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닉 교회 - 언약의 뿌리를 찾아서
로버트 D. 하이들러 지음, 진현우 옮김 / WLI Korea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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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던 신앙서적중에 가장 유익하면서도 도전적이고 충격적인 책이다. 제목은 ‘메시아닉 교회’, 부제는 ‘언약의 뿌리를 찾아서’이다. 성경에 대한 상당한 식견과 깊은 신앙이 없으면 이 책은 아마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생소한 책일 것이다. 내가 10년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지금만큼 유익하거나 신성한 충격은 없었을 것이다. 현재의 교회모습은 과연 어떠한 역사적 전통위에서 세워진 것일까? 우리가 주일이면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형식들, 그리고 교권제도들, 교회정치, 그리고 매년 지키는 교회력들. 이 책은 이러한 현재 교회의 모습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교회사 자료를 바탕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원래 교회의 뿌리는 어떠해야 하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이스라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이스라엘이 복음의 매우 중심적인 주제라는 것을 알게된 것을 10년전쯤이다. 성경을 읽다가 히브리서 4장의 안식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것을 한 선배에게 물어보았을 때 그 선배는 그가 만든 이스라엘을 공부하는 모임을 소개해 주었다. 그곳에 참석하고 나서 내가 그동안 가졌던 하나님과 복음 그리고 열방의 관계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되었다. 나는 이스라엘과의 만남을 두 번째 부르심이라고 스스로 부른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발견은 성경을 보는 눈을 뜨게해 주었고 성경을 유대적인 관점으로 그리고 현대 중동문제를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실로 나에게는 천지개벽과 같은 경험이었다. 그러면서 교회론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정말 참된 복음과 참된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하는 의문에 대한 대답을 조금씩 찾아나가게 되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공부하면서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좀더 구체적으로는 바로 주후 1세기 바로 그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였다. 현대 기독교 용어로 그것을 메시아닉 교회의 회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이 책은 교회의 뿌리가 되는 주후 1세기의 교회, 즉 메시아닉 교회에 대해서 연구하고 그것의 모습이 현재의 교회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참된 복음의 능력과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회의 유대적인 유산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먼저 교회의 초기 모습은 어떠한가? 초대 교회 멤버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였다. 유대인들이라고 하면 유대교의 전통들과 절기들을 지키는 유대교인들을 말한다. 초기교회에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 알려졌고 초기교회의 모습에는 자연스럽게 유대교 전통과 기독교 전통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구분적은 성직제도는 없었고 예배는 자연스럽게 인도자들에 의해 인도되고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면 자연스럽게 가진 은사에 따라 사역을 하여 몸을 세워나갔다. 이것이 초기기독교 공동체의 가장 큰 힘이였다. 그러한 모습이 3백년까지 지속되다가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생명의 역사가 로마제국을 이기자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다. 그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모진 핍박이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에 의해 멈추게 된 것을 기뻐하게 되었고 자신들의 승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였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때부터 기독교를 황제종교로 만들기 위해 이교적 관습을 기독교에 접목시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성직자와 평신도의 이분법적인 구분과 조직적인 예배방식, 그리고 여러 가지 종교풍습들이 혼합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때부터 황제적 예배방식에 따라 유대교적인 방법들과 실천들이 이단시 되면서 철저하기 기독교와 유대교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교회사적으로 매우 깊은 의미가 있는 거의 모든 공의회는 표면상으로는 교리의 연합과 이단의 문제로 모였지만 많은 부분은 기독교 생명의 핵심이였던 유대적 관습을 철저히 배격하는데 있었다. 공의회에서 결정된 반유대적 관습에 대한 금지는 다음과 같다.

 

* 안디옥 공의회(A.D. 345) - "만약 이 결의 후에, 감히 유대인들처럼 유월절을 준수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가 주교건 장로건, 또는 부제건 간에 공의회 판사들은 그들을 교회로부터 파문시키고 저주할(아나테마) 것이다. 이 공의회는 그자들의 지위를 박탈할 뿐 아니라, 감히 그자들과 연락을 취하려는 자들의 지위까지도 모두 박탈할 것이다.“

 

*라오디게아 공의회(A.D. 365) - "유대인들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며............................만약 그 누구라도 유대주의자라는 것이 발견되면, 그 자를 그리스도로부터 파문시키고 저주할 것이다.“

 

