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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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일들 중에 ‘절대적 진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당대에는 진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들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명백한 오류임이 밝혀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코끼리 몇 마리가 지구를 떠받들고 있다거나, 누트 여신이 평평한 땅을 에워싸고 있다거나 하는 고대인의 우주관도 그 당시에는 사실로 여겨지던 것들이다. “지구가 돈다”는 진실도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가 주장할 당시에는 터무니없는 가설에 불과했다. 과학의 발전은 대개 ‘사실로 믿어지던 것들’에 대한 오류를 부정하는 데서 시작한 경우가 많았다.

 

이상훈의 <한복 입은 남자>는 사실(fact)와 허구(fiction)를 결합한 팩션(faction)이다. 작가는 이제껏 우리가 믿어왔던 ‘사실’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한다. 소설의 전개는 과학자의 연구 결과처럼 절대적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지만, 단지 허구라기에는 꽤나 논리적이다. 이 소설은 조선의 천재 과학자인 장영실의 이야기와 역사 속에서 사라진 그의 흔적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PD 진석의 이야기 두 개가 액자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얼핏 봐서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장영실과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두 역사적 인물의 만남을 저자는 중국의 대항해가인 정화(1371~1433)를 매개로 설득력 있게 엮어나간다.

 

정화의 대항해가 콜럼버스나 마젤란의 세계일주보다 먼저 이루어졌다는 설은 개빈 멘지스(Gavin Menzies)의 <1421-중국, 세계를 발견하다> 등 여러 책을 통해서도 이미 제기된 바가 있다. 저자는 조선의 뛰어난 과학자였던 장영실에 대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서 미심쩍게 사라진 점에 주목하여, 그가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정화 원정대에 합류하였고 이로 인해 다빈치와의 만남도 가능하였다고 얘기한다. 작가는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 또한 다빈치가 스승 장영실을 그린 그림을 루벤스가 후대에 다시 그린 것이라고 보았다.

 

꽤나 타당성 있는 가설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다빈치와 콜럼버스 등 서양 중심의 역사다. 작가는 이러한 부분을 진실을 엄폐하려는 교황청의 음모와 관련하여 풀어나간다. 교황청의 음모에 대한 부분에서는 시온을 지키려는 성당 기사단과 교황청의 세력 다툼을 그린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를 떠올리게도 된다. 최근에 프로이드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읽던 중이었는데, 좋아하는 인물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이렇듯 여러 각도에서 만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중의 하나였다.

 

책을 PDF로는 거의 읽지 않는 편인데, 출판사를 통해 PDF로 먼저 접한 이 책은 꽤 두툼한 분량임에도 내내 흥미롭게 읽었다. 500페이지가 훨씬 넘는 이 책에서는 역사뿐 아니라 과학, 의복, 문명 교류 등에 대한 자료를 두루 수집하고, 작품을 엮어낸 작가의 공력이 느껴진다. 고증을 바탕으로 장장 10년의 공을 들였다는 작가의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님을 알겠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껏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일들도 간혹 ‘한정된 사실’일 수도 있다. 어쩌면 만들어진 허구를 우리는 ‘역사’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잃고 있는 우리의 역사, 우리의 천재과학자를 다시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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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걸을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 NFF (New Face of Fiction)
셰르스티 안네스다테르 스콤스볼 지음, 손화수 옮김 / 시공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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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에서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는가’에 대한 실험을 본 적이 있다. 피실험자들과 한 방에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인물이 있었지만, 실험 결과 사람들은 그 특이한 타인을 그다지 기억에 담아두고 있지 않다는 결과였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는 사실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람들이 다들 나만 바라보는 것’ 같이 소심해지는 경우를 종종 겪곤 한다.

 

이 책의 주인공 마테아는 그런 소심함이 극대화된 인물이다. 그녀는 사람들의 눈에 뜨일까봐 전전긍긍한다. 현관을 나설 때면 감시창을 통해 밖의 동정을 한참씩이나 살피고, 아침 신문을 들여올 때조차 이웃과 마주칠까 조심스러워 한다. 마트의 점원에게 단순한 도움조차 요청하지를 못하는 그녀는 114 교환원에게 자기 전화번호를 묻는 것으로 살아있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한다.

 

그런 그녀에게 의지할 것은 남편 엡실론뿐이다. 하지만 그녀의 유일한 친구이자 동반자였던 남편은 은퇴 후 세상을 떠나버리고, 마테아는 외로움과 공허한 삶을 근근히 이어간다. 그런 그녀는 ‘문득 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걸 누군가가 알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상념에 빠지기도 하고, 침대에 누워 죽을 확률이 가장 높다는 생각을 떠올리곤 ‘그렇다면 얼른 일어나야지’라는 생각도 한다.

