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지난주 동아일보 북섹션에 소개된 책 "도덕의 정치" (조지레이 커프 지음 / 백성)에 대한 서평입니다.
" 미국의 보수와 진보를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낙태에 대한 찬반, 환경문제 대처에 대한 적극성의 차이, 국방비 확장 대 복지비용 증액 등 현실정책에서의 이견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아니면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다른 '인종'인 걸까.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인지언어학 교수인 저자는 후자의 편에 선다."
이 책을 아직 사서 본 것은 아니기에 이 책의 성격에 대해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내용이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에도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다른 부문은 잘 모르겠고, 요즘 의료계의 현안인 '공공의료'를 두고 생각해보겠습니다.
[1] 진보적인 단체에서 '공공의료'라 할 때에는 기본권인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의 안전망으로써 국가가 제공해야 할 의료 체계, 혹은 시설을 말합니다.
(김용익 교수님께서 분류한 소유 형태 기준의 국공립/개인 병원, 성격을 기준으로 나눈 영리적/공공적 구분과는 별개로, 그냥 제가 임의로 정의한겁니다. )
[2] 반면, 보수적인 의사 단체에서 '공공의료'를 말할 때는 이런 면보다는 비현실적인 심사기준과 삭감으로 인한 의사 자율성의 침해, 경쟁이 없는 독점적인 거대보험공단의 횡포 및 비효율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든 각종 기관들의 지도감독을 지칭합니다. 거기다가 공공의료나 사회주의와는 관련이 없는 경쟁의 격화와 경영의 악화까지도 '사회주의자들' 탓으로 뭉뚱그려져 있습니다.
같은 '공공의료'를 두고 이렇게 다른 definition을 내리고 있으면, '공공의료'에 대한 생산적인 대화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적인 단체에서도 [2]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고, 우리도 개원의로써 분노하는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2]번에 대한 문제 제기에는 어쩐 일인지 소극적입니다. [2]번 문제에 동의하면 [1]에서도 밀릴까 우려해서인가요? 아니면 [1]에 비하면 [2]는 부차적인 문제라서 그런가요?
보수의사단체들도 [2]번이 '공공의료'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열악한 보험재정, 급격한 의사 수의 증가 및 도시지역 편중, 공무원들의 행정 편의주의 및 일 만들기 차원에서 기인하는 문제라는 것을 정말 모르는걸까요? 의사단체가 원하는 '정치적인'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의사만을 위한 정책을 목청껏 소리치기보다는, 해묵은 이념을 기준으로 마녀사냥을 하기보다는, 앞장서서 국민의 건강권을 위한 정부의 보건의료재정 확대를 촉구하는 것이 더 빠른 길일겁니다.
세계관과 언어의 정의 자체에서 오는 이런 문제점을 양측에서 인식했을 때 좀더 건설적인 대화와대안이 모색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