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이옥용 옮김 / 동방미디어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한국에는 스파이 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는 포사이드의 [Veteran and other stories]라는 중단편집을 이 책과 [인디언 서머] 라는 두 책으로 분책해 출간했다. [자칼의 날], [오데싸 파일]등의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보통의 추리소설집에 가까와서 약간은 의외였다.

얘기는 말할 수 없이 재미있다. '베테랑'은 제대로 된 본격 형사물이자 막판 반전이 기가 막히고, '도둑의 기술'은 제프리 아처의 [한푼도 용서없다]를 연상케 하는 복수극. '기적'이 좀 맥빠지는 스토리긴 하지만, 결말을 제외하면 2차대전에 대한 묘사나 이야기 풀어나가는 솜씨가 아주 괜찮기 때문에, 단숨에 읽을 수있는 소설집. 워낙에 짧은 얘기들이라 부담도 없다.

문제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좋은 그릇에 담아야 구미를 당기는 법인데, 이 책과 작가 포사이드가 받은 푸대접은 좀 심각하다. 미/영국에서 출간된 원서에 실려있는 제목은 다음과 같다.

[Veteran and Other Stories, 2001]

  • The Veteran
  • The Art of the Matter
  • Miracle  (여기까지가 [베테랑])
  • The Citizen
  • Whispering Wind (여기까지가 [인디언 서머]) 

나는 [인디언 서머]는 아직 사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얘길 하는 게 조심스럽긴 한데, Whispering Wind는 단편이 아니라 중장편(Novella) 수준이라는 다른 곳의 외서 소개를 보고 분책을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마치 동화책 편집을 한 듯한 큼직한 폰트랑 널찍한 자간과 마진을 조금 줄이고 한꺼번에 하드바운드로 내 주었다면 아주 가격대 성능비가 괜찮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국내와 외국의 출판 문화가 다른 것은 인정하지만 미/영 양쪽에서 똑같은 구성을 갖고 태어난 책을 꼭 이렇게 난도질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그러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볼 때, 구매를 할 독자층을 약간 잘못 잡은 것이 아닌가도 싶고.

더우기 책을 두 번 죽이는 것이, '베테랑'에서 한 인물의 이름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3개로 번역하거나, 200만 파운드를 200파운드로 두번씩이나 잘못 써서 내용 이해를 힘들게 만들고, 의미상 '의사'로 번역되어야 할 Doctor라는 단어를 생각없이 '박사'로 여러번 놓아둔 것이나, 심지어 타이핑 미스로 생긴 영문자 (50페이지, 말이dh) 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을 보고 교정도 한번 안 보고 책을 내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자칼의 날] 영화판(1973년)을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자칼(1997년)]과 헷갈린 면도 그렇고... 이래서야 일일이 역주를 달아가며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도운 번역자의 노력이 안쓰럽지 않은가.

미스터리 팬으로서, 이 책의 상태가 번역 미스터리 문학이 이 땅에서 받는 대접의 현주소가 아니기만을 빌 뿐이다. 내용이 워낙 재미있었기 때문에 별 넷을 주는 것뿐.


댓글(5)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4-06-2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저는 인디안 서머까지 읽었네요. 으...

sayonara 2004-06-2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외로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자칼의 날'과 브루스 윌리스의 영화 '자칼'을 헷갈려하는 독자들이 많더라구요. 각종 영화평을 읽어봐도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원작을 영화화했다고 쓴 사람도 있구요. 평론가들의 무책임이라고 해야하나...

Fithele 2004-06-27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긴 합니다. 73년 영화 각본가가 [자칼]의 제작에 참여했죠. 허나 얼굴 없는 킬러라는 설정 외에는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되었습니다.

영화 안 보고 영화평 쓰긴 아무래도 쫌 힘들 테니, 포사이드의 원작을 읽지 않았거나 확인해 볼 성실함이 부족했거나 둘중 하나겠지요. ^^;;

sayonara 2004-06-28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성실에 한표~

프랭보우 2004-07-05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루스 윌리스의 영화 '자칼'은 거의 모든 면에서 포사이드 원작 '자칼의 날'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국경을 넘어오는 방법, 은신처 마련 방법, 총기구입방법 등등...
 
채찍을 쥔 오른손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1
딕 프랜시스 지음, 허문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딕 프랜시스의 작품은 경마가 성행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선 정말로 낯선 소재를 다룬다는 점에서 일단 높은 점수를 받고 들어갈 만 하다. 마치 흑백처럼 대조되는, 백년 전에서 튀어나온 듯한 점잔 빼는 신사들의 암투와 그 뒤켠의 법보다 인맥과 주먹이 가까운 일꾼들의 세계. 기본적으로 그의 경마 이야기는 첩보물 혹은 하드보일드에 가깝다. 거칠고 사나운 말, 말을 닮은 사람들, 그리고 원초적 본능이 극대화될 수밖에 없는 뜨거운 경주에 끼어드는 흑막. 게다가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무쇠 같은 자들이니 딱 삼박자가 맞아떨어지긴 한다.