 

마테아의 모습은 때로는 희화화되고, 때로는 고독하고 허탈해 보이기도 한다. 주인공이 이렇게 묘사된 데에는 ‘근육통성 뇌척수염(Myalgic Encephalomyelitis)’라고 불리는 만성피로증후군을 겪었던 작가 자신의 경험이 많은 부분 작용한 듯하다. 작가가 건강을 잃은 상태에서 느꼈을 인간적인 고통과 외로움, 죽음에 대한 고찰 등이 주인공에게 투영되어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주인공의 일상을 따라다니는 듯 여겨진다. 감시창을 내다보는 그녀의 행동, 길에서 마주친 사람 앞에 당황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남편 엡실론을 추억하는 그녀는 ‘나이가 들면 찾아오는 생명이라곤 비둘기와 고양이밖에 없다’고 읊조린다. 어렸을 때 구급차에 실리는 것이 꿈이었다던 마테다는 끝내 멀리서 들려오는 구급차 소리를 들으며 차가운 물속으로 잠겨든다.

 

그녀는 죽기 전, 시간을 물어오던 오게B씨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게B씨, 어쩌면 당신은 그리 어렵지 않은 삶을 일부러 힘들게 살고 있는지도 몰라요.”

이 말은 어쩌면 그녀가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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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평민열전 - 평민의 눈으로 바라본 또다른 조선
허경진 지음 / 알마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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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歷史)를 일컬어 흔히 승자(勝者)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닌다. 이는 승자의 시각이라는 한계 외에, ‘지배층의 기록’이라는 한계 또한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배층과 식자층이 주가 되는 표층문화 뿐 아니라, 피지배층과 평민층을 바탕으로 하는 기층문화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평민열전>은 기층문화의 주체인 평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가는 책이다. ‘전(傳)’은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그의 행적을 서술한 작품을 말한다. 저 유명한 사마천의 <사기(史記)> 열전(列傳)이나 <고려사(高麗史)> 열전,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등이 이러한 예이다. 고려시대의 가전문학(假傳文學)이나 전기소설(傳記小說)로 분류되는 <임경업전(林慶業傳)>, <김유신전(金庾信傳)>, <을지문덕전(乙支文德傳)> 등도 여기에서 발전된 형태다. 하지만 대부분의 열전들은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평민층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조선평민열전>을 그런 점에서 볼 때 <조선평민열전>은 무척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평민 화가 조희룡이 지은 <호산외기>(1844), 아전 출신 유재건의 <이향견문록>(1862), 그들과 교류했던 시인 이경민이 지은 <희조질사>(1866) 세 권의 책을 중심으로 평민들의 전기를 추려 엮었다. 시인, 화가, 서예, 의원, 역관, 출판, 충렬, 효자, 열녀, 기생 등으로 분류한 이 책에는 ‘달마도’로 유명한 화가 김명국(金鳴國)이나 단원 김홍도(金弘道), 고산자 김정호(金正浩)와 기생 황진이(黃眞伊), 제주도의 김만덕(金萬德)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 몇을 제외하고는 이제껏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생소한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110여 인의 인물을 다루다 보니 책의 내용이 조금 단편적으로 흐른 아쉬움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배층의 삶에 가려져 있던 평민들의 삶을 한층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이 책에는 농암 김창협, 삼연 김창흡 형제와 시를 교류했던 홍세태(洪世泰), 비천하고 추악한 용모에 말까지 더듬었으나 정조에게 신임을 받았던 천문학자 김영(金泳), 억지로 그림을 요구하는 벼슬아치에게 노하여 그 자리에서 자신의 눈을 찔렀던 화가 최북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책을 읽는 동안 더욱 눈길이 가는 인물들도 있었다. 병자호란 당시 화친(和親)의 불가함을 주장하였으나, 결국 화친이 이루어진 소식에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던 의원 이형익(李亨翼)은 모 케이블 드라마에서 희화화되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드라마가 망쳐놓은 인물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 위인전에서 잠시 읽었던 안용복(安龍福)을 다시 만난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는 조정 일각에서 ‘울릉도를 쪼개서 왜에 주자’는 허무맹랑한 논의를 하고 있을 때 아무런 벼슬도, 명령도 없이 오랑캐와 대마도 도주를 혼내어 울릉도를 지켰던 인물이다. 인물은 간 데 없고, 국민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탁상공론만을 일삼는 조정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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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지켜온 나무 이야기 -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무로 만나는 우리 문화와 역사
원종태 지음 / 밥북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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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서러운 봄꽃들이 며칠 사이에 확 피었다가 한 번에 스러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내내 힘겨운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빗소리에 선선한 가을바람이 섞여드는 요즘이다. 배롱나무의 분홍꽃은 여젼히 고운데, 단풍나무는 이제 곧 가을옷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겠다.

