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랜드 - 모든 것이 평평한 2차원 세상
에드윈 애벗 지음, 윤태일 옮김 / 늘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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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10일 목요일

The April Bookclub

 

플랫랜드

에드윈 A. 애보트 지음

 

플랫랜드에서 말하는 본질은 우리가 사는 세상, 세상 속의 사람에 있다. 플랫랜드이든 스페이스랜드이든, 3차원이든 간에 우리가 생각할 것은 사고의 편협성이다. 그리고 어떤 세상이 와도 존재할 계급, 비교, 인간의 잔악함을 경계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것을 이 책에서는 군인, 여성, 그 다음은 노동자, 이등변, 정사각형, 다각형 그리고 원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 그 너머에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여기 밖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얼마 전에 내가 느낀 감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까? 나의 세상에 벌어지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자,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몰려와서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그 알 수 없는 감정의 물결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는 바꾸어 말하면,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이든 감정이든 한번이라도 경험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전과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경험하기만 한다면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신이 정하는지 내가 정하는지 그런거는 잘 모르겠다.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내 삶의 현재는 내 선택이고 의지였다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를 자처하는 내게 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있는 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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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1
나쓰메 소세키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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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츠메 소세키

 

주인공 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인물과 함께 하는 이야기가 중반까지 이어진다.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없는 이야기. 선생님이라 부르는 인물과 어떠한 학문적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고, 그가 학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도 아닌데 나는 선생님을 존경의 마음을 다하여 자주 뵙는다. 그러다가 졸업을 하고 고향집에 내려왔는데, 아버지의 병세가 급격히 안 좋아져 도쿄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렇게 도쿄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사이, 선생님에게서 두툼한 편지 뭉치가 온다. 편지의 첫 장을 읽지만 집중하지 못하고 훌훌 넘기는데 마지막에 이 선생님의 죽음이 암시되어 있는 대목을 보게 된다. 나는 그길로 도쿄에 가는 기찻길에 오른다.

편지를 통해 선생님은 자신이 이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시작한다. 선생님은 부잣집의 독자로 걱정없이 살았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장티푸스로 모두 돌아가시고, 숙부가 재산을 관리해준다. 선생님은 도쿄에 가서 학업을 하고 방학이면 안식처인 고향집으로 돌아온다. 그 집은 숙부가 관리를 한다며 살고 있다. 방학에 고향집에 내려가니 숙부는 선생이 결혼을 하길 바란다. 선생이 이를 거부하였는데, 다음 해에는 숙부의 딸과 결혼을 하라고 한다. 이에 거부 의사를 밝히고 1년 뒤 고향집에 돌아가니 숙부의 태도가 변해 있다. 이미 숙부가 해먹은 돈은 어찌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재산을 처분하여 도쿄로 돌아온다.

도쿄에서 집을 사거나 전세를 얻거나를 생각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하숙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사모님, 아가씨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친구 K도 데려온다. 아가씨에 대한 이성적인 마음이 커서 K가 연정을 품고 있을 거라는 질투로 번민한다. 그러다가 실제로 K가 선생에게 아가씨에 대한 마음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아가씨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K의 그 동안의 사상을 가지고 꾸짖는다. 자네가 그러면 되겠느냐고. K의 사상은 사랑을 하면 안되는 거였나 보다. 그러고 선생은 사모님에게 아가씨를 달라고 한다.

어느 날 사모님이 K에게 선생이 아가씨와 결혼을 할거라는 이야기를 하자, 잘 됐다고 웃는 K.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K는 자살을 한다. 선생님은 아가씨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선생님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심연 속에서 살아도 사는게 아닌 삶을 살아갔었다.

 

사람을 의심할 줄 몰랐던 선생님이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하고 다시는 이전의 신의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었던, 오히려 불신과 피해적인 사고로 삶에 더 이상 미래가 없이 침잔해 있던 선생님.

 

책의 절반을 읽었는데도 이 책의 의도를 몰랐고, 재미가 없었다. 책의 중반까지만 해도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는지 몰랐다. 마치 노인과 바다를 읽는데, 노인이 계속 물고기를 잡는 이야기를 내가 왜 계속 들여다보고 있어야지 하다가, 끝에 가서 현타 오는 것처럼. 이 책도 그런 류이다.

