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치료사는 이렇게 일한다 - 환자를 일상으로 안내하는 재활전문가 되기 병원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1
최명원 지음 / 청년의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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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연작물(시리즈)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직업은 많다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물리치료사이 정도로 생각하겠지만보건직이라는 범주 하에 수많은 소수 직종이 일하고 있다여러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만든 기획은 산뜻했다많이들 알고 있는 물리치료사로 시작해점점 소수 직종으로 가려고 하는가 보다다음이 기대된다.

 

경력은 보통 12~18년차 정도 선에서기획 의도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직업을 소개하고 있다물리치료사는 이에 맞추어 쓰려고 노력한 티가 난다응급구조사도 마찬가지다그런데 언어재활사는 학부까지 경험이 없기에대학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마치 수기 형식으로 특정 대학원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온다연세대학원 홍보 책자인 줄 알 정도였다그럼에도 분명 기획의 가치가 있으니다음에 나올 직업에세이도 꼭 볼 생각이다더 나아져 나오리라그리고 다음엔 무슨 색일까초록파랑빨강의 원색적인 반들반들한 표지를 오랜만에 만났다.

 

물리치료사는 이렇게 일한다

최명원 지음

책을 펼치면 저자 소개가 펼쳐지는데, 역시나 홍보물 같았다. 보건의료 계통의 직업인들의 에세이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인데, 기회를 잘 이용했으면 싶었다. 자신을 홍보하지 않아도 충분히 빛날 수 있는 책이다. 물리의 기본적인 의미부터 잘 이야기하고 있다.


응급구조사는 이렇게 일한다

이태양 지음

책이라는 틀에 맞게 잘 썼다. 물론 글이 좋다는 게 아니라, 구성이 잘 되어 있다. 목차가 지저분한 게 아쉬웠다. 꼭지가 너무 많다. 응급구조사의 정의, 응급구조사 되는 방법, 응급구조사가 일하는 곳, 응급구조 대학, 대학원 전공 등 구조적인 장치가 없었다. 그것만의 매력이 있겠지.

 

언어재활사는 이렇게 일한다

우정수 지음

책은 독자층을 정하고 그 대상에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전달하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언어재활사는 이렇게 일한다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날이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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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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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레프 톨스토이 지음/박형규 옮김

 

누군가는 사람이 죽었다 살아나고, 내가 고통을 받는 것이 신의 뜻이라며 맹목적인 믿음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자 한다. 누군가는 사람이 죽었다 살아나는 걸 도저히 믿을 수 없고, 내 고통을 암묵적으로 수긍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신앙의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믿음이 없다. 차마 일어날 수 없는 일에 믿음을 가진다는 건 이 생애는 힘들 거 같다.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일이 될테니.

 

[셋이면서 하나의 실체인 하느님, 엿새 동안의 창조, 악마와 천사 등등 내 머리가 돌지 않는 한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성에 기초한 지식의 길에서는 삶을 부정할 수 밖에 없고, 신앙 속에서는 삶을 부정하는 것보다 더 말도 안되게 이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신앙에 따라 삶의 의미를 깨달으려면 이성을, 그러니까 삶의 의미를 요구하는 이성 자체를 부정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신앙을 믿는 나라들에 사는 우리 교양 있는 계층은 각 종교가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며 완고하게 다른 이들을 배척하는 경멸스러운 모습을 똑똑히 보았고, 그만큼 그 악의 유혹도 강력하여 처음에는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브런치를 한다는 것, 서평을 적는다는 것, 페이지를 쓴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은 영어를 잘하거나 논문을 써서 학위를 취득하는 일처럼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루는 건 아니지만, 나로 살아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를 살아가면서 병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런 때에 글을 읽고 사유하고 무언가를 쓰는 행위는 분명 나를 살게 한다.

