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대한 책은 계속 쏟아져 나온다. 가장 대중적인 요리책은 말할 것도 없는데, 요리책도 점점 세분화되어 남자를 위한, 싱글을 위한, 아이를 위한, 술안주를 위한, 브런치를 위한 등등 어디까지 세분화될까 궁금할 정도로 계속해서 새로운 책이 나온다. 이제 요리책은 웬만해선 사보지 않는데, 음식 에세이는 계속해서 궁금하고 읽어보고 싶다. 어떻게 맛을 이렇게 글발로 표현할 수 있을까. 글발 없는 나는 음식의 세계를 그려내는 이들의 섬세한 표현에 넋을 잃게 된다. 아, 글이 이렇게도 맛있을 수 있구나 감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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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치 브레이크 스토리
고솜이 지음, 강모림 그림 / 돌풍 / 2006년 8월
6,000원 → 5,400원(10%할인) / 마일리지 300원(5% 적립)
2010년 10월 28일에 저장
절판

가볍게 읽기 좋은...묘한 장르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지만 음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요리법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묘한 책을 읽었다고 해야 하나? 음식을 문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나중에는 분간이 되지 않았다.
이기적 식탁- 사치와 평온과 쾌락의 부엌일기
이주희 글 사진 / 디자인하우스 / 2009년 10월
13,800원 → 12,420원(10%할인) / 마일리지 69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0월 2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0년 10월 28일에 저장

에세이와 요리법이 적당하게 버무려져 있다. 요리는, 음 이기적인 식탁답게 저자의 취향이라 딱히 대중적인 요리도 따라해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글이 참 맛있다.
음식 잡학 사전- 음식에 녹아 있는 뜻밖의 문화사
윤덕노 지음 / 북로드 / 2007년 5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10년 10월 28일에 저장
구판절판
음식에 대한 잡학다식을 원한다면 강추. 음식이나 음식 재료의 역사, 문화 등에 대해 소상하게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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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서울에 올라와 7년을 살았고, 지금은 불과 몇 분 거리에 불과한 경기도로 이사해서 살고 있지만 지금도 서울은 동네 마트보다 더 자주 드나드는 곳이기에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허나 7년 동안 너무 쫓겨 살아서 그런지 딱히 서울이 살기 좋았다거나 여행하기 좋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정말 사람들이 너무 달리는구나, 걷지 않고 뛰는구나를 깨달은 정도랄까? 헌데 경기도로 이사 오고 한 발짝 떨어져서 서울을 다시 바라보니, 젠장, 너무 좋은 거다. 내가 모르는 곳도 너무 많고, 못 가본 곳도 너무 많고, 꼭 가봐야 할 곳이 너무 많더라는 사실을 요사이에 깨달은 거다. 책꽂이에도 알게 모르게 사들인 서울 관련 책이 참 많다. 대부분이 서울 여행에 관한 책인데 왜 이렇게 서울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참 많은가...날씨 좋을 때 맘껏 서울 구석구석을 누려보리라...헌데 날씨가 너무 추워졌네...내년에나 길을 나서야 할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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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 걷기여행-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
녹색연합 지음 / 터치아트 / 2010년 9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10년 10월 27일에 저장
품절

참 의외였던 책이다.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한 순간 덥석! 모 방송 프로그램 때문에 갑자기 성곽길이 붐비기 시작했다지만 덕분에 이런 책도 잘 팔리면 좋을 텐데. 이 책 사고 바로 북악산 코스 다녀왔다. 나머지 코스들은? ㅋㅋ
아지트 인 서울 Agit in Seoul- 컬처·아트·트렌드·피플이 만드는 거리 컬렉션
민은실 외 지음, 백경호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15,800원 → 14,220원(10%할인) / 마일리지 790원(5% 적립)
2010년 10월 27일에 저장
구판절판
서울의 트렌드를 생산해내는 명소들을 소개하고 그곳의 이야기들을 담았다. 잡지식 구성과 편집이 재밌다. 헌데 소개된 카페 중에는 이미 사라진 카페도 있으니,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트렌드를 보는 듯하다.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 100- 당신이 몰랐던, 서울의 가볼 만한 곳
박상준 지음, 허희재 사진 / 한길사 / 2008년 8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2010년 10월 27일에 저장
품절

