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딸에게 읽어보라고 준 책.

책장에서 바래가고 있기에 읽었다.

흠...

이런 책을 어쩌자고 딸에게 줬을까.

이 책은 딸 가진 아버지가 읽어야할 책이었는데......

 

더 이상 같이 놀아주고 안아주고 침대 옆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며 재우기에는 너무 커버린 딸과

어떻게 마음과 생각을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는 아버지가 읽어야 할 책이었다.

 

저자는 그냥 바라만 보던 산을 단 이틀동안의 교육을 받으면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50세 생일에 혼자 등반하겠노라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다 결국 큰 딸과 같이 교육을 받고 등반에 성공한 이야기.

 

그건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으니,

같이 등반을 하면서 사춘기 딸이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

당당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아이가 자라 10대가 되면 부모보다는 또래와 더 많이 어울리게 되고,

부모는 갑자기 말을 듣지 않거나, 하지 않거나, 알아듣지 못할 말을 늘어 놓는

아이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할 건지 고민하게 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등반(단순한 등산화로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다)을 같이 하며

늘 지켜주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딸이 자신을 스스로 지키고,

심지어는 아버지를 염려하며 도우려고 애쓰는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은 굉장히 기쁜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딸을 가진 부모는.

 

모든 아이가 부모로부터 늘 사랑받고, 인정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자란다면

매일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이런 험한 세상은 오지 않았을텐데.

아이가 독서실 가기 전 편의점에서 초콜렛 하나 사 먹고 가겠다기에 돈을 주고,

독서실까지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며

무사히 도착했는지 문자로 확인해야 되는 이런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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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대학이란 지성의 모임,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 토론으로 이루어진 지식의 장소였다.

지겹도록 길고, 지루하고, 힘든 시기를 거쳐 대학에 발을 들여놓은 후

대학이란 조금 더 어려운 공부를 하는, 고등학교의 연장이었다. 

대학은 지식을 쌓게 해 주지도 않았고,

결국 면허증을 따기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 밖에 하지 못했다.

 

그 좋은 시기를, 나름 머리가 있었다면 훨씬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었을 그 시기를,

어쩌자고 나는 하릴 없이 보내버리고, 이렇듯 무의미한 삶을 연명할 수 밖에 없도록 날려버렸는지......

 

오로지 지식을 위한 지식탐구를 해야겠다 결심할 수 있는

스무살의 그 젊음이 나는 부럽기만 하다.

 

책은 읽고 있으나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나는 악덕에 기여하고 있는 것인가.

 

... 덕분에 나는 책이 언제나 사람을 아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는 사실,

적어도 순수하게 지적인 경험이 모든 사람에게 유효하지만은 않다는 사실과

책을 읽었으나 여전히 무지한채로 남아 있는 인간이야말로 근원적인 악덕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p55

 

... 나는 직업활동을 한다는 것은, 단순하 반복노동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

근본적인 나 지신의 상실을 안게 되리라는 막연한 예감을 느꼈다.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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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해외연수를 떠난 첫 날,

쓰레기장이 되어 있던 남편의 사무공간을 청소했다.

바닥, 책상 위, 책장...

곳 곳에 별 게 다 쌓여 있다.

거의 5년 동안 쌓인 책, 세미나 자료, 업무 자료, 어디선가 받은 사은품 등등

심지어는 2009년 다이어리까지. 물론 손도 대지 않은 새 것이다.

그렇게 방치된 환경에서 어떻게 일이 되고 공부가 되는지...

쓰레기가 쌓이면 '기'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데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더운 여름날에 상대가 청하지도 않은 오지랖을 떨게 된 건 '일' 때문이었다.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남편과 나는 같은 장소에서는 일을 해 보지 않았다.

그러다 단시간 내에 같이 해야 할 프로젝트가 생겨 남편 사무실에 자주 가게 되었다.

책상이 하나 밖에 없어 바닥에 앉아 일을 해야 했는데 도저히 엉덩이를 대고 싶지 않았다.

먼지가 얼마나 많은지 비염이 있는 나에게는 무지 열악한 환경인 거다.

시간만 있다면 저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산뜻하게 일을 할 수 있으련만

시각을 다투는 일이라 못 본 척하고 일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언젠가는 쓰레기로 가득 찬 저 '악의 소굴'을 천사들의 보금자리로 만들고 말테다!!

기회는 빨리 왔다.

남편이 해외연수를 가게 된거다.

남편을 버스에 태워 보내고 돌아서자 마자 마스크, 장갑으로 무장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이틀 동안, 약 8시간에 걸쳐 치우고 버리고 나니 이제야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이 되었다.

어디선가 '신동엽의 러브하우스'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지금 하는 일 때려치우고 나도 그 '정리컨설턴트'인가 뭔가를 해볼까 잠깐 생각할 만큼 만족스럽다.

 

좀 더워서 그렇지 청소는 여름에 하는 것이 좋다.

겨울에는 물건들이 쌓여 있어도 그 자체로 짜증이 솟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날이 좀 풀리면 치우지 뭐 하는 심리적 유예가 가능하다.

여름에는 그런 생각이 통하지 않는다.

다른 계절에는 버리고 치우는 것이 망설여졌던 물건들도

더위 한 방에 적개심을 가지게 하고 과감하게 치워버릴 수 있게 된다.

