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책을 선물로 받았다.
아래 사진과 같이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와 '나를 부르는 숲'이다.
이 책을 보낸 분의 서평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 목록에 있는 책 중에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참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을 쓴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도 너무 좋습니다. 후자를 먼저 읽고 저자에 푹 빠져있던 차에 이번엔 과학책을 써내서 경악했고 감동했습니다. 대단한 필력에 좋은 내용, 기지에 찬 유머,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 백문불여일견."
저자인 빌 브라이슨은 참 마음이 따뜻한 generalist인가보다.
한편, 오늘 각 신문 북섹션의 첫머리를 장식한 책, 다치바나 다카시의 '뇌를 단련한다'를 보자.
일본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 책은, 현재의 이른바 '지식인'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 우리 '인간의 현재' 모습은 데카르트 이래 시작된 요소환원주의에 의해 쪼개질 대로 잘게 쪼개진 파편의 극단에 서있는 아주 위험한 형국이다. 인류의 전통을 통해 축적된 어마어마한 교양의 세계, 지(知)의 바다를 벗어난 채 그 한 귀퉁이에 몰린 일그러진 우리의 모습. '문과.이과로, 전공으로' 그것을 가중하는 교육풍토. 진정한 학문을 연구한다는 대학에서조차 미세한 것, 보다 정밀한 것을 연구할수록 학문적 업적으로 인정받고, 거시적으로 전체를 바라보는 연구를 하면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풍조. 문과계 지식인이 자연과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과계 지식인이 인문사회과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악순환 등.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우리의 젊은이들을 방황하게 하고 있다."
타당한 문제제기이다. 그런데,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들에서는 이런 폭넓은 지식을 그 자체의 즐거움 혹은 개개인의 세계관 형성을 목표로 한다기보다는, 이러한 세계관 형성을 '21세기 전사'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버린다. 그의 책들 역시 요점정리, 사실 나열, 세세한 지식의 비교, 검토 등의 일본풍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틀에서 벗어나자'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다음의 멘트들에서는 머리의 털이 쭈삣 서는 것을 느꼈다.
" 여러분은 곧 21세기 최전선으로 내던져지려고 하는데도 여러분의 머릿속은 여전히 19세기 이전의 것들로 가득 차 있고, 20세기의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모릅니다."
"대학 담장 너머는 곧 전선과 같습니다. 전장에 비유하자면 참호 속을 기어다니며 24시간 내내 총을 쏴야 하는 현장입니다. 매일 전사자가 나오는 현장이지요. 4년 뒤 그런 곳에 투입될 각오가 돼 있습니까?"
분명 다치바나의 이번 책에도 많은 지식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그의 책은 사지 말아야겠다. 지식의 용도를 잘못 전파하는 그에게 돌아갈 인세가 너무나 아깝다.
실은, 나 자신도 내심 generalist가 되고 싶다.
꼭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많이 알고 많이 읽고, 유명해야 generalist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generalist가 되고픈 이유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이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어우러지기도 하면서 이 세상의 윤곽을 어렴풋하게나마, 그러나 점점 선명하게 그려내는 것을 보는 재미,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다양한 면을 보면서 좁은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
이 우주 안에서 인간과 생명들이 얼마나 보잘것 없고 유약한지,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기쁨 때문이다.
이런 바탕 위에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꿈꾸는 것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