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는 죽은 다음에야 쓸 수 있는 말이다.

재준이의 일기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말은 재준이가 죽은 후에도 어디엔가 살아있는 것처럼 들린다. 어디선가 아무표정 없이 중얼거리고 있을 것 같다. 이 말 때문에 유미는 재준이의 일기장을 쉽게 읽어나가지 못한다. 무엇이 두려웠을까.


유미는 답답한 학교에서 답답한 친구(재준)를 만난다. 하지만 그 답답할 것 같던 친구와 누구보다 친한 사이가 된다.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점을 그 친구가 가졌을 때 더 친해질 수 있는 것 같다. 전부 평범하고 아무 일 없을 것 같은 아이들 마음속에는 걱정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 어려움들이 있다. 말할 수 없는 것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죽음은 갑자기 찾아온다. 어느 날 갑자기. 너무 쉽게 너무 간단하게. 항상 옆에 있었던 사람이 없다. 없어졌다. 허전함과는 다른 어떤 슬픔 같은 게 느껴졌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점은, 이 책 속에 나왔던 책이나 음악, 영화이다.
책에서 다른 책을 말해줄때 그 의미는 새롭게 태어나는 것 같다. 안 보이는 끈으로 연결돼 있는 것이다. 판타스틱 소년 백서, 20세기 소년, 채플린, 키드, 황금광 시대, 황신혜 밴드, 황보령, 삐삐롱 스타킹.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유미와 재준이는 조금 언더스럽거나 대중문화에 휩쓸려가는 아이들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나도 판타스틱 소년 백서에 도라버치, 스티브 부세미를 좋아하고 채플린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책에서 나오거나 하면 더 가까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느낌도.


책에서 내가 마음에 든 부분은 ‘아픈 건 조금도 낭만적이지 않아.’ 라고 어른스럽게 말하던 재준이의 대사와 시체놀이를 하는 장면이다. 시체놀이 말고 다른 말이 있었으면 좋을 뻔했다. 시체놀이하면 짱구가 생각나서 말이다. 재준이가 누워서 가만히 죽은 척하고,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데서 기분이 이상했다.


이 책의 단점 꼽는다면, 바보 같은 말일 수도 있지만 말줄임표가 많다는 것이다. 책 한권은 한 텍스트로서 읽기와 모양을 함께 한다고 본다. 영문의 둥글둥글함과 한글의 각이진 네모느낌이 다르듯. 말줄임표가 많으면 어딘가 흩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주 약간의 밀고 땡 길 수 있는 절제 감.
하지만 가볍고 쉬운 말들로 이어나가면서도 그 끈을 잃지 않는 게 좋았다. 읽을 때보다 읽고나서 마음이 슬퍼지는 건 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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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 2007-09-13 0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는데요~ 추천 꾸욱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