* 프랑스, 아그드 공의회(506) - “성직자들은 유대인들의 잔치에 참가해서는 안된다”

 

* 제10차 톨레도 공의회(7세기경) - “부활절은 한결같이 지켜야 한다, 단 유월절 기간이 아닌, 니케아 신조에서 결의된 기간에”

 

* 제2차 니케아 공의회(787) - “공공연하게, 혹은 비밀스럽게 안식일을 지키고 다른 유대인들의 관행들을 따르는 자들은 영성체에도, 기도에도, 그리고 교회에서도 받아들여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공의회로 인해 철저히 원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주의 임재가 충만한 초대교회는 유대적 유산과 분리됨으로 인해 원래의 생명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분리는 A.D. 70년경 로마가 유대인들을 공격할 때 기독교인들이 함께 싸우지 않으므로 역사적으로 완전한 분리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러한 분리는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로마서 9~10장과 에베소서 2장에 보면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맏아들인 이스라엘은 세상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빛과 말씀을 전하는 자로 이방에 빛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은 그리스도안에서 복음으로 하나될 때 원래 하나님이 의도하신 충만한 복음의 역사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 로버트 하이들러는 현재의 교회가 유대적 유산을 잃어버림으로 인해 매우 중요한 성경적 유산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먼저는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적 태도이며 둘째는 성경에 대한 히브리적 태도, 셋째는 가정에 대한 히브리적 태도, 넷째는 삶에대한 히브지적 태도의 상실이 그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적 태도는 경외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적 유산과 교회가 분리됨에 따라 교회는 하나님에 대해서 공경하는 태도가 아니라 분석하는 태도로 바뀜으로 하나님의 생명력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삶에 대해서도 히브리적 태도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생각하고 그것을 즐기지만 현대인들은 그것을 던져진 무지한 것으로 여겨 삶을 매우 모호하게 만들었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은 무의미하게 던져진 것이라고 했다. 바로 정확하게 히브리적 삶의 태도와 반대되는 사상이다.

 

저자는 현대교회가 종교개혁과 여러 가지 은사성령운동을 통해서 교회의 원래모습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원래 뿌리인 유대적 유산을 아직도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 유대적 회복 운동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백 투 예루살렘(Back to the Jerusalem) 운동을 비롯해서 영화 회복(Restoration), 그리고 여러 이스라엘 회복 선교단체(IMN 등)들이 일어남으로 매우 급속도로 마지막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즉 교회를 원래의 뿌리인 유대적 유산에 접붙임 하므로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흥이 일어나도록 준비하고 계심을 볼 수 있다.

 

현재의 교회는 분명 어떤 한계에 와있다. 원래 교회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리고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다. 전통과 전통으로 쌓아올려진 지금 교회의 모습은 이제 그 한계를 보이고 여러 가지 새로운 교회운동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원래 교회의 뿌리는 유대적 유산의 일부이며 교회가 그것을 회복할 때 진정한 교회의 모습, 생명력있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력있는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

 

이 책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오랜 의문들, 왜 유대적 유산을 회복해야 하는지, 대체신학이 무엇인지, 지금 지키고 있는 교회력의 기원은 무엇인지, 그리고 유대적 유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유대적 절기의 의미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현대 교회에 접목시켜야 할지에 대한 많은 답을 주었다. 현재 교회는 회복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매우 단순하고 실제적이며 하나님에 의해 의도된 유대적인 뿌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가장 성경적이고 교회를 교회되게하는 마지막 성경적 지도인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며, 모든 세상의 소망이며 생명의 원동력이다. 이 교회가 타락하고 생명력을 잃어버릴 때 세상의 역사는 어둠의 역사의 길을 걷게된다. 그것이 바로 중세사의 모습이다. 우리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 하나님의 임재의 집으로 회복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지금은 교회가 뿌리리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이 책은 나에게 좀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슴이 뛰고 열정이 솟아올랐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것을 선포하는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을 말이다.

