 이러한 불편함에도 일기 쓰기를 멈출 생각은 없다. 일기를 쓴다고 내 마음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쓰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안을 받을 때가 있다.

 

이슬아라는 작가는 어릴 때 쓴 일기에 선생님이 코멘트를 해줬다고 한다. 그것을 보고 일기를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을 들이게 됐다고 한다. 물론 누군가 보는 것이 일기라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여기에서 포인트는 일기를 잘 써야겠다는 생각에 있다.

내 일기는 엉망진창이다. 내 마음이 엉망진창이니 글도 엉망진창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일기마저 잘 써야 되면, 내 마음은 어디에 뉘이지? 일기는 그날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서 그 기록을 의미있고 아름답게 써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내 마음을 표현할 곳이라고 생각한다. 욕 한 줄 써놓고 하루 중 처음 미소를 지어보는 곳도 일기장이다.

이슬아 작가 뿐만이 아니다. 글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이 일기와 글쓰기를 공통적인 속성으로 이야기한다. 그럴 때 내 마음은 어디에 두어야 하냐고 강력하게 외치고 싶다. 일기를 두 번씩 써야 하나. 실제 내 마음의 일기와 아무나 보아도 되는 일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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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곳을 찾고 있어
쇼노 유지 지음, 오쓰카 이치오 그림,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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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곳을 찾고 있어

쇼노 유지 지음

안은미 옮김

 

아무도 없는 곳을 찾고 있어

 

제목부터 웬일이니. 저자는 유동인구를 고려하지 않고 가게를 열었다는 의미로 이 제목을 선택했을지 몰라도. 혹은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제목이 바뀐건지 몰라도. 정말 지금의 내 마음이 그곳에 있어 몇 번을 소리내어 대뇌였는지 모르겠다.

 

이미 이 제목만으로도, 회색과 노란색의 표지 만으로도 이 책이 할 일은 다했다. 그런데 이 책의 놀라운 힘은 다음부터다. 글쓰기를 하고 싶거나 지금 내 마음 어디에도 놓아둘 곳이 없다면 책을 펼쳐서 읽어보라. 시끄러웠지만 알 수 없던 마음이 어느새 의미를 찾고 말을 내뱉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심오한 말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별말 없는 모든 내용들이 영감이되어 글을 쓰게 만드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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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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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지음

 

사회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운동하는 글에 재미를 못 느낀다. 여러 의미의 책들이 있는 것에 불만을 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안 맞는다. 그런데 이 책에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그러한 비판적 시각과 더불어 글쓰기를 이끄는 사람이다.

글쓰기를 주관하는 장은 글쓰기계의 피디라고 하면 이해가 쉽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구성원들을 모아서 자신이 생각한 방향으로 글을 쓰게 만들고, 그것으로 창출된 것을 통해 세상에 의미를 던지는.

 

거기에 비장하게도 들리는 이 최전선이라는 말이 글쓰기에 붙으니, 삶이 힘이 들고 더 이상 무언가 끈을 잡을게 없을 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번 써보라는 말로 들린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설상가상의 일들이 나를 좀먹게 하는 요즘, 나에게 필요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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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의 포옹
틱낫한 지음, 김형민 옮김 / 현문미디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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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의 포옹

틱낫한 지음

 

1년 동안 천천히 보고, 다시 1년을 천천히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책. 그리고 굳이 순서대로 보지 않아도, 어느 페이지를 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책. 300년 후 당신이 어디에 있을지 상상해 보라던가, 진정으로 행복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든가 하는 질문과 생각이 순서랄 것이 있겠는가.

무엇을 목적에 두고 그리 바쁘게 살아가는지 모르지만, 놓아버렸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의 근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는 때 조차도 말이다. 아니 그러한 때가 가장 우리의 근본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때다.

내 안에 불안, 우울, 공포의 우물을 만들지 말고 내가 오롯이 쉴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을 만 들어가는 것. 혹은 그것을 찾는 것. 그리고 천천히 나아가는 것. 맨발로 숲길을 걸어가는 것. 그때의 감촉을 느끼는 것.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내 삶의 포옹이 아닐까.

