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봄, 선산에 성묘를 가는데, 아버님과 남편이 새로 생긴 고속도로를 타고 가보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성묘 전날, 남편은 회식이 있어 늦게 오고, 대전에 내려오신 아버님은 저녁 내내 선산(경남 의령)까지의 경로를 계산하느라 부심하셨다.

경부선을 통해 갈 때와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통해 갈 때의 고속도로 구간거리, 국도구간 거리, 나들목(인터체인지) 등을 비교하고, 교통체증이 어느쪽에 많은지 등등을 고려하시느라 몇시간을 고민하셨다. 나도 덕분에 인터넷을 검색해서 지도 찾아서 프린트해드리고 의논상대 해드리느라 딴 일은 하나도 못했다.

밤 10시에 돌아온 남편, 딱 한마디로 결론낸다.

'거 고속도로에 올라타서 네비게이터 가라는 대로 가면 될거에요!'

몇시간 고민한 것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헛수고가 되어버린 아버님의 얼굴을 차마 보기가 민망했다.

 

2. 중3때 우리 반에 유난히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책과 공책을 미련 없이 덮고 노는 나와 같은 '보통' 아이들과는 달리, 1-2분이라도 그때 배운 내용을 다시 훑어보고, 중요한 것을 표시하고서야 책공책을 집어넣는 친구가 있었다. 성격도 조용하고 침착해서 '저친구 꽤 의젓하네'라는 분위기를 팍팍 풍겼었다.

고등학교를 다른 학교로 진학한 그 친구는 결국 대입시험에서 학력고사 문과 수석을 했다.

얼마전, 우리 아들에게 '예습을 안하더라도 그때그때 복습하고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면 잘할 수 있다'는 취지로 그친구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대뜸 돌아오는 반응....

'엄마, 그친구 혹시 왕따 아니었어? 어떻게 쉬는시간에 친구랑 놀지 않을 수 있지?'  ㅡㅡ;;

이건 세대차이인지 가치관 차이인지 구분이 안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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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5-21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는 가치관 차이같은데요? ㅋㅋㅋ

진/우맘 2004-05-21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클 때는...왕따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지요. 개념은 미미하게 있었을 지언정, 공부 잘 하는 아이는 무조건 왕따 명단에서 제외 였는데.^^;

마태우스 2004-05-2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번째 사례가 가치관 차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저희 친구들은 습관적으로 소변보러 갔었는데...

아영엄마 2004-05-21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비게이터가 뭔지 잘 모르는 저도 구세대인듯..하지만 그거 차에 달린거죠? 길을 찾아주나봐요? 어쨋거나 실제로 본 적은 없어놔서...
쉬는 시간에 공부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다니.. 혹시 요즘 학생들은 공부잘하는 아이를 왕따시키고 그러는 건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군요. ^^;;

비로그인 2004-05-21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아드님 말이..우린 그런아이 왕따시켰지요. 그~러~나 잘노는 아이 공부도 잘해요 도대체 몹니까?? 그런아이 정말 싫어요--::

superfrog 2004-05-21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폭스바겐님과 금붕어가 같이 따시켰죠.. 그런 아이.. ^^

가을산 2004-05-22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글쿠나... ^^

▶◀소굼 2004-05-22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전 그런 친구들 방해하러 다녔죠-_-;;쉬는 시간엔 쉬는거야!

ceylontea 2004-05-23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치관 차이 같네요.. ^^
저는 쉬는 시간에 절때루... 제 자리에 없었지요.. 다른 반으로 놀러갔지요... 그래서.. 쉬는 시간에 공부하는 애들 방해할 틈도 따 시킬 틈도 없었어요. 저 놀기도 바빴으니... 친구들이 저를 만나려면 저희 반빼고 아예 다른 반으로 찾으러 오곤 했답니다.. ^^

明卵 2004-05-23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시간 고민한 것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헛수고가 되어버린 아버님의 얼굴을 차마 보기가 민망했다'... 으악. 진짜 싫습니다. 보기가 민망했다는 말이 절절하게 와닿네요. 저는 오래 고민하던 일에서 너무나 간단한 답이 나와버렸을 때의 아빠의 허탈한 표정을 보면, 정말 울고 싶어요. 할아버지(한참 고민했습니다. 아버님이라고 쓰냐... 아냐... 할아버님? 가을산님 아버님? 으으윽...)는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네비게이터라, 네비게이터라.'
쉬는 시간 10분인데, 그 중 반만 공부하고 반은 놀 수도 있지^^ 그런데요, 요즘 쉬는 시간엔 놀기도 하지만 '보통 아이들'도 많이들 공부를 해요. 다만 전시간에 배운 걸 복습하고 다음 시간 공부를 예습하는 게 아니라, 학원 숙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 다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