많은 것들이 뉘엿뉘엿 지나간다. 순수하게 사람을 마음으로 대하면 돌팔매가 되어 돌아오는 세상 속에서 노래기의 다리 개수만큼이나 많이 다치고 다친다. 그래도 우리는 정여민 시인의 마음의 온도는 몇도일까요시집에 나오는 장군이라는 개처럼 추운 밤을 지내고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툭툭 털고 일어나 이 모진 세상을 받아들인다. 살아가는 수고는 이뿐만이 아닐테지만, 내 마음의 구름이 바람에 실려 지나가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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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 - 김현의 詩 처방전 시요일
김현 지음 / 미디어창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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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

김현의

 

정신과 의사가 자신이 만난 환자들 사례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반 저서들을 지양한다. 정신과적인 사례를 통한 전공서적은 지향한다. 왜 그럴까? 먼저 전공공부도 아닌데 왜 일반 서적에서까지 이런 내용을 접해야 하는 가에 대한 거부감이 든다. 그리고 읽어보면 내용도 후지고 뻔하다. 이 후지고 뻔한 내용으로 무엇을 이이갸하려는 걸까. 그래서 소재는 소재일 뿐이고 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옳다구나. 이 사례 쓸만하겠네하고 열거하는 것만으로 글을 완성하려고 하기 전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왜 환자들의 아픈 이야기를 꺼내야만 했는지에 대한 저자의 마음이 들어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 류는 안보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다.

 

이 책을 집어 들었다가 처박아 두었던 것도 이러한 편견 때문이었다. 글을 다 읽고 나니, 참 우습다. ‘처방전이라는 단어에 대한 나의 편협한 사고가 우습다. 좋은 의사 만나본 적이 없는(나쁜 의사는 여럿 만나고 있다) 내가 가진 그들을 향한 적대감이 나를 오히려 갉아먹고 있었다.

 

그러다 책 정리를 하다가 손에 집혀 휘리릭 넘기게 되었는데, 시는 읽을만 했다. 이 글도 그런 사례들이 판을 치고 있을거라 생각해서 시만 읽었다. 읽어보지도 않고 무슨 개소리냐는 반문과 속는 셈 치고 사례를 폈다. 첫사랑, 고양이를 보낸 사람, 인문계 고등학교에서의 적응 등 제목이 다 인 것 같이 짧은 내용들이 줄을 이었다. 읽어보지도 않고 개소리했네. 그냥 짧은, 아주 짧은 내용(사연도 아니고 사례도 아니고)과 거기에 어울릴 것이라 여긴 시가 있는 형식이었다. 1시간 정도면 책 한 권 볼 분량이라는 것과 내가 가진 의사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해준 나만의 교훈을 준 책이었다.

 

좀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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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 그림 시집
정여민 시, 허구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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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정여민 글, 허구 그림

 

유투브를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는 친절한 그림자가 있다. 유투브를 보고 닫는다. 다음날 다시 유튜브를 켜면 어제 본 동영상과 관련된 장르가 친절하게 뜬다. 습관의 힘이란 책이 생각난다. 그 책은 무언가를 하고는 싶은데 실천이 되지 않거나, 무언가를 하기 싫은데 자꾸 하게 되는 이유가 습관 연결고리에 있다고 한다. 따라서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습관의 연결고리를 이용하여 형성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별벅스, oo마트 등의 사례를 이야기한다. 이 중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나면 데이터를 분석하여 필요한 물건들이 있을 때 전단지를 집 앞으로 보내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이러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화를 냈다. 내 정보를 침해했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아이고 내 정보를 가지고 이리 이용 저리 이용, 이리 분석 저리 분석하다가 나한테 친절하게 추천까지 해주네식으로 좀 더 친숙하고 깊숙해졌다. 그리고 추천이 뜸하면 왜 이렇게 일을 더디게 하지?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기다리게 될 때도 있다. 그런 방식으로 정여민 저자의 글을 유튜브로 접하게 되었다. 80211의 경쟁률이라는 선전 문구를 메인에 걸고 있지만 주인공은 글이다. 글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수필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름의 끝자락에 바람도 밀어내지 못하는 구름이 있다] 이미 게임 끝이다. 첫 구절을 소리내어 대뇌여 본다. 벌레를 물어다주는 어미새의 마음과 세상을 총천연색으로 바라보는 백조의 마음, 많은 마음들이 적셔왔다. 글을 다 읽고, 정여민 저자의 글을 타이핑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를 하고 알라딘에 책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시집이 출간되어 있었다. 수필보다 더 마음을 애워쌌다. 모든 시가 마음에 들어오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훼손되지 않은 글자들이 있었다.

