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해외연수를 떠난 첫 날,

쓰레기장이 되어 있던 남편의 사무공간을 청소했다.

바닥, 책상 위, 책장...

곳 곳에 별 게 다 쌓여 있다.

거의 5년 동안 쌓인 책, 세미나 자료, 업무 자료, 어디선가 받은 사은품 등등

심지어는 2009년 다이어리까지. 물론 손도 대지 않은 새 것이다.

그렇게 방치된 환경에서 어떻게 일이 되고 공부가 되는지...

쓰레기가 쌓이면 '기'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데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더운 여름날에 상대가 청하지도 않은 오지랖을 떨게 된 건 '일' 때문이었다.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남편과 나는 같은 장소에서는 일을 해 보지 않았다.

그러다 단시간 내에 같이 해야 할 프로젝트가 생겨 남편 사무실에 자주 가게 되었다.

책상이 하나 밖에 없어 바닥에 앉아 일을 해야 했는데 도저히 엉덩이를 대고 싶지 않았다.

먼지가 얼마나 많은지 비염이 있는 나에게는 무지 열악한 환경인 거다.

시간만 있다면 저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산뜻하게 일을 할 수 있으련만

시각을 다투는 일이라 못 본 척하고 일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언젠가는 쓰레기로 가득 찬 저 '악의 소굴'을 천사들의 보금자리로 만들고 말테다!!

기회는 빨리 왔다.

남편이 해외연수를 가게 된거다.

남편을 버스에 태워 보내고 돌아서자 마자 마스크, 장갑으로 무장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이틀 동안, 약 8시간에 걸쳐 치우고 버리고 나니 이제야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이 되었다.

어디선가 '신동엽의 러브하우스'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지금 하는 일 때려치우고 나도 그 '정리컨설턴트'인가 뭔가를 해볼까 잠깐 생각할 만큼 만족스럽다.

 

좀 더워서 그렇지 청소는 여름에 하는 것이 좋다.

겨울에는 물건들이 쌓여 있어도 그 자체로 짜증이 솟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날이 좀 풀리면 치우지 뭐 하는 심리적 유예가 가능하다.

여름에는 그런 생각이 통하지 않는다.

다른 계절에는 버리고 치우는 것이 망설여졌던 물건들도

더위 한 방에 적개심을 가지게 하고 과감하게 치워버릴 수 있게 된다.

 

'하루 15분 정리의 기술'은 가증스럽게도 남편이 나에게 주문해 달라고 한 책이다.

쓰레기 사무실에 대한 심각함을 느꼈는지 나름 치워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지만

책 앞부분 읽고 딱 하루 치워보고는 그랬다.

" 하루 15분은 무슨, 책상 서랍 하나 치우는데 한 시간 걸리더라."

당연하지.

5년이나 청소를 모르던 주인에게 시달렸을 책상이 15분안에 정리될리가 있겠어.

결국 그 책은 내가 읽고 내가 실천하고 말았다.

'하루 15분 정리의 기술'은 평소에 정리가 잘 된 공간에 해당되는 말이다.

매일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서 쓸모 없는 물건이 쌓이지 않도록 하는 기술인 거다.

 

책을 읽은 후 소개 되어 있는 까페에 가입해볼까 들어가 봤는데 가입절차가 까다롭다.

정리력 강의를 들어야만 가입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는데 정말인가?

책을 구입한 사람들도 좀 가입하게 해 달라.

지방에 사는 사람이 언제 시간 내서 강의 들으러 가겠는가.

나도 까페에 '화장대 이렇게 정리해 봤어염 쿄쿄' 그런 사진 올리면서 자랑 좀 해보고 싶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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