 

톨스토이는 회고록에서 지식, 학문의 한계를 이야기하며, 결국 종교에 대한 믿음만이 인간을 살아가게 함을 이야기 한다. 그러기 위해 [삶의 질문은 신경 쓰지 않고 특수한 학술적 문제만 해결하려는 분야에 눈을 돌려본다면 인간의 지적 능력에 감탄하는 한편, 삶의 질문에 대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알게 된다.]거나 [인류의 아주 작은 부분을 연구해서 얻은 결론을 일반적인 결론인 양 내세우는 이러한 지식들이 얼마나 불성실하고 부정확한지는 제쳐두자]고 이야기한다. (내 입장에서는 삶의 지식과 학문의 경계를 어우르는 심리학은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종국에는 [지식은 덜 필요한 것일수록, 다시 말해 삶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적을수록 명료했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 시간에도 글을 쓰며 학문을 하고 있다. 학문으로 돈을 벌고. 지혜가 많을수록 힘들다고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지식을 넘어선 지혜가 뒤따라야 한다. 그가 정말 종교에 대한 최종 믿음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면, 글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줘야 했다. [월든]이 별 이야기 아닌 것 같아도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보는 이유는 어느 면에서라도 일치된 자연주의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의 뜻에 따라 행하는 사람들, 가축처럼 부려지는 미천하고 배우지 못하고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인을 비난하지 않는다. 한편, 똑똑하다는 우리는 공공연히 주인의 재물을 축내고 주인이 바라는 일을 하지도 않는 데다가 빙 둘러앉아 이러쿵저러쿵 따지기만 한다. ‘왜 이 막대기를 움직여야 하지? 바보 같은 짓이야.’ 그러고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주인은 바보이고 이 세상에 주인 따위는 없다. 우리는 똑똑하지만 그 똑똑함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무용함만 느끼게 되어, 어떻게든 스스로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 한다.] 톨스토이 자신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회고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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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음, 김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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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음/김윤희 옮김

 

치매도 아름다울 수 있나? 아름다운 치매라는게 있어? 잃어버린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몇 달 전 제주 섭지코지에 갔다. 머무는 곳에 키즈존이 있었는데, 한 켠에서 발견한 책이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니, 제목부터 상식을 깨는 짜릿함을 준다. 제목을 기억해두었다가 주문했다. 내용은 제목만큼 단순하지가 않다.

 

얼마 전 외국인 친구가 초등학교 수준의 문법 문제지를 추천해주었다. 책을 사서 한동안 방치해 두었다(대부분의 책이 저에게로 오면 이런 과정을 겪습니다). 서문을 읽고, 목차를 보는데 아는 내용이 많아, have부터 봐야겠다 싶었다. 친구를 만나니, am/is/are 문제를 풀어보란다(제가 문법은 안 되는데, speaking은 초등 저학년 수준의 어느 정도선에 있는 거 같아요. 덕분에 의사소통은 된답니다). 그런데 아는 만큼 모르는 부분도 있다. 이처럼 안다고 여기고 skip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내가 대충 알고 있는이미지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치매도 그렇다. 뭐든 내가 안다고 생각하고 넘어간 것들이 왜 전문가가 필요한지, 학문이 필요한지를 알려준다. 모두가 알지만, 안다는 것의 개인차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병원에서 치매환자는 정신상태검사, CDR, GDS 등의 검사를 통해 치매 유무와 심각도를 살피고, 이에 대한 약을 처방받고, 가족은 사회와 연계할 것인지, 연계를 하면 얼마나 할 것인지를 정한다. 심각하면 요양병원에서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치매는 지금은 심각도에 따라 이야기하지만, 이전에는 알츠하이머, 혈관성 치매 등으로 종류를 나누어 보기도 했다. 치매 증상을 일으키지만 발생 기저가 다르다고 본 것인데 지금은 그것보다는 치매가 나타났다는 현재에 초점을 두고 진단을 한다.