근데 물 건너 대쉴 해밋이나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에서 느낄 수 없던 열광이 딕 프랜시스에게는 있다. 그의 작품을 접하는 것이 [흥분]에 이어 이번이 2번째인데, 독자가 불타오르게 되는 원인은 대충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탐정 자신의 내면 투쟁의 부각. 권말 해설에서 읽을 수 있듯이, 시드 하레이는 약간은 이례적인 탐정이다. 촉망받는 기수였다가 사고로 왼손 대신 의수를 달고 PI로 직업 전환을 하게 되었으며, 불구의 몸이 가질 수밖에 없는 본능적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다. (이 점은 맥스 캐러도스처럼 장애인이면서도 초인(超人)에 가까운 탐정과 확실히 대별된다) 전통적인 영웅에겐 절대 용서되지 못할 일이지만, 그런 약한 면으로 인해 일을 완전히 망치고 나락으로 떨어질 뻔 하거나, 한 순간의 판단 착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는 모습이 정말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보면 독자는 "이 약한 탐정이 과연 무너질 것인가, 무너진다면 어떻게" 라는 비정한 호기심으로 끝까지 그의 행동을 지켜본다고도 할 수 있는데, 쓰레기가 될 위기를 극복하고 무쇠 같은 자로 거듭남을 보면서 일종의 뿌듯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둘째, 트릭을 영국 전통의 리얼리즘으로 잘 포장한다. [흥분]도, 이 소설도 모두 말의 심리적/의학적 특질을 이용한 트릭을 보여주기 때문에 독자는 일견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던 승부조작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듣고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책에서 재미있는 건 문외한인 독자가 레이스 조작의 트릭을 추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지만, 다른 플롯에서 추리할 요소를 남겨 놓고 있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낯선 규칙에 의한 모험의 요소. 이 책에서  주인공이 예기치 않게 기구 레이스에 참가하는 대목은 정말로 훌륭했다. 낯선 소재, 낯선 풍경과 어우러진 두 기이하기 짝이 없는 사내들의 대화가 감칠맛 나는 흥미를 주었다. 경마는 그나마 경험할 기회가 있다손 쳐도,  기구 레이스 얘기는 보도 듣도 못한 것이었다. 그런 세계를 글로 간접 경험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와 열광을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다.

주인공이 사고로 부상한 왼손을 아주 잃게 된 경위를 "사고 이후 다른 폭행에 의해" 라고 적어 놓았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는 이 책에선 밝혀 놓지 않았다. 혹시 전작 [Odds Against] (1965)에서는 밝혀져 있지 않을까? 생소한 경마 미스터리를 원문으로 읽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출판이 더 많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4-06-09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하 동문입니다. 저도 시드 해리 무척 좋아하거든요... 시드 해리가 나오는 것만이라도 출판해 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panda78 2004-07-05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딕 프랜시스의 팬으로서 그의 모든 작품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나오는 대로 다 살 텐데!

瑚璉 2004-08-06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그의 최고 걸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longshot'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읽어볼 만한 작품입니다. 최근 딕 프랜시스가 지은 책들의 출간이 늘고 있는데 환영하며 좀 더 나와줘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노래하는 백골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7
오스틴 프리맨 지음, 김종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손다이크 시리즈를 모은 단편집이 강조하는 것은 1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구미의 모 유명 TV드라마에서 써먹고 있는 패러다임, 증거제일주의다. 과학적으로 규명되는 증거만이 소중하다는 테마는 어떨 때는  동기에 의한 의존 수사를 비판하거나, 기존 수사법(개의 후각을 이용하는)의 허점을 논파하는 방식으로 변주되면서 탁월한 분석 능력을 지닌 법의학자 손다이크 박사의 활약을 그려낸다.

다만 수록된 단편 중 절반 정도는 상당히 독특하게도, 하나의 이야기를 2개의 파트로 나누어 전편은 범죄자의 입장에서, 후편은 주인공 손다이크를 따라다니며 행적을 기록하는 의사 저비스의 입장에서 기술되고 있다. 보통 추리소설사에서는 이 때문에 도서추리 소설이란 장르의 효시로 이야기하지만, 살인자의 심리와 계획, 양심에 초점을 맞추며 문학적 서스펜스를 이끌어내는 현대의 도서추리 소설들에 비하면 이와 같이 두동강난 구성은 어쩐지 긴장감이 떨어진다.