 

그 회복의 일부는 메시아닉 유대교의 부흥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그들의 메시아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한 교회의 회복을 갈망하신다. 하나님의 임재는 이교회된 교회에는 거할 수 없다. 그분께서는 교회를 그 뿌리로 다시 부르고 계시며, 우리의 잃어버린 유산을 회복시키고 계신다. 그분의 교회를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의 풍성함을 누리는 “한 새사람”이 되게 하실 것이다.(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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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12-18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 ^^
 
행복의 조건 - 하버드대학교. 인간성장보고서,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조지 E.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옮김, 이시형 감수 / 프런티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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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싫었다. 젊은이가 행복이라는 평범한 단어를 좇아가는 것은 젊음에 대한 죄악이라 스스로 생각하면 성공과 성취, 그리고 꿈을 좇아 달려나갔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자아의 좁은 골방에 갇혀 평범한 인생들과 옹기종기 앉아 스스로 위로하는 자아도취적이고 자기 폐쇄적인 단어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늘 행복이라는 단어에 고개를 돌렸고 외면했다. 그러나 인생의 어려운 고비고비를 만날때 마다 나에게 간절히 찾아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외면했던 행복이라는 파랑새가 나에게도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였다. 그토록 고개를 돌리고 외면했던 행복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도 절실했던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행복이라는 것이 누구나가 원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인생의 진리를 터득할 만큼 인생을 살아왔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날 근처 시립도서관에서 우연히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을 집어 들고 첫부분을 읽기 시작했는데 굉장한 흡입력이 있었고 인생에 대해, 행복에 대해서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손에 잡힐 수 있는 실체로 나에게 보여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바로 책을 사서 단숨에 읽기 시작했다.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지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저마다 답이 다를 것이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단어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이 책 <행복의 조건>은 주관적인 행복이라는 단어를 객관적인 연구를 통해서 상당히 행복의 실체에 근접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 행복에 관한 공식을 찾는 연구는 하버드 대학교 연구팀이 1930년말에 입학한 2학년생 268명의 삶을 72년 동안 추적하면서 지속적으로 면담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방대를 데이터를 분석 연구한 것을 조지 베일런트가 이어받으면서 점차로 숙성해갔다. 조지 베일런트는 행복의 조건을 연구하면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얼마나 많고 적은가'보다는 '그 고통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그의 연구분석도구는 '무의식적 방어기제'였다. 모든 인간에게 있는 자기 보호본능인 '자기방어기제'를 얼마나 잘 사용하여 고통에 융통성있게 대처하는가를 연구하였다. 그리고 이 연구는 3가지 집단을 대상으로 이루어 졌는데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남자 집단. IQ가 높은 천재 여성으로 구성된 터먼 집단, 어린 시절 범죄에 빠지지 않고 성공한 이너시티 집단이 그것이다. 그리고 단지 표본대상의 일정 기간동안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연구를 하므로 빠질 수 있는 오류에서 벗어나 상당히 행복의 실체에 근접한 결론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이 행복연구는 우리가 알고 있는 행복에 대한 조건의 기본상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유년시절 좋은 부모밑에서 좋은 양육과 보호를 받으며 자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행복해질 조건이 좋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행복해 질 가능성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나이가 들면서 충분히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말해 주었다. 어릴적 아버지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은 나는 항상 내 인생에 따라다니는 벗을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를 아버지 탓으로 돌리며 바꿀 수 없는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성인기에 접어들면서 유년기의 어두운 과거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사례를 앤서니 피렐리라는 한 인물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어두운 유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사람이 가진 능력이 아니라 생애 순간순간마다 자기방어기제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며 사람과 인생에 대해 성숙하게 반응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반응할 때 어두운 유년시절의 과거는 하나의 작은 그림자로 추억될 수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과거도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많은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이 책에서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일곱가지로 꼽았다. 첫 번째는 고통에 대응하는 성숙한 방어기제이고 이어서 교육, 결혼생활, 금연, 금주, 운동, 알맞은 체중이 그것이였다. 결국 한 인간의 인생이라는 것은 주어진 조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생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응할 때 스스로 인생을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결국 태생적으로 주어진 조건들은 스스로 극복할 수 있으면 지나온 인생의 족적들은 모두가 스스로가 만들어 온 것이라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결혼생활과 인간관계는 행복의 결정적인 요소로 47세까지 만들어 놓은 인간관계망이 그 이후의 행복을 결정한다고 한다. 결혼생활의 질도 결국은 배우자간의 깊은 관계가 결정하는 것으로 행복은 곧 인간관계라는 공식을 이 책을 통해서 설정해도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내가 말할 수는 것은 남는 것은 성공이나 업적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성취한 것도 그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을때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다. 관계가 행복의 필수 요소라면 얼마나 열심히 인간관계를 가꾸어 나가야 하겠는가. 가장 내 옆에 있어서 소홀하기 쉬운 내 가족이 또 다른 나의 자아라로 생각하면 그들을 가꾸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인생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면 타인에게 하는 것이 곧 나에게 하는 것이요, 타인이 곧 나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에서 보여주는 행복의 조건이라는 것은 결코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않고 한 인간이 자기 주위에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 있는 인간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것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행복의 극치는 자신을 타인에게 내어주며 봉사하는 나이듦의 미학을 이루어 나갈때 인생의 희노애락을 자기의 인격안에서 특별한 의미로 녹일 줄 아는 통합에 있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행복의 파랑새가 찾아온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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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121207_review#tab

