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신뢰 - 인생의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 현대지성 클래식 36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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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와닿는 문장이나 격언이 있으면 따로 메모를 해두곤 한다. 긴 생각을 짧게 압축한 현자(賢者)들의 한 문장은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기도 하고, 삶에 있어서 좋은 이정표가 되어 주곤 한다. 그렇게 메모를 해두다 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인물들이 있는데 랄프 왈도 에머슨(1803~1882)도 그중 한 사람이다.

 

에머슨은 콩코드의 철학자로 불리었던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이다. 목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잠시 목사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정통 기독교의 교리에 집착하지 않고, 인간 영혼의 근원적인 아름다움과 힘을 강조했다. 기존의 교회의식과 맞지 않음을 깨닫게 된 그는 결국 교회와 결별한다

에머슨은 유럽여행을 통해 만난 밀, 콜리지, 칼라일, 워즈워드 등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는 유교, 힌두교 등에 대한 서적을 읽으며 동양의 사상을 섭취했고, 이렇게 얻어진 영적인 통찰력은 소로와 니체, 존 듀이 등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에머슨은 1,500여 회의 공개 강의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미국 전역에 전파했고, 이 내용들은 시와 에세이로 정리되어 출판되었다. 그가 1837년에 미국의 학자(The American Scholar)’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은 미국의 지적 독립선언문이라 칭해지며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는 형식을 초월한 내재적 자율성과 인간 영혼의 근원적 힘과 아름다움을 강조하며 19세기 중엽 미국 초월주의 운동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에머슨의 대표작인 <자기 신뢰>에는 자신의 마음의 고결성 외에 궁극적으로 신성한 것은 없다는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이는 조직화된 종교와 규율, 형식에서 벗어나 각 개인의 독립성과 자유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다. 개인의 자립 추구는 궁극적으로 우주의 조화와 연결되며, 이는 자아실현 추구를 통해 가능하다. 책은 자기 신뢰(Self-reliance)’, ‘운명(fate)’, ‘개혁하는 인간(Man the Reformer)’ 등 세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가지 주제에 대한 에머슨의 생각은 다음과 같은 글에 집약되어 있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별과 같은 존재이며, 정직하고 완벽한 사람을 만드는 영혼이며모든 빛과 영향력과 운명을 통제하는 존재이다.

인간에게는 일찍 떨어지는 것도 없고 너무 늦게 떨어지는 것도 없다.

우리의 행동, 우리의 천사는, 그 선악과 관계없이 우리 옆을 조용히 걷는 운명의 그림자이다.

- 보몽과 플레처의 정직한 자의 운명(honest Man’s Forture)’에 대한 에필로그

 

책을 읽다 보면 언뜻언뜻 헨리 데이비드 소로나 니체의 글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에머슨은 소로의 멘토이자 스승이었다. 소로는 에머슨의 집에 수년간 기거하기도 하였으며, 이 시기에 콩코드의 초월주의 그룹 잡지 <다이얼>에 시와 산문을 게재하며 문필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소로는 사회는 자기 신뢰를 혐오한다고 말하면서 자기 자신을 믿으라고 강조한다. 그는 제도와 전통과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 자신의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모세, 플라톤, 밀턴이 뛰어난 것은 이들이 책과 전통을 무시했고, 남들의 말을 모방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바를 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감정에 대한 불신이나 이해 관계,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어린 아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진면목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온전한 어른이 되려면 순응을 거부할 줄 알아야 하며, 유일하게 옳은 것은 내 기질을 따라 생활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말이 조목조목 옳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와 달리 참 많은 것에 얽매이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전통과 규율, 남의 이목, 외부의 가치 척도를 기준 삼게 되고, 정작 자신의 본성이 원하는 것에는 점점 외면하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원래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점차 잊어버리고 만다.