허나, 멋대로의 추측이긴 하지만, 이 작품은 현대의 독자들이 미스터리 문학에서 기대하는 수수께끼의 어려움이나 놀라운 반전에 초점을 맞춘다기보다 문학에서 살인자의 심리를 그려내기 위해 쓰여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추리의 과정과 증거의 수집 등에 덧붙는 디테일한 묘사와 거의 같은 비중으로, 범인이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바짝바짝 타는 듯한 심리 상태, 죽여야 하는 당위성(?), 완전범죄를 이루기 위한 노력 같은 것들이 자세하게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 쪽에 대부분의 문학적 무게와 서스펜스가 느껴진다. 비록 주인공이 활동하는 파트는 뒤쪽이긴 하지만, 손다이크의 여러가지 활동은 프리먼이 실제적인 경찰 수사에 도움을 주기 위해 덧붙인 보고서 같은 느낌밖에 나지 않기 때문이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어느 퇴락한 신사의 로맨스] . 손다이크의 인간적인 측면이 단 한번, 그것도 아주 강렬하고 로맨틱하게 나타난 탓에 주저없이 이 단편을 베스트로 꼽는다.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손다이크 팀의 분석 능력이 너무나 뛰어나다는 것. 보통 감식반이 며칠을 걸릴 일을 겨우 한두시간 내에 해치우고, 산산히 깨어진 유리 안경 같은 것을 간단히 찾아 너무나 쉽게 조립한다든지 하는 것이 리얼리티를 떨어뜨렸다. 마치 50분 내에 모든 분석을 끝내는 모 드라마의 감식반 같았다고 할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4-05-27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홈즈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나비 사건 원제를 아시나요? 제가 쓰긴 했는데 그건지 아닌지 파악이 잘 안되서요...

Fithele 2004-05-2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members.aol.com/MG4273/freeman.htm 에 의하면 Rex v. Burnaby 같네요.

물만두 2004-05-27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잘 모르겠네요... 우리 나라에 출판된 어떤 전집에서는 그 제목이 아니거든요...
 
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오키상 수상작, 충격 데뷔작이라는 출판사의 선전 문구를 책갈피 삼아 떼어내고 나면 마치 30년 전의 낡은 문학 전집 표지를 연상케 하는 색깔과 디자인이 드러난다. 그것 때문에 책의 가격이 비싸진 것은 사실 이해하기 힘들고, 또한 본인의 기준에서 볼 때 지나치게 넓은 듯한 편집도 이해하긴 어렵지만, 얘기 자체가 2차대전 직후(즉, 일본 항복 이후)의 시대임을 감안할 때 잘 어울리는 겉 모양새라고는 할 수 있다.

의외로, 기담, 괴담 소설의 대가라는 칭호에 걸맞지 않게(?) 소설은 기본적으로는 본격물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유메마쿠라 바쿠의 [음양사]처럼, 뛰어난 지적 능력의 교고쿠도(본명 추젠지 아키히코)와 삼류 소설가인 '나'가 마치 홈즈와 왓슨 같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소설의 분위기를 잡아 나가는데, 양자역학과 심리적 맹점을 이용해 대뇌의 자의성을 역설하는 동시에 이 소설 내의 막나가는 듯한 기이한 세계관을 설파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양자역학의 도입은 후반부까지 성실하게 그 개념을 파고드는 관점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저 센세이셔널한 (=논란의 여지가 많은) 트릭을 유도하는 도구로만 쓰이기 때문에 아쉬운 점도 없지 않지만,

교고쿠도를 빌어 말하는 작가의 얘기 푸는 솜씨는 경탄스러울 정도로 유창하다. 한 1/3쯤 정신없이 읽다 보면 어느새 작중의 '나'처럼 분위기에 휘말려 멍청해진 나를 발견하니 참.... 일본 고유의 각종 괴담, 전설 등을 적재 적소에 넣고 때맞춰 하나씩 터뜨려 주니 지루할 새가 없었다. 딕슨 카의 [화형법정]을 연상케 하는 듯한 막나가는 세계가 탐정에 의해 하나씩 설명이 붙으면서 어느새 책 바깥의 실제 세계랑 합치되는 듯한 느낌이 아주 좋았다.

다만, 본격물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교환, 사체 은닉의 트릭이 접하는 순간 너무 눈에 보이거나, 혹은 납득할 수 없는데도 설명이 완전히 되지 않고 어이없이 넘어가 버려서 상당히 아쉬웠다. 적어도 '보이는 자'와 '보이지 않는 자'에 대한 구분 정도는 앞부분의 그 유창한 해설을 다시 동원해서 유도해줬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 소설의 핵심이 본격물식 수수께끼 풀이가 아니라, '논리적인 괴담'임은 분명하지만.......