 

가끔씩 마음이 갑갑해질 때면 집 근처의 메타세콰이어 길을 걷는다. 키 큰 나무들이 쭉쭉 뻗어 도열한 길을 걸으면 말 그대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나무를 볼 때면 늘 마음이 편안해지곤 한다. 금강송처럼 하늘까지 뻗은 나무들을 보면 잠시나마 마음을 기대게 되고, 시골길의 느티나무를 볼 때면 절로 걸음이 멈춰진다. 자연을 품고 있는 나무의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산림조합장을 지낸 저자가 현업에 근무하며 만난 나무들의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묶은 책이다. 저자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무’들에 관해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책으로 엮어내었다. 다뤄진 나무들은 보은 정이품송, 예천 석송령, 청령포 관음송 등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나무들부터 자귀나무, 벚나무, 매화나무, 배롱나무 등 꽃이 고운 꽃나무들까지 다양하다. 창경궁 회화나무나 서초동 향나무, 연리지 등 이야깃거리를 가진 나무들도 다뤄졌다.

 

책을 읽다 보면 여행길이나 일상에서 만났던 나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나무들이 우리 주위에 가깝게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전문적인 지식과 산뜻한 사진으로 채워졌던 기존의 나무 도감 책들과는 다르다.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나무와 관련해 전해오는 유래나 역사적 이야기들을 주로 다뤘다. 대체적으로 일반론에 머문 아쉬움은 있지만 부담 없이 읽기에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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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 기행 - 고개를 들면 역사가 보인다
김봉규 글.사진 / 담앤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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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사람이 태어나면 이름을 지을 때 신중을 기하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선조들은 건물의 이름을 짓는 데에도 깊은 의미를 두고, 글씨에도 온갖 정성을 모았다. 이렇게 정성들여 올린 현판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 건물의 얼굴과 같은 역할을 한다. 여행을 다니며 사찰, 누각, 고택 등에서 만나게 되는 “현판(懸板)”은 해당 건물의 성격과 특색 등을 함축하고 있어 글자의 의미와 서체를 한참 눈여겨보게 된다.

 

예전에 지리산 천은사(泉隱寺)에 처음 갔을 때, 물이 흐르는 듯 부드러운 필체의 현판이 눈에 띄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한다. ‘샘이 숨어있다’는 이름이 상징하듯 천은사는 수기(水氣)가 약해 유달리 화재가 많았는데, 현판의 글씨를 수체(水體)로 써넣은 뒤로는 더 이상 화마의 피해가 없더라는 이야기다. 이것이 바로 조선 후기 명필로 유명한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의 글씨로, 그의 글씨는 전국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해남 대흥사의 ‘대웅보전’은 추사 김정희와의 일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렇듯 여행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현판에는 종종 재미있는 일화들이 얽혀있다. 해서체(楷書體)로 반듯하게 쓰여진 글자들은 그럭저럭 읽지만 흘림이 심한 초서(草書)를 만나게 되면 긴가민가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현판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추사 김정희, 원교 이광사, 일중 김충현 등의 글씨는 눈에 익어 가지만, 수많은 현판에 얽힌 뒷얘기는 놓치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현판을 볼 때마다 아쉽고 궁금할 때가 많다.

 

<현판 기행>은 독자들의 그런 궁금증과 아쉬움을 풀어주는 책이다. <한국의 혼, 누정(樓亭)>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던 저자는 이번 책에서 고건축의 현판을 집중해서 다루었다. 그는 주로 영호남 지역의 고건축들을 위주로 ‘정자와 누각’, ‘서원과 강당’, ‘사찰’ 등으로 분류하여 현판의 글씨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책에 소개된 현판들은 안동 봉정사 덕휘루(만세루), 진주 촉석루, 안동 도산서원,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완주 화암사 극락전, 구례 천은사 일주문 등 우리가 여행길에 쉽게 만날 수 있는 현판들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현판들을 관련된 이야기와 함께 천천히 되새겨보게 되는 것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현판에 대해서는 대개 고건축을 얘기하며 짧게 지나갔던 것을 저자는 “현판”만 따로 떼어내어 집중 조명하였다. 책을 읽다 보면 수려한 글씨로만 보았던 현판 속에 담긴 선조들의 사상과 의식을 엿보게 된다. 여행에 앞서 그 곳에 있는 현판에 대해 미리 알고 간다면 여행의 의미와 내용은 더욱 충실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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