에머슨은 이런 이들에게 겉모습만 중시하지 말고,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라고 조언한다. 남들이 뭐라든 남의 생각에 의존하지 말고, 조물주가 자신에게 준 재능을 내보이라고 말한다. ‘당사자가 그 재능을 직접 보여주기 전에는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또 알아낼 수도 없다는 그의 말은 자신감을 잃고 자기 회의에 빠졌을 때, 다시 시도해 볼 용기를 주는 말이기도 하다. 생각은 많아지고 스스로의 일과 생활에 대해 회의가 들 때, ‘자기 신뢰에 대한 에머슨의 글은 깊은 울림을 준다. 자신의 본성을 회복하고, 스스로를 믿고 일어서는 힘이 필요할 때, ‘자기 신뢰에 대한 그의 글이 현명하고 현실적인 조언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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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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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루크 아담 호커 지음, 김지연 옮김 / 반출판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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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종종 읽는다. 짧은 글이나 그림으로 구성된 어른 그림책. 이런 책은 그림의 여백만큼 생각할 여지가 생겨서 오히려 천천히 읽게 된다. 특히 펜화로 그려진 책은 군더더기는 제외하고 깔끔하게 그려져서 담백하게 읽힌다.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작가의 의도대로 강조할 것은 강조하고, 생략할 것은 생략해서 주제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번에 읽은 루크 아담 호커의 책은 펜화로 그려진 그림책이다. 작가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유명세를 얻은 펜 일러스트 작가다. 그는 검은색 잉크와 펜을 이용하여 도시의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풍경을 그려낸다. 책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평화로운 이웃의 모습도 보이고, 도시의 건축물과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등 그가 그리워하는 대상들이 엿보인다.

 

책은 매일같이 바쁘게 지내던 일상에 갑자기 폭풍우가 몰려오면서 시작된다. 작가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상황을 폭풍과 먹구름, 비로 상징화하고 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검은 계절, 모든 것이 멈추고 텅 비어버린 거리, 두려움과 불안, 서로 거리를 두어야 하는 상황과 뒤이어 밀려오는 외로움 등은 코로나 발생 이후에 벌어진 우리들의 상황을 보여준다. 지치고 외롭지만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대안을 만들어내고, 주인공 역시 위안과 희망을 찾아간다. 그러면서도 한편에는 언제고 또 비슷한 폭풍우가 올 수도 있으리라는 일말의 불안감도 엿보인다.



작가는 팬데믹 이후에 집안 생활에 익숙해진 집집마다의 풍경을 한 페이지에 모아서 보여준다. 마치 코로나 이후에 활용하게 된 줌(zoom) 화면을 보는 듯하다. 그밖에도 팬데믹 전후로 달라진 도시의 풍경들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현실은 여전히 지치고 불안한 상태지만 작가는 결국 자연에서 희망을 찾는다. 비바람이 그치고 다시 햇볕이 비춘 뒤,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것은 역시 그토록 그리워하던 가족과 이웃,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들의 바람이 그렇듯이.

 

다양한 굵기의 펜을 이용해 그린 그림은 섬세하고 부드럽다. 한 편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수백, 수천 번 펜을 움직였을 작가의 노고가 엿보인다. 글의 내용은 큰 깊이감은 없지만,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모두가 느끼고 경험한 것이기에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다만 작가 서문이나 책에 대한 해설이 없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작가가 쓴 감사의 글은 책 말미에 실려있지만, 작가나 작가의 창작 의도에 대해 알 수 있는 글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은 거대한 뿌리를 품고 있는 나무 그림이다. 땅 위로는 아름드리나무가 꽃과 그늘을 제공하고, 땅속으로는 그보다 더 넓고 큰 뿌리가 나무를 받쳐주고 있다. 작가는 계절이 오고 가는 나무, 달과 별, 숲속의 동물들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 그러는 사이 비바람은 잦아들고 다시 햇살이 비춘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비바람도 빨리 지나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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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 문장 잘 쓰면 바랄 게 없겠네 - 완전 초보도 3주 만에 술술 쓰게 되는 하루 15분 문장력 트레이닝
김선영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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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한 글이 넘쳐 난다. 저자도 서문에서 말했듯이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은 웬만한 글쓰기 책은 이미 섭렵한 상태. 그만큼 글을 잘 쓰고 싶은 욕구는 많지만, 또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이 글쓰기다. 글은 잘 쓰고 싶다는 욕구만으로 되지 않는다. 글쓰기를 안 하고 싶지만 문자, 메일, SNS, 보고서, 자기소개서 등 어떤 식으로든 글 쓸 일은 부지기수다. 그러니 이왕 쓸 글이면 제대로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어렵게 느껴진다. 일단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고, 어찌어찌 시작했다 쳐도 다음에 이어갈 마땅한 단어나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맞춤법도 쓸 때마다 헛갈린다. 기록이나 수치로 우열을 측량할 수도 없으니 내가 쓰고도 잘 썼는지, 못 썼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글을 안 쓰게 되고, 안 쓰니까 더 못쓰게 되고 만다. 글쓰기를 해도 단기간에 변화가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글쓰기는 늘 어렵게만 느껴진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글쓰기도 운동처럼 매일 훈련하라고 강조한다. 13년 동안 방송작가로 활동한 저자는 방송 관련 글을 쓰면서 일정한 주기로 돌아오는 마감, 글의 구성과 주제, 전달력 등에 단련이 된 작가다. 그런 방송작가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강한 문장, ‘술술 읽히고, 공감이 가며, 주제가 명확한 글에 대해 이야기한다. 헬스장에서 트레이너에게 PT를 받는 것처럼 글쓰기도 매일 15분씩 써보라고 조언한다.

