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류근 시인의 이름을 맨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시집이 아닌 SNS를 통해서였다. 대개는 작품을 먼저 접하고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마련인데, 이번에는 정반대였던 셈이다. 같은 그룹에 속한 것도 아닌 개별적인 페친들이 여기저기서 ‘류근 시인’ 혹은 그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시기가 책이 나올 즈음이기도 했지만 그를 거론한 페친들 대부분 감성이 가득하거나, 글을 쓰는 작가들이거나,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는 그렇게 알게 된 류근 시인의 산문집이다. 1992년에 시인으로 등단하여 18년만인 2010년에 낸 첫 시집 <상처적 체질>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띠지에는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을 썼다고 소개가 되어 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노랫말을 쓴 이가 그였다는 것도 이번에 새로 안 사실이지만, 더구나 대학 재학 중 쓴 것이라니 더욱 놀라웠다. 그토록 여리고,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으로 쓴 산문집이라니 내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근황,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오늘 서울은 흐리고 나는 조금 외롭다

내 슬픔 때문에 꽃들이 죽어버리면

 

부제에는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라고 되어 있지만, 목차의 소제목에서 보듯 내용을 읽다 보면 오히려 시인을 위로해주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의 이야기에는 주야장창 시래깃국만 끓여주는 주인집 아주머니와 유명 작가들, 주변 지인들에 ‘옛날 애인들’까지 수시로 등장한다. 그는 마치 술주정이라도 하듯 끝도 없이 중얼거리며 ‘조낸 시바’라는 그만의 언어로 일상의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평소 같으면 생전 입에 올리지도 않는 단어건만 그의 책을 읽는 동안에는 ‘류근=조낸 시바’였다. 어찌나 자주 등장하는지, 책은 아직 반도 더 남았는데 머릿속에는 어느새 ‘그의 언어’가 떠돌고 있었다. 말이란 참 희한하다. 같은 말이지만 누가 쓰냐에 따라 그 맛(어감)이 천지차이다. 욕쟁이 할머니의 구수한 욕은 ‘정(情)’이지만 다른 사람이 하면 진짜 ‘욕’이 된다. SNL에서 김슬기가 찰지게 하던 욕을 어떤 여배우가 그 맛을 살리겠는가? 마찬가지로 ‘조낸 시바’라는 말도 ‘류근’이라는 이름과 함께 있을 때 그 느낌이 살아난다.

 

사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그만의 언어’였다. 작가로서 어떤 단어, 어떤 구절을 통해 자신의 색깔을 분명하게 알릴 수 있다는 점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그것은 화가의 그림에 자신의 화풍이 드러나고, 사진작가의 사진에 그의 시각이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이다. 류근 시인이 말하는 ‘조낸 시바’가 단순한 욕으로만 들리지 않는 것도 그 말이 그만의 색깔을 지녔기 때문이다.  아직 읽지 못한 그의 시집 <상처적 체질>이 어떤 색깔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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