 

우수리뷰대회 한번 응모해봐야 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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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의 역사 살림지식총서 15
정진농 지음 / 살림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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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하면 먼저는 저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가 떠오른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적인 시각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 자체에 이미 서구 우월주의가 내포되어 있는, 동양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우울한 용어이다. 가치중립적 이여야 할 학문 용어 자체에 이런 편견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슬픈일이 아닌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정의를 볼려만 당연히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봐야 겠지만 그 책을 보면 3중으로 질린다. 두께에 질리고, 빽빽한 글씨에 질리고, 별로 끌리지 않는 표지와 편집에 질린다. 오리엔탈리즘에 대해서 관심이 가고 읽고 싶은데 이 책은 너무 두꺼워 엄두가 나지 않고, 그래서 선택한 책이 얇고 비교적 간략하게 요약된 이 <오리엔탈리즘의 역사>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역사>는 살림지식총서 15번재 책으로 몇권의 살림지식총서를 읽은 나에게 그런데로 만족감을 주었다. 살림지식총서는 90~100페이지 이내로 쓰여진 것으로 분량은 작지만 그래도 꽤 밀도있고 깊이있는 총서이더라.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들을 자기 스스로를 재현할 수 없고, 재현되어져야 한다." 이 말을 칼 마르크스의 말로 '그들'은 동양인을 말한다. 이 한 문장안에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가 어떤 색깔을 지녔는지 알 수 있다. 이 말은 "동양에는 문화가 없고 역사가 없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동양에 대한 서양의 오만한 시각이 깔려있다. 동과 서가 서가 갈라진 역사적 배경은 로마제국이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열되면서 서로마가 유럽문명의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서방'이라 불리게 되었고 동로마는 비잔틴 제국과 이슬람 세계로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고 근래에는 근동, 중동, 극동 아시아 지역을 총칭하는 용어로 '동방'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양과 서양은 그 간극이 더해져 서로 대극적 타자가 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루드야드 키플링의 시 '동과 서의 발라드'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오,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 그 둘은 결코 만날 수 없으리. 신의 위대한 심판의 자리에 하늘과 땅이 필히 서게 될 때까지는."

 

