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 몸담고 있는 단체에 같이 활동해오는 선생이 있다.
스마트한 인상에 점잖고,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원칙은 꼭 지키는.... 나이는 나보다 한두살 아래의 사람이다.
학교 졸업하고, 수련의 과정 밟고, 군대 다녀와서, 30대 후반에 접어드는 불과 몇 년 전에서야 제대로 월급을 받는 직장에 취직했다.
지난 3년간 노숙자 진료소 소장을 맡아서 참 열심히 해왔었는데, 작년 후반, 소장직을 이제 그만하겠다고 했다.
모두들 그 선생님의 노고를 익히 아는지라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땅한 후임자가 없어서 조금만 더 수고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셨다.
건강이 어떻게 안좋은지, 정말 안좋은 건지...... 몇개월 동안 함구하다가, 지난 주에서야 알려주었다.
'Spinocerebellar Ataxia(degeneration)'
학생 때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병명이다.
소뇌와 척수의 세포들이 퇴화되면서 처음에는 보행 장애를 일으키고, 차차 다른 근육들의 움직임도 둔해지는, 수년 내로 휠체어 신세, 그 후에는 침대에서 생활하게 되는, 치료법도 없는 병이다.
지난주 회의에서 병에 대해 말하면서....
" 제대로 걷거나 서는 사람이 부럽다. 지금은 걷기는 하지만, 외래 환자 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언제까지 근무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지금같은 진행 상태면, 년말이나 내년쯤에는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 진짜 장애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차라리 지체장애인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들은 진행이 안되니까."
이 선생은 가장이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 늙으신 부모도 부양해야 한다.
작년 촛불집회 때 온가족이 함께 참석했던 선생님과 사모님, 그리고 아이들 모습이 떠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