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이만교 지음 / 민음사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오래 전부터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책의 밑퉁이를 보니 2003.9.11라고 찍혀 있네. 4년 전에 산 책이렸다! (사놓고 안 본 책들이 수두룩 하지만.)

 어제 이 책을 머리 맡에 놔두고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면  누운 채로 집어서 보려고.  몸도 별로 가뿐하지가 않아 오른쪽으로 누웠다, 왼쪽으로 누웠다, 이리저리 몸을 뒤집어 가며 책을 읽어 나갔다. 계속 누워서 책을 보다보면 졸리게 마련,  눈도 슬쩍 감았다 떴다 하면서! ( 읽는 데 집착하지 않는 게 책을 즐기는 방식이다.  재미없으면 덮고, 재미있어도 읽기 싫으면 내일 읽는다. )

 이 책은 덮지 않고 한 번에 다 읽었다.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우선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을 하나 해치운 희열감과 탱글탱글한 글을 발견한 기쁨!

4년 전에도 몇장 읽었는데, 영 싱겁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문장이 싱거운 게 이 책의 묘미라면 묘미, 재미라면 재미다.  싱거우면서도 단단하고 새콤하달까. 책에서 나온, 침  고일정도로 시그러운 ' 덜 익은 자두' 같은 느낌.

이 책은 주인공 동이는 큰 누나에게 퉁퉁 퉁기는 '공'하나를 받는다. 동이가 신기한 공을 보고 묻는다. "속에 뭐가 들어 있어?"  큰누나가 대답한다. "아무것도 없어."

이 아무것도 들지 않은, 아무것도 아닌 '공'으로, 처음에는 작은 누나와 싸우다가, 제일 친한 녀석이랑 싸우고, 아이들과 편을 먹고, 서로 히히덕거리며 작당하기도 하고, 내기도 하고, 시기하고, 욕심부리고, 집착하고, 또 싸우고, 복수하고, 어른들 싸움까지 번지고, 아랫마을 아이들과도 싸운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내 어렸을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옛날이지만, 그 상황이나 사소한 감정 싸움들은 어찌나 판박이 같은지.  (지금도 물론, 나이가 듬에 따라 미세하게 고도로 발전된 잔머리스런 감정들이 계속 뻗어가고 있다.  그 본채를 살짝 살짝 들어다 보는 것 같아 살짝 부끄럽기도 하고.) 이 상황들을 크게 빗대어서 볼 수 도 있다.  작가 말대로 '우화'같은 소설이 아닌가 싶다.

우선 멋부리지 않고 탄력있게 퉁기는 문장이 맘에 들고, 시치미떼는 듯하면서 부리는 유머들이 좋았다. 중간 중간에 아궁이 불귀신, 수염 기른 잉어 할배, 이무기 아저씨, 꼬리 아홉 달린 흰 여우, 피 칠갑을 한 처녀귀신, 사천왕 도깨비, 헛기침을 연신 해 대는 조상님들 같은 초현실적인 캐릭터들이 나타나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취임새를 주었다.

살짝 아쉬웠던 건  글이 간결하고 우화 같은 형식인 만큼, 그에 따라 인물들을 상징화되고 살짝 거리감 있게 느껴진다는 거다. 처음에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읽다보면 그 점도 충분히 커버된다.

 이 책에서 처럼 아이들도 어른들과 비슷한 욕망과 집착에 다투고 살지만,  아이들은 빨리 잊고 빨리 또 다른 무엇인가에 강한 호기심으로 옮겨간다.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야 말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배워야 할 점이라는 작가의 말에 동감한다.

또 작가의 후기 중에 최선을 다하면 다하려 할 수록 반대로 더 많은 아쉬움과 자기 한계 인식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책에 그게 고대로 드러나 있다. 작가가 자신의 글에 푹 발을 담갔던 흔적이 느껴졌다.  공을 가지고 노는 아이  중 환호의 설명.  "실수한 동작은 반복 연습하여 고쳤고, 그런데도 같은 잘못을 또다시 반복해 저지르게 되면, 내기에 진 사실보다도 환호는 그것을 더 속상해 했다"

작가님, 맞는가요?

아무튼, 빈둥거렸던 토요일 하루는 이 책 때문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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