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권의 철학
나이절 워버턴 지음, 최희봉 옮김 / 지와사랑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책을 살 때의 생각은, 그리 두껍지 않은 한 권의 책을 읽어서 "스무 권의 철학"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마음이었다(내가 책을 살 때 제목에 얼마나 많이 좌우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과제로 너무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할 때 한 번쯤은 요약본을 읽고서 과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그런 마음. 적은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얻고자 하는 얄팍한 마음 말이다.(물론, 독서에 들이는 노력과 그 독서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보통 정비례한다는 것이 나의 평소 지론이지만..) 처음의 마음을 두고 생각한다면, 원하던 방식의 성과는 얻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이 책의 저자인 나이절 워버턴은 스무 권의 철학에 대한 요약본을 만들기 위해  이 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염두에 두지 않았던 목적을 독자가 찾아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나의 견해가 긍정적인 까닭은 '철학'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에 대해 이렇게 평이한 문체로 독자들을 위해 쓰여진 철학 입문서는 언제나 반갑기 때문이다. [사족을 달자면, 나는 현대생활에 필수적인 과학같은 분야나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철학같은 분야에는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입문서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쉽게 이야기 해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혼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기본적 문제들이 늘 이런 분야들에 산재해있기 때문이다.] 나이절 워버턴의 이 책은 저자가 밝혔듯이 순전히 저자의 기준으로 선택된 스무 권의 철학고전에 대한 사실과 견해들이 정리되어 있다. 한 권의 철학서 속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개념들에 대해 짧지만 명료하게 설명을 하고, 그러한 개념들 중 비판 또는 논쟁의 대상이 되는 부분에 대한 의견이 정리되어 있는 것이 이 책의 기본적 구성이다. 물론, '동굴의 비유'나 '이데아'에 대한 설명을 이해했다고 해서 플라톤의 <국가>를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비록 스무 권의 철학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철학사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들에 대해 좀 더 쉽게 알고 싶은 것이 목적이라면 이 책은 만족할 만한 선택이 될 것이다.

  혹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철학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각 장의 뒷부분에 있는 비판과 논쟁의 부분이 흥미로울 수 있다. 개념을 알고, 정리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철학적 개념들에 대한 논쟁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수동적으로나마 그 논쟁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같은 경우에는 각 장을 읽으면서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논쟁적인 사항이 이 책에서는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예측 또는 확인하면서 책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단, 철학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선택하는 일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책을 선택하기 전에 그 분야에 대한 자신의 지식수준과 수용능력을 알고 있어야 실망스러운 선택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철학자의 이름과 개념을 연관시켜야 했던 시험문제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 때 이런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훨씬 더 나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을 바꾼 책 한 권"에 '교과서'가 오르는 날도 왔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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