 

그런데 이 책에는 이런 내용? 없다. 치매 환자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들도 사람이라는. 마치 우리가 치매에 걸리면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가족들이 절망하고 이들을 케어하기 위해 애쓰는 데에만 초점이 맞추어졌는데, 무엇을 잃어버리는 과정에 있는 이들이 기억을 저장하는 데 차이가 있을 지언정 사람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물건을 사는 요시코 할머니의 모습이, 마치 라는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의식을 거행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주 중요한 것을 놓쳐버린 채 치매를 고칠 수 없는 병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들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고 있었다. 슬프다.

 

치매를 앓는 이들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책은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잃는다는 것은 두렵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 쫒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진 것, 할 수 있는 것에 눈을 돌려보면, 전혀 새로운 것이 보이고 이토록 아름답고 찬란한 시간을 만들 수 있다.

 

괜찮아. 괜찮아.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뒤죽박죽 그곳에서 우리는 어쩐지 너그러워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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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만드는 법 - 더 많은 독자를 상상하는 편집자의 모험 땅콩문고
이연실 지음 / 유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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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만드는 법

이연실 지음

 

 

 

비록 글에서 뿐일지라도, 실제로는 이런 편집자가 아니더라도 내가 맡기로 한 책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 편집자의 책은 나로 하여금 많은 걸 알려주었다. 사람으로서의 기본 태도 말이다.

 

[에세이는 편집자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느냐에 따라 뜻밖의 기적이 일어날 확률과 가능성이 극적으로 달라지는 장르라고 나는 믿는다.] --편집자가 할 수 있는 게 많은 책이 과연 좋은 걸까? 그게 선택의 기준이 된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알고 하는 말인가? 그런데 막상 내 글에 게으른 편집자가 붙으면, 편집자의 힘이 얼마나 중한지 알게 된다.

 

[나는 책을 편집할 때 모든 영역과 순간에서 작가의 마음을 열심히 살핀다. 내가 좋아서 섭외하고 함께 작업한 작가가 나와 함께 만든 이 책을 마음에 들어 하고 오래 자랑스러워하길 바란다. 책은 읽히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그전에 우리 스스로 간직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책의 주인공인 작가는 그래서 내게 언제나 모든 일의 1순이다.

지금 내가 만지는 것은 한 사람이 살아 낸 삶이고, 소중히 붙들어 온 기억이고, 때론 용기 내어 꺼낸 상처이기도 하다고. 그 상처가 함부로 다뤄졌다고 느끼지 않도록, 서툰 돌팔이 의사의 수술대에 올라 피 흘리지 않도록 최대한의 성의와 예의와 정중함으로 나는 교정지를 대한다. 이 책이 이렇게 가치 있는 책이라고, 이 책은 그냥 이렇게 소리 소문없이 묻혀서는 안 될 책이라고.

 

에세이 편집자가 디자인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나쁜 태도는 아무 생각도, 의견도, 제안도 없는 것이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는 무색무취한 편집자는 저마다의 삶과 스타일이 녹아 있는 에세이의 겉모습을 무표정하게 만든다. 그런 편집자가 만든 에세이는 전체적인 꼴이 이상하지는 않지만, 딱히 구석구석 뜯어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좋은 데는 이유가 없어도 되지만, 싫은 것, 불가능한 것, 심지어 디자인을 다시 해야만 하는 상황에는 반드시 근거와 방향, 대인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 소설, 인문서 등에서 작품의 의의와 가치, 이 책의 중요성과 시의성을 편집자가 정확하게 짚어 주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일 수 있다. 이 소소한 이야기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를, 이 작가는 왜 이 이야기를 쓸 수 밖에 없었는지를 최대한 살에 와닿는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곁들어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책 작업을 할 때는 철저히 작가가 되는 사람이 좋다. 자신의 책에 대한 책임감과 기대와 무게감을 가지고 충분한 시간을 투여해 원고 작업을 할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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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미식 - 우리가 먹는 것이 지구의 미래다
이의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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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미식

이의철 지음

 

처음에는 말만 기후미식이지, 채식하라는 말을 거창하게 해놨군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기승전 채식을 주장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기후미식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면서 즐길 수 있는 음식,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염두에 둔 음식을 준비하고 접대하는 행동을 뜻한다채식하자는 말이다. 자연 그대로를 섭취하는 게 지구를 살리는데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아보자.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연이 파괴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일이 잦다. 그러면서 정치, 경제보다 기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최종경고: 6도의 멸종]도 그래서 봤다. 단순히 지구가 아프다라는 두루뭉술한 것 말고, 지구가 어떻게 아파가고 있고, 덜 아프게 하기 위한 각자가 행할 움직임의 의미를 담아가고 싶다.