두께와 내용에서 다른 책들을 압도한다. 정말 서울 명소 100곳을 소개해놓았는데 반의 반 정도나 가봤을까...생각날 때마다 한번 들춰보긴 하는데 이 책을 보고 일부러 찾아간 곳은 아직 없다. 그냥 어디 가볼 데 없나, 하고 뒤져볼 때 딱 보기 좋은 책이다.
서울, 북촌에서- 골목길에서 만난 삶, 사람
김유경 지음, 하지권 사진 / 민음인 / 2009년 11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0년 10월 27일에 저장
품절
서울, 그중에서 북촌에 대해서만 소개해놓았다. 북촌 곳곳에 대해 잘 설명되어 있다. 사실, 이 책의 두께도 만만치 않아 읽다가 말았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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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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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접속한다.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면 바로 나타나는 뉴스기사의 헤드라인. 잡다한 방송 프프로그램이나 연예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기사가 많지만 그에 뒤지지 않을 만큼 넘쳐나는 것이 아동 성폭행, 10대 성폭행과 관련된 기사다. 성폭행. 이렇게 무시무시한 사건이 이제는 신문 사회면에 오르내리지 않은 날이 얼마 안 되는, 일상적인 범죄가 되었다. 마치 옆집 사람이 우리집 돈을 훔쳤다는 절도 사건처럼. 같은 사건이 계속 반복되다보니 반응하는 속도도 감각도 무뎌져 이젠 헤드라인이 떠도 에고, 또 사건이 터졌네, 한숨 쉬고 끝이다. 참 딸 가진 부모들은 어찌 살아야 하나 싶다.

<도가니>는 10대 성폭행, 그것도 장애아에 대한 성폭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기에 읽으면 읽을수록 분노가 치민다. 이야기의 배경으로 나오는 무진시의 자애학원이라는 장애인학교는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이다. 매년 정부에서 40억이나 되는 복지예산을 지원받지만 아이들에게 나가는 음식은 형편없어서 아이들은 저녁을 굶고 따로 간식을 사먹어야 하는 지경이다. 이곳에 근무하는 교사들은 학원발전기금이라는 일종의뇌물을 주어야 취업을 할 수 있고, 학교의 실세들은 교사들에게 막말도 서슴치 않는다. 도무지 인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곳이다.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폭행과 성폭행을 당했고, 단기간에 두 명의 학생이 자살했지만 그 죽음도 학교와 경찰에 의해 장애아의 부주의로 인한 죽음으로 덮히고 만다.  

기간제 교사로 막 학교에 발을 디딘 강인호가 부딪친 현실은  외면하기에 너무나 참혹했다. 그는 차마 상처받은 아이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인권센터 간사인 대학 선배 서유진과 함께 법정 싸움을 벌인다. 결국 힘있는 권력자들을 업은 교장과 행정실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생활지도교사만 6개월 징역을 선고받는다. 같은 죄를 지었어도 교장과 행정실장 형제는 유능한 판사 출신 변호사를, 생활지도교사는 국선변호사를 앞세워 형량을 다르게 받는 것도 참 코미디 중의 코미디라 할 수 있다. 물론 생활지도교사도 형량을 다한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는 것이 가장 최상의 코미디라 할 테지만. 무진시라는, 한때 민주화의 메카였던, 연일 안개가 자욱한 이 도시의 모습은 정의의 이름이 통용되지 않는, 계란으로 바위를 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에 다름아니다.   

