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준비에브 브리작 지음, 최윤정 옮김 / 황금가지 / 1997년 1월
품절




나는 독서 카드에다가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을 쓴다.
식도락가 돼지가 햄을 먹고 소화 불량으로 죽는이야기.
식도락가 돼지는 자기 살을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 먹기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다. 햄의 자기 성찰로 인한 죽음,
어느 나르시스트 돼지의 이야기 라고 제목을 붙인다. 삽화를 그려 넣고 싶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다는 건 불가능하다."
-1쪽

"배고픔.
나는 배고픔과 더불어 살고 있다. 배고픔을 누르고 달래고 길들이고 잠재운다.
온몸의 신경 섬유 바로 밑으로 지나가는 바람이 나를 대기와 맺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좋다. 배고픔이 내게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빈정거릴 수 있는 가벼움을 준다고 느낀다.

-2쪽

곧 목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지 않고도 배에 힘을 꽉 주고 명치 끝을 꽉 누르기만 하면 토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속을 청소해서 깨끗해진 느낌이 든다. 다시금 내 운명의 주인이 된 느낌이다.

사람들을 쳐다보아 버릇하면, 정말로 그들을 쳐다보면, 그건 일종의 마약이 된다.
-3쪽

하루 종일 젖은 솜처럼 나른하게, 느리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좋았다.이 새로운 느낌은 나로 하여금 푸른색 내 방바닥을, 요조에 흐르는 정확한 물소리를, 내 테이블의 나무결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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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준비에브 브리작 지음, 최윤정 옮김 / 황금가지 / 1997년 1월
평점 :
품절


15살의 누크(준비에브)는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섬세하고 예민하게 말한다.재미있고 괴롭기도 하다.
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마지막 장이 찢어져서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서점에서 읽어 보게 되겠지만, 마지막 장 없이 읽어도 좋은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은 정말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다.


구역질이 나서가 아니라 뱃속의 배고픔, 허전한 느낌, 몸의 가벼움이, 무겁고 안정된 마음을 주는 것 같았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충돌로 인한 안정감 이랄까.


과격한 주제, 이해가 부족했던(거식증) 이야기를 너무도 당연하고 예민하게 이해할 수 있게 자연스럽게 고민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의 문체나 예민한 누크의 표현을 보면 더 잘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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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이만교 지음 / 민음사 / 2003년 8월
품절


아이들은 들고 있던 참외며 수박을 팽개친 채로 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또 다른 수군거림과 그림자들이 벌떡 일어나 내달리기 시작하는 거였다. 동이 다른 동네 아이들도 원정을 와 있었고, 주인집 아들도 제 친구들을 데리고 숨어 들어와 있었고, 참외와 수박 맛에 반한 도깨비들도 따먹고 있던 참이고, 살쾡이나 두더지 같은 산짐승들이며, 특히나 한쪽에서는 다른 원귀들에게 먹을 것만 박힌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는, 굶어서 죽은 중공군 귀신 몇이 몰래 숨어 들어와 다디단 우리나라 침외 맛에 반해 잔뜩 배를 불리고 있던 참이었고, 그 틈바구니에 범이네 아이들도 있었다. -182쪽

눈을 감은 채로 두 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는 놈, 말리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쥐어박는 놈, 상대방 불알을 잡고 늘어지는 놈, 멀리서부터 뛰어와 공중옆차기를 시도했다가 머리부터 떨어져서 다친 제 뒤통수를 감싸 안고 우는 놈, 머리끄덩이를 잡고 놓지 않는 놈, 놔! 안 놔? 정말 안 놓을래? 하고 씨근덕대기면서 가쁜 숨을 고르는 놈, 코피가 터지자 고개를 쳐들고 울면서 아무 데로나 계속 걸어가는 놈, 울음 우는 아이들 얕잡고 쫓아가 한 대 더 때리는 놈, 말리려고 양쪽을 떼어내다가 양쪽 모두의 주먹에 얻어맞고 우는 놈, 옷이 뜯어지자 엄마에게 혼날 일이 걱정되어 화를 내며 다시 싸우기 시작하는 놈, 겁이 나서 상대방을 끌어안은 채 놓아주지 않고 끝까지 엉겨 붙어 있는 놈...

눈두덩이 부어오른 놈, 코피 터진 놈, 찔끔찔끔 울어쌓는 놈, 입술 터진 놈, 옷자락이 뜯겨져 나간 놈, 뒤늦게 화가 나서 씩씩대는 놈,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삼키는 놈, 다른 사람 피가 묻은 것을 제 피가 흐르는 줄 알고 놀라 울면서 닦는 놈, 잃어버린 신발을 찾느라 사방을 돌아다니며 기웃대는 놈...

참으로 가관이었다. -191쪽

억이와 억우 그리고 중숙, 말순, 막내 필녀까지 울며불며 매달렸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보다 못해 죽은 조상들까지 내려와 싸움을 뜯어 말려야 했다.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다 새벽녘에야 잠잠해졌는가 싶었는데 좀 전까지도 같이 죽자고 싸우던 그들이 이젠 너 없이 하루도 못산다며 흘레를 붙자, 싸움 말리다 어느새 날이 새는 바람에 저승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윗목에 모여 앉아 하루 낮을 더 기거해야 했던 조상귀신들은, 그만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좌불안석, 찬장의 쥐오줌 얼룩만 쳐다보거나 헛기침만 연신 해댔다.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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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이만교 지음 / 민음사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오래 전부터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책의 밑퉁이를 보니 2003.9.11라고 찍혀 있네. 4년 전에 산 책이렸다! (사놓고 안 본 책들이 수두룩 하지만.)

