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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ㅣ 손안의 고전(古典)
홍응명 지음, 이성민 옮김 / 서책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예전에 학술답사를 갔을 때, “죽간(竹簡)”이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죽간은 대나무를 불에 구운 뒤, 세로로 길게 쪼개어 거기에 글씨를 쓴 것이다. 죽간에는 깨알같은 크기의 한자가 촘촘하게 씌어 있어서, 보는 내내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옛날 선비들은 그 죽간을 가지고 다니며 글을 외웠다고도 하고, 때로는 커닝페이퍼 용도로 쓰는 어리숙한 이도 있었다고 한다. <손 안의 고전>을 보니, 문득 그 죽간이 생각난다. 손 안에 쏙 들어가서 가지고 다니며 읽기 좋게 아담한 것이 비슷해서 그런가보다.
“책은 늘 가까이 곁에 두면 좋은 벗”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바쁜 일상을 지내는 요즘은 책 한 권 들고 다니는 것도 사실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렇다고 빈 손으로 나가면, 막상 여유 시간이 생겼을 때 책도 없이 멀거니 있게 되어 그 시간이 아까와지곤 한다. 물론 책을 들고 나갔다가 한 번 펼치지도 못하고 들어오는 날도 많지만, 시간 여유는 있는데 정작 읽을 책이 없는 답답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손 안의 고전>시리즈는 이런 답답함을 명쾌하게 풀어준다. 가방이건, 주머니에건 부담없이 쏙 들어가는 앙증맞은 크기도 그렇고, 어디서건 펼쳐 읽어도 부담이 없다. 더구나 두고두고 읽어도 좋을 “채근담”이 아니던가.
<채근담(菜根譚)>은 명나라 홍응명(洪應明)이 지은 어록집으로, “사람이 채근을 씹을 수 있다면 온갖 세상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人常咬得菜根 則百事可做)”라는 송나라 학자 왕혁(王革)의 말에서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이 말은 해석하기 나름이겠으나, 대체로 “안분(安分)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책 곳곳에 안분지족(安分知足)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보인다. 또한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할 것을 수시로 일깨워준다.
“人之過誤宜恕 而在己則不可恕 己之困辱當忍 而在人則不可忍”
(남의 잘못은 용서해야 하지만 나의 잘못은 용서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어려움은 마땅히 참아야 하지만, 다른 이의 어려움을 그냥 보고 참아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채근담>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시대에도 그 내용을 적용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큰 매력이다. 고전의 경우, 때로는 현실과 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채근담>의 경우, 처세나 자기 관리에 대한 인식이 지금 시대에 적용해도 별 무리가 없다.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나 일본의 기업 경영의 지침서로 자주 인용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 책을 받은 뒤로, 나갈 때마다 항상 가지고 다니니 자주 읽게 된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채근담>을 극찬하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내가 제대로 완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되새겨지는 것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구절구절이 귀한 글귀여서 여기에 일일이 인용할 수는 없을 테지만, 수시로 읽으며 스스로를 경계하고 마음을 맑게 다스리도록 해야 할 것 같다.
“心不可不虛 虛則義理來居 心不可不實 實則物欲不入”
(마음은 반드시 비워야한다. 마음을 비우면 의리가 찾아온다.
마음은 반드시 채워야한다. 마음이 가득 차 있으면 물욕이 들어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