강인호는 평범한 소시민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것저것 해봤지만 되는 일도 없었고, 돈은 벌어야겠기에 아내 동창의 소개로 무진시까지 내려가게 되었고, 학원발전기금을 낼 때는 잠시 수치심에 휩싸이긴 했지만 결국 현실을 인정하는마는, 그냥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다. 하지만 반 아이들을 위해 수화를 배우고,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수화를 익히겠다고 약속하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다. 그래서 딸아이 새미를 생각하며 같은 반 아이들을 마음으로 보듬어 안고, 연두와 유리의 상처를 진심으로 아파하고 걱정하며 학교에 맞서 싸우게 된다. 이혼 후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인권센터 간사로 일하고 있는 대학 선배 서유진은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과 함께하며 무진시의 보이지 않는 세력들에 맞서 싸운다. 경찰서의 장경사는 학교와 밀착관계를 맺고 적당히 사건을 은폐해주고 돈을 받아 챙기는 부패 경찰로 현실을 잘 이해하고 이용할 줄 아는 인물이다. 나중에는 서유진에게 왜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렵게 사냐고 충고하며 동정하기도 한다. 강인호와 서유진이 싸우고 있는 현실은 장경사의 입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 사람들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점수, 점수, 점수, 경쟁, 경쟁, 경쟁 속에서 남을 떨어뜨리고 여기까지 왔어요. 일점 때문에 친구는 낭인이 되고 자신은 판검사가 되었단 말이죠. 그런데 그들이 정신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아들 몇명 때문에 처삼촌과 대학 동창 사돈과 사위의 은사와 장인의 후배와 얼굴을 붉혀가며 그 정의라는 거, 진실이라는 거 되찾아줄 것 같아요? 그 사람들에게 진정 학원 이사장과 장애아의 인권이 같을 줄 알아요?" 

혹시라도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꿀 생각이냐는 장경사의 말에 서유진은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라고 말한다. 나만 바뀌면 세상 살기가 더 편할 수 있다. 적당히 넘어가고, 타협하고, 무시하면 세상 살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세상이, 너무 불합리해서 견딜 수가 없는 세상 앞에서 내가 바뀌는 것이 견딜 수 없기에 서유진은 이를 악 물고 아픈 애들을 두고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말이다. 

법원 판결 후 함께 싸운 이들은 천막에서 농성을 하며 수업을 이어나갔다. 어느 날 방문한 강인호의 아내와 아이. 아내는 친척오빠에게서 일자리 제안이 들어왔다며 함께 서울로 가자고 한다. 그때 농성 중인 천막이 철거될 지경에 이르렀다는 서유진의 전화를 받고 늦더라도 꼭 가겠다고 약속하고 아내에게 편지를 남긴다. 딸 새미를 위해 짓밟히는 아이들 곁으로 돌아간다고, 당당하고 멋있는 아빠와 남편으로 돌아가겠다고. 허나 결국 밤새 울리는 전화를 무시하고, 편지를 찢어버리고, 가족들과 함께 무진시를 떠난다. 만약 강인호가 가족들을 두고 농성장으로 달려갔다면 소설의 결말이 조금은 어색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아이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모를까, 함께 가자며 먼 길을 달려온 가족을 두고 제자들을 택할 만큼 강인호는 그렇게 정의감에 불타는, 세상이 자신을 바꾸지 못하도록 싸우는 서유진이 아니기 때문이다.  

'꼭 그래야만 하나, 하고 누군가가 물었다. 꼭 그래야만 한다, 고 그는 대답했다. 그래도, 정말, 꼭?이라고 누군가가 다시 물었다. 그래도, 정말, 꼭, 그래야만 한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보통사람 강인호의 고민이 잘 표현된 구절이다. 내가 강인호라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정말 꼭 그래야만 하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보통사람 강인호과 나의 한계이다. 분노하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와 제 생활에 안착하고 마는 보통사람. 그래서 강인호의 모습에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무진을 떠나고 육개월이 지나 강인호는 서유진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아이들이 학교를 나와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얻게 된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게 된 이야기며, 아이들이 밝아졌다는 이야기, 혹시라도 우리에게 미안해하지 말라는, 네가 보여준 사랑과 헌신을 기억한다는.    