 

[쉽표

책 속의 글자도 쉬어 가는 곳이 있고

자동차가 달리던 고속도로에도 쉬어 가는 곳이 있고

해님도 구름에 가려 쉬어 가는 곳이 있듯이

바람도 쉬어 가는 곳이 있다

 

마음이 아픈 사람도

지금은 쉬어 가고 있는 중이다]. 시라는 것은, 문학이라는 것은 저자가 글을 썼지만, 읽는 이의 세상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마음 아픈 이들을 매일 만나고 있는 나는 그들이 잠시 쉬어가는 중이니, 언젠가 쉼표를 끝내고 다시 그들의 길로 걸어갈 것이라 믿는다.

 

비록 지금은

[시계 바늘 끝에 매달려

새벽 바늘을 밀어내고 있다

 

새벽은 가지런한 신발들을 흩어 놓았고

내 마음을 허공에 띄웠다]처럼 내 시간이 내 것이 아닌 듯 빠져나가고 있지만, [현관의 젖은 신발이 햇살에 달렸다.]는 듯이 젖은 마음도 마를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내리는 눈에

칼 같던 겨울 바람을

온몸으로 막아 낸 장군이가

겨울에 갇힌 표정을 짖지 않고

나에게 아침부터 꼬리를 흔들어 주었다]처럼,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훌훌 털고 일어나기를.

 

마지막으로 처음 내 마음에 들어왔던 정여민 저자의 수필을 공유하고 싶다. 정여민 저자의 앞으로의 작품을 기다리며.

[여름의 끝자락에서 바람도 밀어내지 못하는 구름이 있다. 그 구름은 높은 산을 넘기 힘들어 파란 가을 하늘 끝에서 숨 쉬며 바람이 전하는 가을을 듣는다. 저 산 너머 가을은 이미 나뭇잎 끝에 매달려 있다고 바람은 속삭인다.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집에는 유난히 가을을 좋아하고 가을을 많이 닮은 엄마가 계신다. 가을만 되면 산과 들을 다니느라 바쁘시고 가을을 보낼 때가 되면 '짚신나물도 보내야 되나 보다'하시며 아쉬워하셨다. 그러시던 엄마가 2학년 가을, 잦은 기침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해보라는 결과가 나왔다.

우리 가족은 정말 별일 아닐 거라는 생각에 오랜만에 서울 구경이나 해 보자며 서울 길에 올랐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3'라는 판정이 나왔다. 꿈을 꾸고 있다면 지금 깨어나야 되는 순간이라 생각이 들 때 아빠가 힘겹게 입을 여셨다. "혹시 오진일 가능성은 없나요? 평소 기침 외에는 특별한 통증도 없었는데요." 무언가를 골똘히 보던 그때의 선생님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미소를 우리에게 보이셨다. 세상의 모든 소음과 빛이 차단되는 것 같은 병원을 우리 가족은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도 우리의 시간은 멈추고만 있는 것 같았다. 집에 오는 내내 엄마는 말을 걸지도 하지도 않으며 침묵을 지켰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토할 것 같은 울음을 저 깊은 곳에서부터 쏟아내었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나 안타까워 나도 소리 내어 울었다. 왜 하필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생겨야만 하는 것일까?

엄마는 한동안 밥도 먹지 않고 밖에도 나가시지도 않고 세상과 하나둘씩 담을 쌓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엄마는 어느 날, 우리를 떠나서 혼자 살고 싶다 하셨다. 엄마가 우리에게 짐이 될 것 같다고 떠나신다고 하셨다. 나는 그동안 쌓아두었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엄마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엄마는.. 그러면 여태껏 우리가 짐이었어? 가족은 힘들어도 헤어지면 안 되는 거잖아. 그게 가족이잖아! 내가 앞으로 더 잘할게!" 내 눈물을 보던 엄마가 꼭 안아주었다. 지금도 그때 엄마가 우리를 떠나려 했는지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아빠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공기 좋은 산골로 이사를 가지고 하셨다. 우리가 이사한 곳은 밤이면 쏟아질 듯한 별들을 머리에 두르고 걷는 곳이며, 달과 별에게도 마음을 빼앗겨도 되는 오지 산골이다. 이사할 무렵인 늦가을의 산골은 초겨울처럼 춥고 싸늘하게 여겨졌지만 그래도 산골의 인심은 그 추위도 이긴다는 생각이 든다. 어스름한 저녁, 동네 할머니가 고구마 한 박스를 머리에 이어 주시기도 하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베트남 아주머니가 봄에 말려 두었던 고사리라며 갖다 주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에 함께 아파해주셨다.

