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코스텔로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5년 10월
구판절판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말씀하실 수 없는 게 뭔데요?"
"그것은 내가 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는 거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편안하게 돌아다니면서 그들과 아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그들 모두가 망연자실할 정도의 범죄에 관계돼 있다는 게 가능할까? 아니면 그건 나의 상상에 불과한 걸까? 나는 미쳤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날마다 그 증거를 보거든. 내가 의심하는 그 사람들이 증거를 끄집어내 보여주고 나한테 그걸 들이밀어. 시체들을 말이다. 그들이 돈을 주고 산 시체들의 조각들을 말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친구들을 찾아갔을 때 그들의 거실에 있는 램프를 보고 예의상 좋다고 말하니까 그들이 '그래, 좋지? 폴란드계 유대인 가죽으로 만들어졌대. 그게 최고야. 특히 폴란드계 유대인 처녀들의 가죽이 최고라고'하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리고 그 집의 화장실에서 비누포장지에 '트레블링카-100퍼센트 인간 스테아르산염'이라고 써 있는 걸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나는 이렇게 자문해보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이건 어떤 종류의 집일까? -151쪽

하지만 나는 꿈을 꾸는 게 아니야. 나는 너의 눈을 보고, 노마의 눈을 보고, 아이들의 눈을 보면서 친절함만을, 인간적인 친절함만을 볼 뿐이야. 그래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지. 마음을 진정시키자. 너는 하찮은 일을 과장하고 있어. 이게 삶이야.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받아들이고 사는데, 왜 너는 그럴 수 없니? 왜 너는 그럴 수 없니?"
그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그는 생각한다. 어머니가 원하는 게 뭘까? 어머니는 나한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자 하는 걸까?
그들은 아직 고속도로에 진입하지 않은 상태다. 그는 차를 멈추고 엔진을 끄고 그의 어머니를 껴안는다. 콜드크림과 늙은 살 냄새가 난다. 그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괜찮아요, 괜찮아. 곧 끝날 거예요."-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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