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 이름을 지독하게 못 외운다.

암기라는 것 자체도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특히 사람 이름, 그리고 그 사람의 직함,  작품 등의 연결은 거의 불가항력이다.

중고등학교 때도, 국사나 국어시간에 작가- 작품 - 소속 계열 등에 관한 문제는 그냥 하나 틀리고 말자고 접고 들어갔었다.

대학 가서도 골치였다. 병 이름이나 현상에 자기 이름을 붙여놓은 사람이 왜그리 많은지...

예글 들면 ' XX 증후군에 대해서 쓰시오' 하는 문제가 나오면 줄줄 답을 쓸 수가 있었는데, 증상을 나열해 놓고 '이것이 무슨 증후군인가?' 하고 문제가 나오면 이름 하나만 쓰면 되는데 딱 막히는 정도였다.

이런 저런 모임에 가서 만나는 사람들도 얼굴은 다 아는데, 이름은 영 젬병이다. 하물며 소속 단체는 더더욱 헤깔린다. 적어도 다섯 번 이상은 만나야 이름이 익숙해지는 것 같다. 이런건 사회생활에 결정적으로 마이너스인데...

이런 증상은 알라딘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얼마 전에 로쟈님 서재의 글에 '마냐님, 글 늘 잘 읽고 있어요' 라고 썼더니, 로쟈님이 'Who is Manya?'라고 답글을 달아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 로쟈님 글을 잘 읽는다는 것이 그만 실수를 한 것이다.

실은 나는 로쟈님 글도, 마냐님 글도 다 좋아한다.

오늘은 수수께끼님 서재에서 사고를 쳤다.

'무녕왕'을 갔다가 '무열왕'이라고 박박 우겨서 수수께끼님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ㅜㅡ

 

이렇게 유난히 이름만 못외우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  곰곰히 생각을 해도 마땅한 이유가 없다.

다섯 살때쯤 쇼핑카트에서 떨어져 기절했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초등학교때 열이 42.3도까지 오른 적이 있어서 그런지? (그러고도 주사는 싫다고 주사도 안맞았다.)

아니면 성경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너무 잠재의식에 깊이 새겨서 그런지? --;;  (말도 안된다.)

누가 무엇을 했다는 것에대해 기억하는 것이 갈수록 부담이 된다. (이거 써놓고보니 거의 공포증 수준이네! )

알라딘에서 누구의 무슨 작품이 어떻고, 무슨 연주가 어떻고, 언제 무슨 글에서 어땠고.... 하는 글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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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7-02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2.3도! @0@ 저는 체온이 거기까지 올라가면 사람이 죽는 줄 알았어요!

sooninara 2004-07-02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름치인데..반가워요..가을산님...^^ 전 심각해서 지금 동창생 이야기하면 아는 이름이 하나도 없어요..ㅠ.ㅠ..친구들말고는 다 '이렇게 생기고 이런짓 한 그아이 있잖아?'하면서 말한답니다..이름이 생각이 안나서요..그리고 학교 다닐때 아이들이 운동선수나 연예인 좋아라하는걸 보면 얼마나 신기했는지..아이들이 그팀 선수이름을 줄줄이 말하잖아요..난 한두명 밖에 모르는데..지금도 이름 못외우기는 해도..이렇게 잘 살고 있잖아요..
아마 우리들은 그쪽에 해당하는 부분이 남들보다 약한가보죠..뭐..
(전 나무님이 참 대단하더라구요..동창생 이름하며..선생님 이름까지도 줄줄이 외우시더라구요..전 담임선생님말고..대학때 전공교수님도 헷갈릴때가..참 심각하죠)

진/우맘 2004-07-02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증상이 너무도 똑같으시군요....저는, 00학교 나왔어요. 했을 때 "00학번 000 알겠네?"하는 질문이 세상에서 젤 싫어요. 흑흑흑...

조선인 2004-07-02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은 증세 있어요. 이름이랑 숫자를 지독히도 못 외워서 중학교 때까지 국사를 정말 싫어했죠. 실은... 지금 제가 같은 회사에서 5년차인데... 아직도 이름을 못 외우는 동료가 있다는... 직원수가 30명도 안 되는데 좀 심하죠... ㅠ.ㅠ

미완성 2004-07-02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현재 읽고 있는 '닥터 지바고'의 '니꼴라이 니꼴라예비치 베제냐삔'때문에 미칠 지경이예요.
왜 니꼴라이는 니꼴라이 본연의 이름 그대로만 머물 수가 없는 것일까요. 왜 그는 니꼴라이 니꼴라예비치 베제냐삔인 걸까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코 그가 '닥터 지바고'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다 진/우맘 님의 깊으신 가르침 덕입니다. 저는 방금 사람이 되었어요.)
가을산님의 고민에 깊이 공감합니다....그것은, 절대로 가을산님의 책임이 아니예요.
가을산님이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가 가을산님께 다가와 꽃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아아, 생각하면서 까먹는 건망증이여, 부르다가 잊어버릴 이름이여..! 대체 이건 무슨 말이란 말입니까..)

// 반갑습니다...늘 님의 글을 읽으며 감동을 주워먹으며 배가 불렀어요..ㅠㅠ

가을산 2004-07-02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름치가 상당히 흔한 증상이라니... 안심 시켜주시는 님들 고맙습니다. ^^

멍든사과님 안녕하세요?
저도 옛날에 '닥터 지바고'에 지바고가 없다라는 것에 어리둥절했었어요.
러시아 문학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이름이 두세개씩 돼서 읽을 때 무척 헷깔렸던 것 같아요.

물만두 2004-07-02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 읽고 나서 주인공 이름도 못 외우는데요. 뭘...

starrysky 2004-07-03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 중에 사람 이름, 소설 속 등장인물 이름을 기가 막히게 잘 외우는 친구가 있는데, 제게 있어 그 친구는 거의 신과 같은 경지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ㅠㅠ

마냐 2004-07-04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업계 사람들 중에는,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최소한 고향과 고등학교, 대학교, 예컨대 사시라면 몇회, 누구 누구 동기...뭐, 이런 정도를 줄줄 외는 경우가 적지않습니다. 특히 정치권, 법조 이런 동네 부근이 다 그렇더군요....저 역시 '이름치', 게다가 한번 봐서는 절대로 헷갈리는 '얼굴치'인지라...."흥, 그런 학연, 지연이나 따져서 뭐할려구!"라며 칫칫 합니다만...암튼, 뒷맛은 좋지 않슴다.....그나저나, 가을산님께 신세를 졌으니...로쟈님을 한번 찾아뵈야겠군요...흐흐.

ceylontea 2004-07-05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름뿐 아니라 전 생활의 건망증 증세로 고생하고 있어요...
그래서 메모라도 하려고 펜을 들었다가 무엇을 적으려 했었지.. 하는 정도라니깐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