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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마주치다 - 옛 시와 옛 그림, 그리고 꽃, 2014 세종도서 선정 도서
기태완 지음 / 푸른지식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옛글을 읽다 보면 꽃에 대한 이야기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꽃에 대한 옛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어릴 때 읽었던 선덕여왕의 일화를 통해서였다. 선덕여왕이 공주 시절에 당나라에서 보내온 병풍의 모란꽃 그림을 보고, 꽃에 향기가 없음을 짐작해내었다는 이야기다. 그림에 꽃과 나비가 없는 것을 본 공주가 “이토록 꽃을 아름답게 그려낸 화공이 꽃과 나비를 잊고 안 그렸을 리가 없다. 분명 이 모란꽃은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다.

<삼국사기> 열전에 실린 설총의 “화왕계”에도 꽃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설총이 신문왕(神文王, ?~692)을 깨우치기 위해 지었다는 이야기로 여기에는 화왕(花王)인 모란과 아첨하는 장미, 충간(忠諫)을 하는 백두옹(白頭翁, 할미꽃)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꽃을 통해 교훈을 주려했다는 점도 특이하지만, 꽃이 주는 이미지에 대한 당대의 인식을 보여주어서 흥미롭다.

한편 실학파였던 박제가는 “백화보서(百花譜序)”에서 ‘꽃에 미친 김군’이라는 글을 통해, 꽃에 대한 사랑이 넘쳐 기벽(奇癖)에까지 이른 인물을 얘기하기도 한다. 박제가는 글에서 주인공 김군을 ‘꽃의 역사에 공헌한 공신이며 향기의 나라에 제사를 올리는 위인’으로 칭하며 높이 평가하였다.

이와 같이 꽃이나 그 꽃을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옛글과 그림을 통해 다양하게 그려졌다. 이러한 글과 그림은 그 자체의 내용만으로도 흥미롭지만, 작품을 통해 그 꽃에 대한 당대 사람들의 인식과 생각을 엿볼 수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옛글을 통해 꽃을 접하다 보면, 같은 꽃일지라도 시대에 따라 변하거나 혹은 계속 이어져 온 심상(心象, image)을 보게 된다. 또 지금의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꽃들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을 통해 그 꽃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꽃, 마주치다>는 옛시와 글귀, 그림 등에 나타난 꽃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책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는 철쭉, 찔레꽃, 봉숭아, 수국, 맨드라미, 능소화, 나팔꽃과 열매가 더 유명한 포도나 비파 등을 만날 수 있다. 또 우리가 흔히 릿쯔라고 부르기도 하며 양귀비가 좋아했다는 열매인 여지(荔枝)도 등장한다.

천성적으로 꽃과 나무를 좋아한다는 저자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옛시 등에 나타난 옛사람들의 꽃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려준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는 동안, 사이사이에 실린 그림과 사진이 꽃의 향기를 함께 전해준다. 그저 ‘예쁘다’며 단편적인 눈으로 보던 꽃도 옛글과 그림을 통해 만나니 그 향기가 더욱 깊어지는 듯하다.
옛사람들은 매화가 피어나는 계절에 맞춰 ‘탐매(探梅)’ 여행을 하였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옛사람들의 흔적과 더불어 꽃과 나무를 찾아다니는 저자의 고운 눈길을 따라 함께 떠나봄직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