<도가니>의 중심은 장애아에 대한 성폭행 사건이지만, 그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종 대립과 연합의 양상이 더 크게 드러난다. 자애학원에서 학생에게 가해지는 폭행, 그것도 장애아 학생에게 비장애인 교사가 휘두르는 폭행은 일방적이고 무차별하다. 그리고 성폭행 사건을 고소한 인권센터와 사건을 수사하지 않는 경찰, 인권센터는 나름대로 언론을 이용해 사건을 널리 알리고 그에 자극받은 경찰은 발빠르게 수사에 임하지만 가해자들에게 사건을 빠져나갈 통로도 제시해준다. 힘이 있는 자들의 죄는 법에도 호소하기 힘들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해자인 교장을 둘러싼 무진시의 최고 권력들, 교회, 동창회 등 지역 유지들이 똘똘 뭉쳐 그의 무죄를 뒷받침해준다. 더러움을 둘러싼 최고 권력자들의 연대는 참 견고하다. 그들은 유리와 민수의 보호자에게서 합의서를 받아내 고소를 취하한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을 보여주는 게다.  

이 모든 것이 바로 '광란의 도가니'다. 미친 세상에서 바른 정신을 가지고 산다는 건 참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상식과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고, 나 또한 그 길에 동참한다면 광란의 도가니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도가니>를 읽고 분노하며 얻은 나름의 결론이다. 미친 세상에서 똑바른 정신으로 살자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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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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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가장 예뻤을 때가 언제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잠시 고민하다가 아마도 '스무살' 때였다고 이야기할 것 같다. 스무살, 방황하고 구속받던 10대를 막 벗어난, 이제는 어른인 듯 부모 또래의 진짜 어른들 간섭에 나도 어른이라며 맞서 '철없다'는 소리를 듣는, 세상에 온전히 부딪치면서 삶은 무엇인가를 나름 진지하게 고민한 그 시절 말이다. 짧은 치마를 입어도, 진하게 화장을 해도, 몸에 액세서리로 치장을 하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펴도, 몇박 몇일 여행을 떠나는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스무살. 나는 온전히 어른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돌이켜보면 솜털 보송보송한 10대의 그늘을 막 벗어나 참 철없었던 그 시절. 그러나 가장 예뻤던 그때. 그 예뻤던 시절에 한껏 멋내지도 못했고, 일탈도 못했고, 청춘만이 할 수 있는 도전 앞에서 저어했던 기억들만 떠올리면 탄식이 나올 뿐이다. 아깝다, 참 아깝다, 내 스무살. 

<내가 가장 예뻤던 때>는 스무살 그 봄날같은 시절의 친구들 이야기이다. 딸 다섯 부잣집의 네째로 태어나 집 안에서 존재감이 미비한 마해금. 얼굴 예쁘고 똑똑한 순옥, 정금 언니, 대학 다니다가 공장에 취업해 혁명을 하겠다는 영금 언니, 노래를 잘하는 동생 영미 등 자매들 중에서 인물이나 학벌이나 뭐 하나 내세울 뚜렷한 것 없는 신세다. 이들 자매들의 알콩달콩한 다툼이나 딸들의 연애, 실연, 가출 앞에서도 결코 법석을 떨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주며 짐짓 농담으로 넘기며 아버지 어머니가 내뱉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는 보는 내내 웃음이 터질 정도로 정겹고 찐하다.  

'아홉 송이 수선화' 모임으로 만난 친구들은 열여덟살에 5.18을 겪고, 그 와중에 친구 경애를 잃고, 경애의 죽음을 못 견뎌하던 친구 수경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시간은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가고, 재수를 하고, 취업을 하는 등 인생에서 가장 예쁠 그 시절을 보낸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에 겪은 5.18은 다소 소설의 분위기를 무겁게 이끌어나갈 수도 있었으나 10대의 발랄함과 스무살의 풋풋함은 5.18로 고통스러워하거나 기억 저편에서 억지로 끌어내어 우울해하지 않는다. 왜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잘 잊냐고, 정작 미안해할 사람들은 미안해하지도 않는다며 숨을 쉴 수가 없다던 수경이의 울부짖음처럼 산 사람은 그냥 하루하루를 살 뿐이다. 친구의 죽음은 분명 상처지만 각자의 삶은 현실이니.