이렇게 서로에 대해 철저히 타자였던 동양과 서양은 서양이 먼저 동양을 발견하면서 서양의 관점에서 동양을 연구하고 지식을 축적하게 되는데 그 배경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서양 제국주의에서 부터 시작하게되었다. 이후로 서양은 제국적 지배의 강화와 무역, 그리고 선교를 위해 동양에 있는 많은 문헌들을 번역하고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동양이 서양에 봇물처럼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인도의 신비적인 종교와 철학은 서양인들을 매료시켰고 볼테르나 쇼펜하우어, 바그너, 니체등과 같은 유명한 서양지식인들에 의해 소개되고 강화되었다. 특히 바그너는 서양의 유대-기독교의 종말을 고하면서 이 종교의 편협한 도그마에 비해 불교의 교리가 얼마나 숭엄하고 만족스러운지를 한 지인에게 보편 편지에 썼으며, 붓다의 생애에 기초한 [승리자]라는 오페라까지 만들기도 했다. 또한 현대 프랑스 철학으로 대변되는 포스트모던 철학의 자양분이 되는 니체의 철학이 바로 불교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도 밝혀지면서 동양의 자양분이 서양에 유입되고 흡수되면서 서양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리처드 니스벳은 그의 저서 <생각의 차이>에서 서양의 사고방식은 분석이며 동양의 사고방식은 종합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서양은 개체를 중요시하고 동양은 관계를 중요시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서양철학은 존재론 중심이며, 동양철학은 관계론 중심인 것이다. 서양과 동양이 한쪽이 어느 한쪽을 지배하고 정의하고 재단하는 오만에서 벗어나 각각의 사고와 문화를 수용, 발전시켜 더욱 풍부한 인류 문화를 꽃피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방언의 음악을 들어보라. 동양과 서양의 아름다운 만남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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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12 - 편집자가 알아야 할 편집의 모든 것
열린책들 편집부 엮음 / 열린책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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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쓰다보니 문장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등 편집에 관해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열린책들에서 기본적인 편집에 대한 내용들을 담은 책들을 매우 저가에 출판하고 나처럼 기본적인 편집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아무래도 직접 출판을 하는 곳이다 보니 표준적인 국어 맞춤법도 그렇지만 실제로 출판사에서 필요한 편집원칙 또한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기본적은 표준 맞춤법외에서 편집에 필요한 모든 사항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처음에는 출판이 목적이 아니라 열린책들 출판사 자체적으로 매뉴얼을 만들어 내부 교육용으로 사용하다가 사용자가 늘고 요청이 있어서 이렇게 직접 매뉴얼로 출판하였다고 한다. 매우 좋은 일이다. 출판사가 상업적으로 책을 파는 것 뿐 아니라 이렇게 새로운 출판문화와 필요한 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얼마전에 내가 일하는 곳에서 작은 책자를 발간할 일이 있어서 사람들로부터 원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책자로 발간하기 전에 꼼꼼히 읽어보고 오탈자를 수정하려고 하나하나 꼼꼼히 읽은적이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글을 잘 쓰지 못했다. 기본적인 띄어쓰기나 단어선택이 적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기본적인 주어와 서술어의 상응관계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면서 생각난 것이 바로 열린출판사에서 펴낸 이 책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이였다. 내가 작은 책자를 편집하려고 문장을 수정하면서 묘한 즐거움을 느꼈다. 어찌보면 아주 세밀하고 작은 분이지만 인간의 정신의 가장 좋은 표현인 문장을 다듬는 것이 왠지 모를 숭고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면서 즐겁고 어떤 의식을 행하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책을 보았을 때 문장과 단어들이 정갈하고 깔끔하게 정리되고 정확한 표현을 구사하는 문장들이 보일 때 뭔가 작은 조각작품 같은 느낌이 든다. 외관상으로 보면 문자가 가장 볼품없는 작은 예술품이라고 한다면 인간정신의 발전이나 위대함을 발현이라고 보면 문자야 말로 인류역사에 가장 위대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문자를 다듬는 편집의 일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예술가중의 하나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미국의 유명한 작가도 작품은 작가가 쓰지만, 편집은 신이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편집에 이 책은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글을 쓰거나 문장을 수정하면서 헷갈리는 것이 몇가지가 있었다. 먼저 띄어쓰기에 관한 것이였다. ‘것’, ‘수’와 같은 의존명사가 올때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붙여쓸때도 있고 띄어쓸때도 있는데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 책을 보면서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용문이나 대화문 같은 것은 어떠한 기호로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정리할 수 있었고 외래어를 어떻게 음역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와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책을 제작하는 방법과 과제 그리고 우리가 무심히 지나가는 책의 용어에 대해서도 알수 있어서 매우 유익했다. 표제지, 면지, 간기면 이러한 것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어서 또한 유익했다.

 

이 편집 매뉴얼을 보니 더욱 책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남들은 그냥 지나치는 한문장, 한단어도 이렇게 편집자의 정성어린 돌봄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을 옆에 두고 문장을 다듬는 친구로 삼으면 글쓰기나 문장이 한층더 유려해 질것일 것이다.

 

열린출판사의 봉사에 가까운 이책의 출판을 환영하며 감사드린다. 항상 내 책상앞에 두고 야금야금 조금씩 먹는 마음으로 이책의 내용을 섭렵해야 겠다. 문장의 예술가, 문장의 조각가 아마도 그것은 위대한 인간정신을 다듬는 장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작가 스티븐 킹은 <저술은 인간이, 편집은 신이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저술은 때로는 모험과 도전일 수 있지만, 편집은 언제나 100퍼센트 완성도를 향한 끝없는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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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9 1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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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0 11: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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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3 18: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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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3 23: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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