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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화가 - 한국 문단과 화단, 그 뜨거운 이야기
윤범모 지음 / 다할미디어 / 2021년 5월
평점 :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시화전(詩畫殿)’이라는 말이 꽤 귀에 익을 것이다. 감성적인 시 한 편과 거기에 어울리는 배경 그림을 그려 전시하는 ‘시화(詩畫)’는 학급 미화나 학교 축제 때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였다.
알고 보면 시와 그림의 이런 어우러짐은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옛 문인들은 문인 예술의 정수를 ‘시서화삼절(詩書畵三節)’이라고 불렀으며, 시서화에 능통해야 하는 것이 선비의 미덕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현대문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유독 시는 그림과 함께 언급될 때가 많으며, 시인과 화가의 교류도 흔한 일이었다.

시인과 화가의 이런 교류에 대해 저자는 ‘바늘과 실’ 같았다고 표현한다. 저자가 옛날이야기 하듯 술술 풀어서 들려주는 일화에는 우리 귀에 익숙한 예술가들이 다수 등장한다. 나혜석, 이상, 백석, 정지용,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박완서 등은 한국문학사와 미술사에 있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기도 한 저자는 1920~30년대 서울을 중심으로 시인과 화가가 친밀하게 교류한 이야기들을 자신의 경험담, 동석자들의 전언 등을 통해 사실적으로 들려준다.
저자가 들려주는 시인과 화가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흔히 ‘나혜석’하면 ‘최린’을, ‘백석’하면 ‘자야’를 덩달아 언급하는 게 보통이지만, 저자는 그런 가십성 이야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덕분에 흔하고 뻔한 일화가 아닌 시인과 화가의 삶, 그들의 교류와 작품 세계에 오롯이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이제껏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일에 대해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알게 되어 좋았다. 김기진과 박영희로 주로 기억되고 있던 카프(KAFT)의 실제 주역은 김복진이라던가(p.53, 카프의 주역 김복진), 건축가 김해경이 이상(李祥)이란 필명을 쓰게 된 계기(p.31, 시인 이상과 화가 이상), 박완서의 등단소설에 나오는 ‘간판쟁이 화가’가 박수근이었고, <나목(裸木)>은 박완서의 대표작이기도 하지만 박수근 회화의 상징적 도상이기도 하다.(p.179, ‘나목’을 닮은 박수근과 박완서)
하나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시로, 누군가에게는 그림으로,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유행가로 먼저 기억되기도 한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로 시작하는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다. 화가 김환기는 이 시에서 영감을 얻어 무수한 파란 점이 찍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명작을 그렸고, 후에 유심초라는 형제 가수는 김광섭의 시에 노랫말을 추가하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곡을 지어 크게 유행시켰다. 한 편의 시가 그림으로, 노래로 확장되면 작가의 작품은 더욱 생명력을 얻고, 서로의 작품 세계 또한 더욱 넓어진다. 책에 등장한 시인과 화가의 작품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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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