 

이 책은 어렵지 않고,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기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고 초등학교에서 기후를 생각하는 교육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아쉬운 점이었다. 기후위기를 교육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으면 좋은 마무리가 됐을 텐데. (생태 발자국, 푸드 마일리지 이런 말 들어봤나요? 저는 아이 유치원에 함께 가서 들어봤습니다. 생태발자국은 어렴풋하게나마 들어봤는데, 푸드마일리지는 난생처음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자연을 아끼는 마음이 크고, 그만큼 관심도 많을 거란 건 자명합니다. 세상에 아이들을 내놓은 사람 중 한 명으로 너무나도 미안한 일입니다.) 그러다 고래를 키워야 겠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진다. 고래들이 지구를 얼마나 생기있게 돌려놓을지 알고나니, 마치 바다를 건너 고래를 만나는 어린이가 된 기분이 든다.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가축, 우유를 먹지 말아야 한다.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라도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그거 안 먹어도 된단다(여태 나만 모른건가?).

성장집착이 아이들의 건강과 지구를 망친다며 이야기 한다. [과연 현재 한국에서 체중이 증가하지 않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체중을 감량하지 못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까?]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아이 성장과 관련한 제목인데 이것은 성인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지 않은가? 아이들은 체중이 증가해야 한다. 성장기에 체중이 감소한다는 것은 병원에 가야할 문제이다.

 

심지어[키가 클수록 암 발생 위험 또한 커지기 때문이다]란다. 키와 암이 비례하다고? 이건 과일반화 아니야? 통계를 돌렸는데 상관이 있게 나왔다고 해서 그것이 꼭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을까? 상관과 회귀를 혼동하고 있는 건가? 옆집 순이가 웃을수록 철수가 책을 읽는 페이지수가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철수가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옆집 순이가 웃어서이기 때문이라고 불 수 있을까? 다른 원인을 모두 배제했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키큰 사람을 좋아한다. 그렇다는 것은 나는 암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인가? 내가 아는 상식이 깨지면서 반의하는 마음도 커진다.

 

내 자녀가 더 빠르게 많이 크길 바라는 마음에 동물성 식품과 우유 및 유제품을 자녀들에게 챙겨 먹일수록 아마존 밀림이 파괴되고, 해양 생태계가 붕괴되면서 해양 블루카본이 대기로 방출될 수 있단다. ... 너무 크고, 빨리 크길 바라지 않는다. 동물성 식품과 우유, 유제품을 먹지 않아도 충분히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으면 그것을 교육하면 된다. 우리는 동물성 식품과 우유 및 유제품을 먹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리하여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거다. 지구를 오염시키기 위해 반항하고 있는게 아니다.

 

식용유를 두르지 않고 계란후라이를 먹어본 적이 없는지라 너무 생소하다. 그렇다. 그냥 생소한 게 아니라 너무 생소하다. 물가는 상승하고, 인건비는 오르지 않고, 집값은 뚝 떨어졌다. 무엇을 사기 위한 돈은 없는데, 팔 때도 돈을 받지 못한다. 돈이 없는데 사는 물건의 값이 계속 상승한다는 것은 마치 지옥의 길을 제 발로 걸어들어가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겸사겸사 돈도 아낄겸 식용유 절약하기부터 들어가 봐야겠다.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한 발자국씩.

 

p47쪽 밑에서 두 번째 오타 있습니다. 비중이 상다하다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이 아닐지요. 상다하다는 말은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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