 

글쓰기를 다룬 이 책은 헬스 PT에 준하여 신체검사-오리엔테이션-기초체력 다지기-부위별 근육 키우기-섬세한 잔근육 만들기-강한 문장 써먹기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필사, 글감, 첫 문장, 제목, 창의력, 단문 쓰기, 퇴고 등 글쓰기 훈련에 필요한 여러 가지 항목들을 PT하듯 항목별로, 부위(?)별로 설명해준다. 각 장의 끝에는 실전 연습처럼 몇 가지 문제를 제시하여 매일 15PT’를 하도록 하였다.



15PT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15분 안에 금방 써지지 않는 숙제들도 많다. 하지만 글쓰기가 원래 그렇듯 당장 쉽게 써지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머릿속을 괴롭혀 생각하고, 써보고 지우고 다시 쓰고 하는 과정 자체가 글쓰기 연습이 된다. 구양수가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강조하였듯 글쓰기를 잘하려면 역시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적당히 근육이 붙은 보기 좋은 몸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루 이틀 사이에 큰 변화가 없더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체형이 전과 달라진 것을 보고 뿌듯해하게 마련이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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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뒷모습 안규철의 내 이야기로 그린 그림 2
안규철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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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뒷모습에 더 관심이 생겼다. 나이가 들수록 발밑의 야생화가 새삼 눈에 띄듯이 뒷모습에도 점점 더 눈길이 가곤 한다. 아마도 뒷모습이 더 진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차츰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 싶다. 앞모습은 대부분 의도하고, 의식해서 보여주게 마련이지만 뒷모습은 무의식중에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곤 한다. 뒷모습에 관한 이야기는 그래서 늘 흥미롭다.'


그래서일까. 미셸 투르니에의 <뒷모습>이나 밀란 쿤데라·존 버거 등이 쓴 <책 그림책> 같은 책을 좋아한다. 이유는 단지 뒷모습에 대해 다뤄서가 아니라 사유를 하게 해주는 책이어서다. 이런 책들은 기존의 시각이나 관념을 다른 방향에서 보게 해주고, 세상을 조금 더 세심하고 깊게 바라보게 해준다. <사물의 뒷모습>도 그런 사유 깊은 이야기가 궁금해 읽게 된 책이다.



저자는 조각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다. 조각가인 저자는 작업을 통해 재료와 대화하고, 머리와 손이 대화하고, 짧은 산책이나 일상의 시간 속에 자기 자신과 침묵의 대화를 한다. 그러다가 잠시 정적의 순간이 찾아와 미처 알지 못했던 사물의 뒷모습을 만난다고 한다. 그는 이런 순간을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하였다.

이런 사유의 시간은 작가의 눈을 더 밝게 하고,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해주며, 더 나은 작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라면 말할 것도 없고, 일상의 시간을 좀 더 깊이 있게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유의 시간은 필수적이다.



이 책은 작가의 세심한 관찰력과 깊은 사유가 합해진 책이다. 저자는 자신이 관찰한 대상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에 관한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었다. 생각을 이끄는 소재는 흔한 사물이지만, 그것에서 나온 사유는 매우 철학적이다.

