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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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감각의 잔혹극”

―조경란 장편소설『혀』, 문학동네 2007년 10월



 



 




  우선 소설의 내용보다 출간된 책의 표지에 관한 얘기부터 해야겠다. 위의 사진이미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요리사로 짐작되는 어떤 여자가 시선을 내리깐 채 무엇인가를 집으려고 하는 장면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대체 무엇을 집으려 하는 것일까? 지금 이 여자 앞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힌트는 그녀가 요리사라는 것. 그렇담 요리사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당연히 요리 또는 요리 중인 음식물일 터. 책 제목이 인쇄되어 있는 보라색의 표지를 바깥쪽으로 펼쳐 내면 그림 속의 여인이 집어 올리려고 하는 그 무엇인가가 드러난다. 그러니 학교 도서관에 책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지 마시고, 직접 서점에서 가서 확인해보시라. 도서관에서는 모든 책의 표지를 벗겨낸 채 소장하기 때문에 확인이 불가능하니까.

  그리고 표지를 넘겨서 책의 본문으로 들어가면, January부터 July까지 총 7개로 된 각 장(章)의 첫 머리마다 음식 또는 요리와 관련된 다양한 제사(題詞, epigraph)가 나온다. 그런데 그 제사들과 함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또 다른 그림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이 그림은 표지 속에 감추어진 그림의 다음 장면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표지 안쪽에 감추어져 있던 그림 속에 등장하던 두 음식물(?) 중 하나는 음식 안으로 완전히 가라앉아 버렸는지 아예 보이지도 않고, 다른 음식물 하나를 요리사가 국자로 퍼 올리고 있는 것! 사실 이 두 그림만 이해하면 이 소설의 시작과 끝을 다 이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럼, 이제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 ‘노베’의 젊은 여자 요리사 정지원은 이탈리안 요리학교 ‘아펜니노’를 졸업하자마자 이곳에 취직되었다. 그녀는 입사 이래 육 년 동안 총주방장의 수제자로 인정받으며, 식당이 번창하는 데 기여해왔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의 요리연수 중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 성공한 젊은 건축가 한석주가 한 달 뒤 식당으로 찾아와서 지원에게 요리를 주문함으로써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지원은 한석주의 권유로 수석주방장이 된 지 일 년도 안 돼 독립해, 자신만의 쿠킹 클래스인 WON'S KITCHEN을 오픈했고 ‘노베’의 단골손님들 중 일부가 그녀의 WON'S KITCHEN에 가 음식을 먹거나 파티 음식 케이터링을 부탁한다. 입소문을 타고 지원의 쿠킹 클래스가 강남 일대에서 유명해질 무렵, 한석주에게 다른 여자가 생기게 되고 둘은 헤어진다. 불행하게도 지원의 쿠킹 클래스의 수강생이자 유명한 전직 모델 출신인 이세연이 한석주의 새 여자이다. 폴리라는 이름의 늙은 개 한 마리와 남겨지게 된 지원은 쿠킹 클래스를 접고 다시 ‘노베’로 돌아온다.

  본격적인 소설의 서사는 사랑과 행복이 상실되고 결핍된 이 시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별 이후 다시 돌아온 ‘노베’에서 7개월 정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녀는 오로지 상상의 힘으로 상실과 결핍의 공백을 메우려고 몸부림친다. 그녀에게 있어 사랑의 욕망은 요리사로서의 욕망이 개시되는 순간과 완벽하게 동시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그녀는 사랑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뭐 먹고 싶은 것 없어?”라고 묻거나 “뭐 좀 먹어야지”라고 권한다. 이런 발언과 행동들은 그녀의 무의식의 증상에 다름 아니다. 그녀는 사랑을 잃어버린 여자인 동시에 자신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줄 미식가를 잃어버린 요리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원은 스피노자/들뢰즈적인 감각의 존재론을 전형화하고 있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스피노자/들뢰즈에게 있어 ‘감각’(sensation)은 ‘지각’(perception)보다 원초적인 것 즉 감관에서 정신을 거치지 않고 바로 몸으로 내려가는 존재론적 현상이다. 지각이 정신의 코기토라면, 감각은 마치 유기체의 몸과 바깥의 환경이 접하는 삼투막에서 진동처럼 발생하는 어떤 유물론적 사건과도 같은 것으로서, ‘신체 혹은 육체의 코기토’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지원의 자아는 의식이나 지각이기 이전에 우선 감각이며, 그중에서도 미각, 즉 입속의 혀인 것이다. 그녀는 입의 혀를 통해서 사랑의 대상인 타자를 받아들였고, 또 혀를 통해서 자신을 요리사로서 인정해주는 고객에게 선사할 음식을 미리 맛본다.

  소설 속에서, 사랑이 제공하는 기쁨을 상실한 후 요리사로서 음식을 향유하는 미각까지도 상실한 주인공이 공허감과 결핍을 메우기 위해 상상하는 것이 “크고 깊은 구멍”과 그 구멍 속으로 들어오는 “뻣뻣하고 거칠고 검붉은 혀”와 그 다양한 변형의 모습들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혀’는 자신이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한 미식가의 혀이자,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했던 젊은 건축가의 혀이며, 한때는 찬사와 예찬으로 이루어진, 내 몸을 읽고 더듬던 친밀하고 잘 빚어진 연인 한석주의 혀였다. 그리고 또한 그 미식가에게 해줄 음식의 맛을 다시금 행복하게 느낄 수 있는 요리사의 혀이자, 연인 한석주와 키스를 하며 사랑을 나누는 자신의 혀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날 찾아온 친구 문주의 가방 속에서 집어든 잡지에서 한석주와 이세연의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되고, 그녀는 자신의 혀와 한석주의 혀가 ‘행복하게’ 다시 만나는 일은 더 이상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녀는 “이제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하며 한석주와의 최후의 만찬을 준비한다. 한석주와 자신의 혀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요리의 맛과 혀로 나누는 마지막 키스의 달콤함을 상상하며 요리 재료로 특별한 ‘육류’를 선택한다. 이러한 그녀의 마지막 행동이 과연 윤리적으로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그녀의 욕망이 과연 결여라는 부정의 원리에서 출발한 악무한의 인정투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예적 욕망인지, 아니면 새로운 생성의 원천으로서 긍정의 원리에서 출발하여 자기 보존을 선택한 자연스러운 신체적 표현의 욕망인지, 요컨대 그녀의 마지막 행동을 기율하는 욕망의 메커니즘을 명확하게 규명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독자들 스스로가 알아서 판단할 몫으로 넘기겠다.

 

  그나저나 최후의 만찬을 위해 그녀가 선택한 요리의 재료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답은 소설 안에 있다. (물론 당신의 입 안에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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