스무살 그들의 일상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은 아빠의 바람과 엄마의 죽음으로 방황하던 승희는 웬 '가이새끼'와의 하룻밤으로 아이 승춘이를 낳은 것이다. 조카의 기저귀와 젖병을 훔치고, 언니의 호주머니를 털고,  아이의 옷을 짓는 식으로 친구들은 자기들의 아이인 양 승춘이를 돌보고 보듬는다. 승희를 좋아했던 진만이는 이 때문에 방황하고, 진만이를 통해 친해진 만용이는 승춘이의 아빠 노릇을 자처하며 살뜰하게 돌본다. 해금이는 작은아버지 제재소에서 만난 환이를 보고 첫눈에 반해 그와 알콩달콩한 연애를 하게 된다. 그러나 폭력적인 아버지와 폭행당하는 어머니, 5.18의 상처를 안고 서로를 죽일 듯 덤비는 두 형들, 아픈 여동생 영이를 둔 환이는 형들의 다툼 가운데 병을 깨고 손목을 긋는다. 그 와중에 동생 영이가 죽고 환이는 깨어났지만 다시 예전처럼 잘 웃지 않는다. 해금은 환과의 이별 후 서울의 공장에 취직을 하지만 시위 도중 다리를 다치고, 대학생 신분을 포기하고 공장에 위장 취업했다가 고문당하고 풀려난 정신이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온다. 서울대에 다니던 승규는 잡혀서 고문당한 후 강제 입대를 하고, 군대에서 의문사한다. 고속버스 안내양을 하던 승희는 소설 현상공모에 도전했다가 떨어지지만 승춘이와 함께 고향 남원으로 돌아가고,  정신이는 여행을 떠난다. 해금이는 거리에서 만난 환이의 환영을 뒤로 하고 꽃향기 날리는 봄밤 속을 달린다. 

이들의 스무살은 행복도 기쁨도 누리지만 상처받고 아파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익히며 한발 한발 세상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누구나의 스무살처럼. "우리는...아직 좀더 흔들려도 좋을 때잖아"라는 승희의 말처럼, 스무살은, 좀더 흔들려도 좋은 때다. 꽃향기도 즐길 줄 알고, 꽃을 보고 아름답다 말할 줄 알고, 사랑받고 사랑할 줄 아는, 그런 나이다. 이후에는 기다리지 않아도 자로 잰 듯 재단된 삶이, 흔들려선 안 되는 팍팍한 삶이 그네들 속으로 들어올 것이니. 그래서, 흔들려도 좋을 나이에 흔들리지 못한, 풋풋함을 한껏 누리지 못한, 내 스무살 그 시절이 아깝고 또 아깝다.

**기억에 남는 구절 

피 흘리는 경애를 안고 목놓아 외쳤다는 수경이.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소리. 그러니까, 그것은 인간임을 외치는 소리. 그러니까 그것은 너의 슬픔에 내 슬픔이 공명하는 소리. 그리고 수경은 목이 터져라 외치다가, 화답 없는 세상에 절망하여 저세상으로 떠났다. 지금, 2번 시다 판님이가 3번 미싱사 경자를 잡아가지 말라 외치는 수경이 경애를 살려내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이제라도 화답해야 한다. 내가 인간이고자 한다면, 그리하여 내가 우리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인간의 시간 쪽으로 돌려놓고자 한다면.  