 어제 이 책을 머리 맡에 놔두고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면  누운 채로 집어서 보려고.  몸도 별로 가뿐하지가 않아 오른쪽으로 누웠다, 왼쪽으로 누웠다, 이리저리 몸을 뒤집어 가며 책을 읽어 나갔다. 계속 누워서 책을 보다보면 졸리게 마련,  눈도 슬쩍 감았다 떴다 하면서! ( 읽는 데 집착하지 않는 게 책을 즐기는 방식이다.  재미없으면 덮고, 재미있어도 읽기 싫으면 내일 읽는다. )

 이 책은 덮지 않고 한 번에 다 읽었다.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우선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을 하나 해치운 희열감과 탱글탱글한 글을 발견한 기쁨!

4년 전에도 몇장 읽었는데, 영 싱겁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문장이 싱거운 게 이 책의 묘미라면 묘미, 재미라면 재미다.  싱거우면서도 단단하고 새콤하달까. 책에서 나온, 침  고일정도로 시그러운 ' 덜 익은 자두' 같은 느낌.

이 책은 주인공 동이는 큰 누나에게 퉁퉁 퉁기는 '공'하나를 받는다. 동이가 신기한 공을 보고 묻는다. "속에 뭐가 들어 있어?"  큰누나가 대답한다. "아무것도 없어."

이 아무것도 들지 않은, 아무것도 아닌 '공'으로, 처음에는 작은 누나와 싸우다가, 제일 친한 녀석이랑 싸우고, 아이들과 편을 먹고, 서로 히히덕거리며 작당하기도 하고, 내기도 하고, 시기하고, 욕심부리고, 집착하고, 또 싸우고, 복수하고, 어른들 싸움까지 번지고, 아랫마을 아이들과도 싸운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내 어렸을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옛날이지만, 그 상황이나 사소한 감정 싸움들은 어찌나 판박이 같은지.  (지금도 물론, 나이가 듬에 따라 미세하게 고도로 발전된 잔머리스런 감정들이 계속 뻗어가고 있다.  그 본채를 살짝 살짝 들어다 보는 것 같아 살짝 부끄럽기도 하고.) 이 상황들을 크게 빗대어서 볼 수 도 있다.  작가 말대로 '우화'같은 소설이 아닌가 싶다.

우선 멋부리지 않고 탄력있게 퉁기는 문장이 맘에 들고, 시치미떼는 듯하면서 부리는 유머들이 좋았다. 중간 중간에 아궁이 불귀신, 수염 기른 잉어 할배, 이무기 아저씨, 꼬리 아홉 달린 흰 여우, 피 칠갑을 한 처녀귀신, 사천왕 도깨비, 헛기침을 연신 해 대는 조상님들 같은 초현실적인 캐릭터들이 나타나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취임새를 주었다.

살짝 아쉬웠던 건  글이 간결하고 우화 같은 형식인 만큼, 그에 따라 인물들을 상징화되고 살짝 거리감 있게 느껴진다는 거다. 처음에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읽다보면 그 점도 충분히 커버된다.

 이 책에서 처럼 아이들도 어른들과 비슷한 욕망과 집착에 다투고 살지만,  아이들은 빨리 잊고 빨리 또 다른 무엇인가에 강한 호기심으로 옮겨간다.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야 말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배워야 할 점이라는 작가의 말에 동감한다.

또 작가의 후기 중에 최선을 다하면 다하려 할 수록 반대로 더 많은 아쉬움과 자기 한계 인식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책에 그게 고대로 드러나 있다. 작가가 자신의 글에 푹 발을 담갔던 흔적이 느껴졌다.  공을 가지고 노는 아이  중 환호의 설명.  "실수한 동작은 반복 연습하여 고쳤고, 그런데도 같은 잘못을 또다시 반복해 저지르게 되면, 내기에 진 사실보다도 환호는 그것을 더 속상해 했다"

작가님, 맞는가요?

아무튼, 빈둥거렸던 토요일 하루는 이 책 때문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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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네가 남긴 것 사계절 1318 문고 25
지그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아르네가 남긴 것"에서 아르네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아르네의 형이되는 한스가 아르네의 방을 정리하면서 아르네의 기억을 차근차근 되살려 나간다. 이미있었던 일이 지만 다시 생겨나는 일 같이. 담담한 한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난 이 책 그대로도 좋았지만 이 책이 나에게 준 것은 아르네였다. 

아르네는 누구도 가지지 못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 헤르만 헤쎄의 "데미안"에 데미안에게서도 느낀 어떤 것이었는데 아르네는 그것보다 약하게 보이기 때문에 나에겐 더 강하게 다가왔다. 꼼꼼한 손놀림, 작은 목소리, 눈빛. 아르네는 다정했고, 

자신이 하는 일에는 어떤 것도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뜀틀을 못넘지만 창피해 하지 않고, 아이들과 친해지려는 데도 거부당하지만 그런것에 화를 내지 않는다.아르네는 유리노르스테인의 사랑스런 "푸른 악어" 같기도 했다. 

거기에 나오는 푸른 악어는 꽃을 사랑하고 아기자기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 다른 악어들은 못생긴 애가 꽃같은 걸 좋아하냐면서 비웃고 따돌렸지만, 푸른 악어는 아랑곳 하지 않고 꽃을 좋아한다. 꽃밭에서 놀던 악어는 꽃을 좋아하는 예쁜 염소를 만나게 되고 사랑하지만 염소는 가을이 오자 꽃과 풀이 없는 악어를 떠나려고 한다. 염소는 하나의 풀이라도 있으면 그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 

악어는 곧바로 나무에 메달려 하나의 나뭇잎으로 변한다. 

누가 뭐라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변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 푸른 악어와 아르네가 닮은 것이다.쉽고 평범한 일인것 같이 들리지만 살아가다 보면 이렇게 하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걸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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