 

세상이라는 학교가 내게 박아 넣은 나사못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내 속에 들어와 지금의 나를 만든 이 이물질들, 나사못들로 엮여 있는 습관과 관념의 덩어리가 바로 나다. 그것들이 나를 만들었다면, 그 이전에 그것들이 아닌 원래의 는 과연 누구였을까. 그런 것이 정말 있기는 했을까. (p.56, 나사못)

 

그것이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고 완벽하게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완결되어 있고 부족함이 없는 이 형태는 자기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굴리면 굴리는 대로 구르고, 어디든 머무는 곳에 머문다. (p.36, )

 

이런 일련의 글들은 불교에서 말하는 무애(無碍)’()’ 사상과도 잇닿아 있다. 나무뿐 아니라 톱 역시 제 몸을 깎아내며 고된 삶을 살며, 그 톱의 주인도 톱처럼 무뎌지고 녹스는 시간을 맞이하는 데에서는 인생무상이 느껴지기도 한다.

조각가인 저자는 조각 작품의 형태 외에 형태 아닌 것을 바라보고 공, 나사못, 유리잔 같은 일상의 사물들에 눈길을 준다. ‘사물의 뒷모습이라는 책 제목처럼 저자는 눈앞에 실재한 앞모습에 국한하지 않고 그 이면에 있는 뒷모습까지 읽어낸다. ‘대리석 덩어리 속에서 조각상의 형태를 보는 눈’! 이런 사유야말로 현상이 아닌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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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자기 여행 : 동유럽 편 - 개정증보판 유럽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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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의 일이다. 홀로 떠났던 파리 여행에서 몇 가지를 쇼핑했는데 그중 마음에 쏙 드는 것이 빌레로이 보흐의 찻잔과 접시 시리즈다. 단종된 시리즈인데 방브 벼룩시장에서 운 좋게 살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예쁜 잔에 커피를 마실 때면 파리 생각도 나고 여행가고픈 마음도 다시 솟구친다. 도자기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며 좋은 그릇으로 내가 나를 대접해주는 느낌. 좋은 도자기는 이런 매력이 있다.



<유럽 도자기 여행>은 그런 도자기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의 도자기 여행 시리즈 중 동유럽편으로 이번에 개정 증보판으로 새로 나왔다. 그는 마이슨을 시작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의 도자기 회사와 박물관 등을 두루 돌아보며 각각의 도자기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갖고 싶은 테이블웨어와 아름다운 피겨린이 유럽의 풍경들과 함께 등장하니 보는 눈도 그 화려함에 금세 빠져든다.

 

작가의 여정 중 역시나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일본 도자는 조선 도공 이삼평으로부터 시작됐다는 드레스덴 박물관 입구의 글귀다. 책에는 마이슨과 드레스덴, 쯔비벨무스터와 로젠탈, 빌레로이 보흐, 로열 비엔나, 헤렌드 등 자기에 관심 많은 사람이라면 익숙한 여러 이름이 등장한다. 책은 글 반, 사진 반이라고 할 만큼 사진이 풍성하게 실려서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사진의 선명도가 약간 떨어지는 점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17세기 유럽 왕실에서 시누아즈리(Chinoiserie)’라고 하며 동양의 자기에 열광하던 시절. 폴란드 왕이자 작센 선제후인 아우구스투스 1세는 도자기 궁전을 완성하기 위해 아시아의 자기와 비슷한 마이슨 복제본을 만들어냈다. 2017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왕의 보물전전시에는 당시 마이슨이 복제했던 도자기와 중국의 청화백자가 나란히 전시된 적이 있다. 중국 청화백자의 그림을 그대로 모사한 마이슨 제품을 같이 전시하였는데, 당시만 해도 마이슨은 모방의 초기 단계라 그림의 수준은 원본에 비해 많이 떨어져 보였다. 그렇게 시작한 마이슨지만 거듭된 연구와 노력의 결실로 지금은 오히려 동양인들이 유럽 도자기에 열광하고 있다.

 

책을 보며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쯔비벨무스터의 원조가 독일 마이슨이었다는 점이다. 제품을 쓰면서도 이제껏 체코 회사라고 알고 있었는데, 체코의 것은 비싼 마이슨 제품을 대신해 서민들을 대상으로 대량 생산한 것이라고 한다. 체코의 시골 펜션에서 서빙 식기로 나온 쯔비벨무스터를 두고 원조 부심을 부리는 여주인의 에피소드도 재미있었다. 또 훈데르트 바서는 건축과 회화로 먼저 만났었는데 사금파리와 도자기 타일 위주로 다시 보게된 점도 반가웠다. 다시 여행이 자유로워지는 때가 오면 또 다른 빌레로이 보흐를 만나러 유럽 골목을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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