그렇게 가슴앓이도 하면서, 이곳저곳으로 떠돌기도 하면서, 바람 앞에 선 들꽃처럼 몸을 잔뜩 움추리기도 하면서, 그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면서, 그러면서 우리의 청춘은 조금씩 단련되어가리라. 기필코 살아서 경애, 수경이, 승규 몫까지 굳세게 살아서 마침내 아름다워지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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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헌장 - 사교육틀 밖에서 내아이 다르게 키우기
권영숙 지음 / 이미지박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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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난 큰아이는 아직 한글을 잘 모른다. 제 이름 석 자와 몇몇 낱글자를 더듬더듬 읽는 수준이다. 혼자서 학습만화도 보는 아랫집 아이와 비교하면 기가 찰 노릇이다. 답답하던 차에 학습지 교사의 말에 홀딱 넘어가 한글 학습지를 시작하게 됐다. 방문학습지는 절대 안 시키겠다고 다짐했건만 벌써 영어에 한글 두 과목이나 한다. 앉혀놓고 가르치다가 고성이 나오고 아이를 주눅 들게 만들 바에야 전문가의 손에 맡기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지만 겨우 6살인데, 정말 이래도 되나 계속 주춤주춤하게 된다. 

'엄마 헌장'은 요즈음 같이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나에게 많은 길을 제시해주었다. '사교육 틀 밖에서 내 아이 다르게 키우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정말 남들과는 다르게 키우는 저자의 아이 키우기 방식이 나온다. 여느 육아서처럼 딱딱한 이론 위주가 아니라 킥킥 웃으며 부담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어서 금방 책 한 권을 뚝딱 봐버렸다. 두 딸과 함께한 일상들을 읽다보면 큭큭 웃다가 깔깔 웃음도 나온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에서 내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아이의 반항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그래, 엄마는 저래야 하는 거야 하며 우상을 발견한 듯 감탄하며 배우기도 한다.  

저자의 아이들은 딱히 공부와 친해 보이진 않는다. 둘째 해주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한글을 다 못 뗐다. 첫째 한길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도 100곱하기100은 200이라며 천연덕스럽게 말할 정도다. 이쯤되면 어느 부모가  그래, 공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아이들을 격려할 수 있을까. 난 정말 자신 없다. 지금도 초조한데 말이다. 물론 두 아이 모두 대안학교에 다녔기에 가능한 일일 수 있다. 일반 학교에 보냈더라면,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학교 분위기에서 아이들이 밝게 자랄 수 없는 것은 물론 선생님과 친구들의 멸시에 부모가 그래, 괜찮아, 공부는 못해도 돼, 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도 아이가 입학 후 힘들어한다면, 학교가 성적 순으로 줄 세우기를 계속해서 강요한다면 대안학교를 보낼 생각이 있다. 하지만, 정말이지 지금의 바람으로는 공교육이 일찍부터 아이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몰아내지 않길 바랄 뿐이다. 사교육 시장은 공교육이 키운다는 걸 관계자들은 정말 몰라서 계속해서 아이들을 경쟁구도로 내모는 건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대안학교가 필요 없는, 학교가 아이들이 밝게 자랄 수 있는 울타리가 되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무모한 바람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책은 저자가 말하는 엄마 헌장 10가지를 중심으로 나누었고, 각 부분이 끝날 때마다 대안학교 졸업생 6명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대안학교에 진학하게 된 계기, 생활, 진로 등 일반인들이 궁금해하는 대안학교의 모든것을 인터뷰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어쩜 하나같이 똑똑하고 자기 삶에 대한 확신에 가득 차 있으며, 밝은지! 대안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 모두 적어도 우리 사회의 대안이 되기에는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돈 잘 버는 직업, 남들이 우러러보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모두 자기 삶에 당당한 주인공이니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엄마 헌장 10가지는 다음과 같다.  

나는 아이에게 바다를 비추는 등대로 남을 것이다. 나는 사회가 규정한 틀 속에 아이를 가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이를 성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아이를 '엄친아'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왜 그것밖에 못하니?"가 아니라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아이의 '자아독립'을 인정해줄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최고'라는 말보다 '배려'와 '당당함'을 가르칠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누가 뭐라 해도 내 아이를 믿을 것이다. 나는 절대 아이의 아빠 엄마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아이를 속박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모두 실천하기는 어려우나 노력할 것이다. 모두 내것으로 만들어 아이에게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엄마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좋은 엄마라고, 아이가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 또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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