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들고 있던 참외며 수박을 팽개친 채로 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또 다른 수군거림과 그림자들이 벌떡 일어나 내달리기 시작하는 거였다. 동이 다른 동네 아이들도 원정을 와 있었고, 주인집 아들도 제 친구들을 데리고 숨어 들어와 있었고, 참외와 수박 맛에 반한 도깨비들도 따먹고 있던 참이고, 살쾡이나 두더지 같은 산짐승들이며, 특히나 한쪽에서는 다른 원귀들에게 먹을 것만 박힌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는, 굶어서 죽은 중공군 귀신 몇이 몰래 숨어 들어와 다디단 우리나라 침외 맛에 반해 잔뜩 배를 불리고 있던 참이었고, 그 틈바구니에 범이네 아이들도 있었다. -182쪽
눈을 감은 채로 두 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는 놈, 말리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쥐어박는 놈, 상대방 불알을 잡고 늘어지는 놈, 멀리서부터 뛰어와 공중옆차기를 시도했다가 머리부터 떨어져서 다친 제 뒤통수를 감싸 안고 우는 놈, 머리끄덩이를 잡고 놓지 않는 놈, 놔! 안 놔? 정말 안 놓을래? 하고 씨근덕대기면서 가쁜 숨을 고르는 놈, 코피가 터지자 고개를 쳐들고 울면서 아무 데로나 계속 걸어가는 놈, 울음 우는 아이들 얕잡고 쫓아가 한 대 더 때리는 놈, 말리려고 양쪽을 떼어내다가 양쪽 모두의 주먹에 얻어맞고 우는 놈, 옷이 뜯어지자 엄마에게 혼날 일이 걱정되어 화를 내며 다시 싸우기 시작하는 놈, 겁이 나서 상대방을 끌어안은 채 놓아주지 않고 끝까지 엉겨 붙어 있는 놈...
눈두덩이 부어오른 놈, 코피 터진 놈, 찔끔찔끔 울어쌓는 놈, 입술 터진 놈, 옷자락이 뜯겨져 나간 놈, 뒤늦게 화가 나서 씩씩대는 놈,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삼키는 놈, 다른 사람 피가 묻은 것을 제 피가 흐르는 줄 알고 놀라 울면서 닦는 놈, 잃어버린 신발을 찾느라 사방을 돌아다니며 기웃대는 놈...
참으로 가관이었다. -191쪽
억이와 억우 그리고 중숙, 말순, 막내 필녀까지 울며불며 매달렸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보다 못해 죽은 조상들까지 내려와 싸움을 뜯어 말려야 했다.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다 새벽녘에야 잠잠해졌는가 싶었는데 좀 전까지도 같이 죽자고 싸우던 그들이 이젠 너 없이 하루도 못산다며 흘레를 붙자, 싸움 말리다 어느새 날이 새는 바람에 저승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윗목에 모여 앉아 하루 낮을 더 기거해야 했던 조상귀신들은, 그만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좌불안석, 찬장의 쥐오줌 얼룩만 쳐다보거나 헛기침만 연신 해댔다.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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