소수점으로 별을 매기는 게 만약 허용된다면, 4.7 stars 정도 줄 수 있는 소설. 교고쿠도 연작의 첫 타자라고 들었는데, 다른 시리즈도 번역되어 나와서 작가의 유창한 언변을 또 접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긴다. 일본에선 애니 등 다른 매체로 제작된 적도 있는 시리즈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긋 2004-05-23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형법정을 너무나 재밌게 읽어놔서 구미가 당기는걸요!!! `ㅁ`
마구마구 읽고 싶은 맘이 솟구치는데...
어떡하나...?

Fithele 2004-05-23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설이지 마시고 보세요 ^^

decca 2004-05-24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평 좋고요~ 글놀림 경쾌하네요 ^^

로렌초의시종 2004-05-24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물흐르듯 유려하네요~ 책의 특징적인 부분에 대한 분석들도 예사롭지 않고 말이죠. 그러고보니 이주의 마이리뷰에 뽑히셨더군요. 알라딘 편집부님들도 같은 생각이셨던 모양입니다~^^

Fithele 2004-05-2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렌초님의 코멘트를 보고서야 뽑힌 걸 알았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는 말이 이래서 생기나 보군요...

물만두 2004-05-25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글 너무 잘 쓰시네요. 부럽습니다...

비츠로 2004-07-17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격추리물의 트릭 소재가 거의 사라져버린 현대의 추리소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고나 할까요..
결론에 가서 보니 정말 충격적이고 대단하더군요.
 
- 할인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베로니카 카트라이트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처음으로 보았던 히치콕 영화가 바로 이것이었다는 불운(?)은 이 감독이 매우 불길하고, 찝찝하며 괴상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선입관을 10여년 가까이 유지하게 만들 정도였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제작된 후 40년이 지나서 전혀 정보 없이 본 영화는 조잡한 느낌의 특수효과와 음악 하나 없이 진행되는 다이얼로그, 그리고 눈을 의심케 하는 결말까지 모두 수면제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무심코 비디오를 빌렸던 나는 친구들로부터 상당한 수위의 성토를 감내하며, 영화로 인해 생긴 검은 새 포비아(phobia)를 감내하며 그렇게 10년을 히치콕 영화를 멀리하며 보냈다. 가끔씩 주위에서 명작이란 소리를 해도, 그저 남들이 말하는 대로 맥카시즘에 대한 조금 혐오스런 알레고리가 아닌가, 하고 여길 뿐이었다.

근데 특수효과에 대한 눈높이가 당시와 비교할 수 없게 높아지고, 폭력 장면에 대한 관점도 상당히 많이 무뎌진 10년 지난 이 시점에서 다시 이 영화를 보았을 때, "이것은 명작이다!"라는 외침이 바로 목을 타고 올라오는 것은 그러고 있는 본인으로서도 이해 불가. 허나 사실이 그렇다. 배경 음악을 전혀 쓰지 않음으로써 배경 마을의 고요함과 새들의 사운드는 끔찍할 정도로 대조를 이루어 공포스러워지며,  흑백으로만 표현되는 새들의 군집과 대조되는 올컬러의 인간 세계의 이질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티피 헤드렌이 사온 푸른 잉꼬가 영화 끝까지 다른 새들의 광기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덧붙여 미치와 그의 어머니, 멜라니가 벌이는 신경전과 갈등의 드라마는 히치콕의 타 영화에서 보기 힘든 인간적인 울림이 있었다. 사실 10년 전엔 인생경험이 부족하여 이러한 갈등을 거의 캐치하지 못했던 것 같다.

보통 히치콕의 영화에서 잘 나타나는 '적대적 군중'으로 인한 공포의 연장선상에 '새'가 있는 것 같은데, 매개체가 말 못하는 '새'이다 보니 그 의미가 상당히 모호해진다. 10년전 처음 봤을 때처럼 딱 무엇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어진 건지, 집단적 광기로부터 자연재해 같은 천재(天災), 혹은 핵전쟁과 같은 원치 않으나 불가피한 재난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이 들 뿐이다. 어쨌든 그 새들이 점진적으로 모여 형성하는 결말의 비주얼은 지금의 관점에서 봐도 섬뜩하다.

히치콕의 내용 있는 스릴러 중에서는 [현기증]을 최고로 꼽고 싶지만 (따라서 히치콕의 최고 명작으로도 등극하지만) 공포스러운 면에서는 이 영화를 최고로 꼽고 싶다.

사족 : 각본가가 이던 헌터인데, [87분서 시리즈]를 쓴 에드 맥베인의 또다른 필명이다. 드라마의 비중이 자연스럽게 커진 것은 이런 뛰어난 각본가의 덕분이 아닐까. 나 또한, 다른 히치콕 영화 감상자들처럼 처음 주인공들의 눈맞음은 으례 나오는 맥거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oirot 2004-05-16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이 "레베카"의 다프네 두 모리에이기도 하죠..모리에 원작에 이반 헌터 각색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