이곳 산골은 6가구가 살고, 택배도 배송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사람 얼굴도 못 보겠구나 생각할 무렵, 빨간색 오토바이를 탄 우체국 아저씨가 편지도 갖다 주시고, 멀리서 할머니가 보낸 무거운 택배도 오토바이에 실어 갖다 주시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엄마는 너무 감사해 하셨는데 엄마가 암 환자라는 얘기를 들으셨는지 '꾸지뽕'이라는 열매를 차로 마시라고 챙겨주셨다.

나는 이곳에서 우리 마음속의 온도는 과연 몇 도쯤 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너무 뜨거워서 다른 사람이 부담스러워하지도 않고, 너무 차가워서 다른 사람이 상처받지도 않는 온도는 '따뜻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껴지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질 수 있는 따뜻함이기에 사람들은 마음을 나누는 것 같다. 고구마를 주시던 할머니에게서도 봄에 말려 두었던 고사리를 주셨던 베트남 아주머니도,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산골까지 오시는 우체국 아저씨에게도 마음속의 따뜻함이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산골에서 전해지는 따뜻함 때문에 엄마의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다시금 예전처럼 가을을 좋아하셨으면 좋겠다고 소망해 본다. "가을은 너무 아름다운 계절 같아!" 하시며 웃으셨던 그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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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묵묵하고 먹먹한 우리 삶의 노선도
허혁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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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묵묵하고 먹먹한 우리 삶의 노선도

허혁

 

장강명 작가의 책을 읽다가 알게 됐다. 종종 그런 식으로 책을 고른다. 읽는 느낌이 맞아 떨어진 작가가 추천한 책을 사들곤 한다. 이 책은 아쉽게도 이미 절판된 상태다. 2018년도에 발행된 책이 벌써 절판이라니. 나만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지. 결국 알라딘 중고로 새 책에 맞먹는 돈을 주고 샀다. 돈에 대해 여유를 두면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표본으로 살고 있다.

 

오랜 세월 가구점을 운영하다가 접고, 버스기사를 직업으로 삼은지 5년 차 되던 해에 써내려 간 글들은 엔틱과 빌트인 가구를 반복하고 있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저자만의 필력의 맛을 안 이상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플롯이 짜인 글이나 숲의 형태를 하고 있지도 않아도, 저자 특유의 옷을 입고 있어 난잡하지 않았다. 전체적인 내용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나, 불쑥불쑥, 그것도 좀 자주 튀어나오는 저자의 손맛이 마음에 들었다. [정류장의 승객은 샘물처럼 고인다] 뭐지? 이런 내가 좋아하는 느낌의 글은? 그렇다고 이게 끝맺는 말로 가기 위한 장치도 아닌데 끝까지 읽게 되는 이 보기 좋고, 소리 좋은 글들에 약간은 반하기도 했다.

 

반면, 내용은 오히려 반감을 사기에 충분한 것들이 많았다. 친절하지도 오히려 난폭하기까지 한 버스기사의 이야기와 거친 말이 갑자기 툭 튀어 나오기라도 하면 불편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승객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은 나는 저자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에 동의하지 못했다. 할 수 없다. 애초에 나는 저자의 입장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는 채 읽고 있었으므로. 그런데, 동의하지 못하면 뭐 어떤가. 평소 내가 수긍하고 열렬히 동화된 주장들이 얼마나 있는가. 그는 그대로의 버스기사 생활을 이야기하고, 나는 불편한 버스를 자꾸 안 타게 되는 승객의 입장에서 읽고, 그리고 그것이 하나가 되기도 했다가 둘이 되기도 하는. 그런 게 아닐까.

 

그래서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구구절절 변명하지 않고 약간은 싸우자는 식으로 써 내려간 글이 밉지 않았다. 누구를 대상으로 삼고 글을 썼는지조차도 모르게 솔직하게 쓰려고 한 글을 읽다 보면, 그가 자신을 벗 삼아 일상을 깁고 이야기 치료를 하듯이 내면을 치유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이 또 다른 성장을 의미하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아직 거기에 머물러 있는 듯도 하다. 꼭 성장을 하고 앞으로 뛰어가야만 좋은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쓰여질지 모르는 인생의 지도가 있어서 행복이라는 것을 찾아 헤메고 있는 것이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세상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이들의 많은 좌표들이 조화되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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