 

'하루 15분 정리의 기술'은 가증스럽게도 남편이 나에게 주문해 달라고 한 책이다.

쓰레기 사무실에 대한 심각함을 느꼈는지 나름 치워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지만

책 앞부분 읽고 딱 하루 치워보고는 그랬다.

" 하루 15분은 무슨, 책상 서랍 하나 치우는데 한 시간 걸리더라."

당연하지.

5년이나 청소를 모르던 주인에게 시달렸을 책상이 15분안에 정리될리가 있겠어.

결국 그 책은 내가 읽고 내가 실천하고 말았다.

'하루 15분 정리의 기술'은 평소에 정리가 잘 된 공간에 해당되는 말이다.

매일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서 쓸모 없는 물건이 쌓이지 않도록 하는 기술인 거다.

 

책을 읽은 후 소개 되어 있는 까페에 가입해볼까 들어가 봤는데 가입절차가 까다롭다.

정리력 강의를 들어야만 가입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는데 정말인가?

책을 구입한 사람들도 좀 가입하게 해 달라.

지방에 사는 사람이 언제 시간 내서 강의 들으러 가겠는가.

나도 까페에 '화장대 이렇게 정리해 봤어염 쿄쿄' 그런 사진 올리면서 자랑 좀 해보고 싶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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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기쁨
아베 피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엠마우스 운동의 창시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자신의 유산을 모두 포기하고 신부가 된 사람.

프랑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선정.

 

구입한지는 좀 되었는데 한 번 시도했다가 포기하고 이제서야 다시 읽는다.

읽어보고 싶어서 산 책이었는데 쉽게 읽히지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과의 일화는 어렵지 않아 쉽게 술술 읽히는데

종교적인 부분이 나오면 쉽게 읽히지 않고 책장을 넘기기가 어렵다.

특히 2부는 자신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본인이 받아들이는 하느님의 존재, 예수에 대한 생각 등이 드러나 있어

한 줄 한 줄 이해하며 넘기기가 정말 힘들었다.

 

처음에는 하느님을 믿는다하면서도 문득 머리를 드는 신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 궁금증을

속시원히 설명해 줄 신앙의 멘토를 만난 느낌이랄까?

내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것 같은 글을 읽을 때 절로 머리가 끄덕여졌다.

그런데...

분명히 우리말로 쓰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딴 나라 말을 읽는 것 같은 애매함이 있다.

같은 문장을 세 번 이상 읽었음에도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대충 이런 뜻이구나 라는 느낌뿐, 정말 지은이가 이런 의도로 이야기했나? 싶은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하려면 일단 프랑스어를 잘 알고 있어야 할테고

지은이와 같은 신앙과, 신의 존재에 대한 비슷한 깨달음이 있어야 했을 거라 생각한다.

번역자의 약력에 대해 살펴 보았는데 프랑스어 전공자에 유학파다.

번역자의 신앙에 대한 내용은 없으니 미루어 짐작하자면,

피에르 신부의 글은 번역할 수 있었으되 그의 신앙관이나 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까지

번역에 다 담을 수는 없지 않았나, 그래서 책의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생각 된다.

특히 예수가 대속물로 이 세상에 온 것에 대한 설명은 책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라고 나오는데

그 결정적인 부분을 계속 읽어보았지만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빈약한 내 지식에 대한 면죄부를 주려고 책에 대한 이해 부족을

뻔뻔하게 번역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번역하신 분 죄송합니다 ( - - ) ( _ _ ) )

 

번역본을 읽을 때마다, 특히 몇 번을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때마다,

그 나라 사람이 쓴 책을, 그 나라말로 척척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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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2012-09-28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까지 죽~ 읽어 내려 오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추천을 꾹꾹 눌렀군요.
아~ 왜 추천은 한번만 할 수 있는거야!!! 불평도 해가면서...
바라보는 시선이 나와 비슷하다는 것은 상당한 동질감을 유발해 내는군요.
복잡하지 않고, 심각하지 않고, 어렵지 않아서 그래서 소소한 일상의 편안한
글들이 참 좋으네요~~^^

 

 

기린


구광본

 

내가 그리고 있는 기린은

네가 그리고 있는 기린과는

다들 수밖에 없다 엉터리 기린 그림이라고

너는 말하지만 그래 나는 기린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기린을 그렸다

너의 기린이 점점 형체를 갖추면서

나무의 잎사귀와 열매를 따먹으며

너의 붓끝에 사로잡히는 동안에도

나의 기린은 점점 자라 화폭을 뚫고

이젤을 넘어뜨리곤 시멘트 바닥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간다

 

창작블로그에서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라 작가소개를 봤다.

오래 전에 '기린'이라는 시가 좋아 시집을 구입했었다.

세월이 많이 흐르긴 흘렀나 보다.

사진을 봤는데도 솔직히 그 때 그 시인이었는지 알아보지 못했으니까.

시집에 실린 사진은 나름 '훈남'이었었는데.

 

대표시집의 제목과 같은 '강' 보다는

난 이 시가 훨씬 더 좋다.

이 시를 읽었을 때 멀어져 가는 기린을 보는 것 같았으니까.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시를 읽으면 시원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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