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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걸을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 ㅣ NFF (New Face of Fiction)
셰르스티 안네스다테르 스콤스볼 지음, 손화수 옮김 / 시공사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TV에서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는가’에 대한 실험을 본 적이 있다. 피실험자들과 한 방에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인물이 있었지만, 실험 결과 사람들은 그 특이한 타인을 그다지 기억에 담아두고 있지 않다는 결과였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는 사실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람들이 다들 나만 바라보는 것’ 같이 소심해지는 경우를 종종 겪곤 한다.
이 책의 주인공 마테아는 그런 소심함이 극대화된 인물이다. 그녀는 사람들의 눈에 뜨일까봐 전전긍긍한다. 현관을 나설 때면 감시창을 통해 밖의 동정을 한참씩이나 살피고, 아침 신문을 들여올 때조차 이웃과 마주칠까 조심스러워 한다. 마트의 점원에게 단순한 도움조차 요청하지를 못하는 그녀는 114 교환원에게 자기 전화번호를 묻는 것으로 살아있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한다.
그런 그녀에게 의지할 것은 남편 엡실론뿐이다. 하지만 그녀의 유일한 친구이자 동반자였던 남편은 은퇴 후 세상을 떠나버리고, 마테아는 외로움과 공허한 삶을 근근히 이어간다. 그런 그녀는 ‘문득 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걸 누군가가 알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상념에 빠지기도 하고, 침대에 누워 죽을 확률이 가장 높다는 생각을 떠올리곤 ‘그렇다면 얼른 일어나야지’라는 생각도 한다.
마테아의 모습은 때로는 희화화되고, 때로는 고독하고 허탈해 보이기도 한다. 주인공이 이렇게 묘사된 데에는 ‘근육통성 뇌척수염(Myalgic Encephalomyelitis)’라고 불리는 만성피로증후군을 겪었던 작가 자신의 경험이 많은 부분 작용한 듯하다. 작가가 건강을 잃은 상태에서 느꼈을 인간적인 고통과 외로움, 죽음에 대한 고찰 등이 주인공에게 투영되어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주인공의 일상을 따라다니는 듯 여겨진다. 감시창을 내다보는 그녀의 행동, 길에서 마주친 사람 앞에 당황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남편 엡실론을 추억하는 그녀는 ‘나이가 들면 찾아오는 생명이라곤 비둘기와 고양이밖에 없다’고 읊조린다. 어렸을 때 구급차에 실리는 것이 꿈이었다던 마테다는 끝내 멀리서 들려오는 구급차 소리를 들으며 차가운 물속으로 잠겨든다.
그녀는 죽기 전, 시간을 물어오던 오게B씨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게B씨, 어쩌면 당신은 그리 어렵지 않은 삶을 일부러 힘들게 살고 있는지도 몰라요.”
이 말은 어쩌면 그녀가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