 

얼마 전 과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후임이 예고없이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공격했다. 무엇을 같이 해결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자리를 뺏기로 했다고 공표하는 자리였다. 그렇게 하라는 과장이나 좋다고 자신이 신이라며 나서는 후임이나.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다가 결정 내린 사안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을 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탐욕이라는 것이 타인의 생계를 무너뜨리고 가해자의 죄의식은 거둬들인다. 지금은 이 작은 세계가 전부인 것 같고, 줄을 잘 타서 세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뿐이겠지. 그러는 사이 병든 짐승만도 못한 쓰레기가 되어버린 자신은 어디에서 찾을 텐가.

정신없이 공격을 당하고 그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밥도 못 먹고 그래도 이 상황을 버터야 한다고 지옥 불에 내 발로 걸어가는 형국의 나도 참 볼만하다.

 

[맑고 기쁜 마음으로 평화롭게 앉을 수 있는 당신의 자리를 선택하세요.

우리는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부처님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종종 봅니다.

맑고 기쁜 마음으로 평화롭게 앉아 있는 사람 역시

부처님처럼 연꽃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디에 앉을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연꽃에 앉든, 시뻘겋게 타는 석탄에 앉든

매 순간 당신의 선택입니다.]

 

왜 시뻘겋게 타는 석탄에 앉아서 이렇게 버티고 있을까. 연꽃에 앉아 맑고 기쁜 마음으로 평화롭게 앉아 있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며칠 휴가를 내고 회사에 나가지 않으면서 장염, 설사, 복통, 가슴두근거림 등이 잠잠해져간다. 회사 밖의 풍경이 전경이 되고 회사를 배경으로 밀어내면서 평안이 오는 것을 보면, 거기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그런데 십년이라는 시간을 거기에 에너지를 주었고, 그것을 중심으로 돌아간 내 인생이 아까워서 그리고 미래가 불안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게 내몰리듯 휴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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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32
칼릴 지브란 지음, 황유원 옮김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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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8일 목요일

The April Bookclub

 

예언자

칼릴 지브란 지음/황유원 옮김

 

이 글에 대한 소회는 번역한 황유원의 [작별 전에 하는 말] 중 일부로 대신한다.

 

예언자는 오르팔리스 성이 있는 한 가상의 섬에서 열두 해 동안아니 자신을 고향으로 데려다줄 배를 기다리던 예언자 알쿠스타파가 자신의 배가 오는 것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곧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굳히지만, 도시 사람들이 모두 그를 찾아와 떠나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아무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그에게 또 다른 예언자인 알미트라는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당신의 진리를 말로써 전해 주세요.“ 그러고는 우선 사랑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리하여 총 스물여섯 개에 달하는 인생의 여러 국면들에 대한 시민들의 질문이 차례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칼릴 지브란이 이 책에서 펼치는 논리는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하며 크게 새로운 것도 없다. 진정한 삶이란 각종 흑백논리 너머에 존재하며, 우리가 곧 신은 아니지만, 신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몸과 행동을 빌려 이 세상에 도래한다는 것. 그럴 때 우리는 신과 하나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어찌 보면 매우 교조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이러한 주장은, 그러나 칼릴 지브란이 오래도록 갈고 닦은 문장들, 쉽게 공감을 이끌어낼 법한 지혜를 품은 문장들로 인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다만 번역 내내 나를 좀 괴롭히던 것은 초반의 망설임과는 상반되게 거침없이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는 예언자 알무스타파의 자아도취적인 어조, 그리고 이 글이 질문과 답변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도 거기서 어떤 토론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번역의 끝에 이르러 나는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 그가 한 답변에 대한 반론과 토론은 온전히 독자들의 몫. 나는 그것이 예언자에서 아무런 토론도 벌어지지 않았던 진짜 이유라고 혼자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리고 곁에 있는 당신에게 묻는다. 과연 당신이라면 이 질문들에 어떻게 대답하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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