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1
강도영 지음 / 문학세계사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5ㆍ18 이후’ 세대들의 ‘5ㆍ18 트라우마티즘’ 읽기

-강풀 만화 『26년』, 미디어다음 연재(2006. 4. 3 ~ 2006. 10. 13),

 

나는 1980년생이다. 5ㆍ18과 함께 혹은 그 이후에 태어난 나의 세대가 저마다의 경험을 거쳐 민주공화국의 시민(市民)으로 성장하기까지 걸린 지난 세월들은, 5ㆍ18이 권력에 의해 은폐되고 조작되는 음모에 맞서 기억되고 증언되다가 마침내 국가적으로 기념되고 애도되는 영광을 거쳐 요즘처럼 여권(與勸)의 이데올로기적 도구 내지는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는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는 그 모든 역사의 흔적들과 고스란히 마주해온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사실 나의 세대가 공유하는 5ㆍ18과 관련한 일련의 기억들은 어디까지나 5ㆍ18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가 사후에 그것을 교육받는 위치에서 간접적으로 접하게 된 경험들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 세대는 한번도 5ㆍ18 희생자들의 자녀들, 즉 1980년 이후 ‘나’와 동일한 시간대를 살아가며 ‘나’와 함께 이 나라에서 자라왔을 또래의 그들에게 진지한 관심을 가져 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는 1980년 광주의 5월이 ‘나’의 삶과는 무관한 역사책 속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던 그 인식의 한계를 깰 수 있게 해준 어떠한 역사적 사건도, 하다못해 그들의 존재를 환기시키는 문화적 텍스트도 우리에게는 부재했던 탓이기도 하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삶에 5ㆍ18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이들에게 5ㆍ18은 그저 역사 속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올해 나온 김지훈 감독의 영화「화려한 휴가」는 1980년 5월 이후에 출생한 우리 세대를 직접적으로 겨냥해 5ㆍ18의 비극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재현해준 ‘친절한’ 작품이고, 이보다 먼저 나온 강풀의 만화『26년』은 5ㆍ18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가 부모 세대의 트라우마를 물려받아 겪게 되는 복합적인 트라우마티즘(traumatism)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연령과 상관없이 5ㆍ18의 비극을 현재진행형으로 간직하고 있는 또래의 친구들이 우리 주변에 유령처럼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도발적인’ 작품이었다. 사실 두 작품은 장르의 성격이나 텍스트 내에서 다루어진 현실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 다 5ㆍ18의 해결이 물질적 보상과 기념사업, 그리고 책임자에 대한 미완의 형사처벌로 귀결되고 있는 ‘민주화 이후’ 시대의 사회적 정황 속에서, ‘5ㆍ18’을 직접 겪지 못한 세대들을 주된 독자(혹은 관객)로 겨냥하여 그것의 기억을 요청하는 텍스트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평론가들의 해석과 비평이 충분히 나온 상태이고, 또 내게 주어진 지면의 분량이 많지 않으므로 여기서는『26년』을 중심으로 동시대 문화적 텍스트 속에서 드러나는 ‘5ㆍ18 이후’ 세대들의 ‘5ㆍ18 트라우마티즘’에 대한 성찰의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작년 4월부터 10월까지 인터넷포털 ‘미디어다음’에 연재되어 하루 조회수가 200만건을 넘고, 매회 2천여개 이상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던『26년』은 5ㆍ18 당시 계엄군이었던 김갑세라는 인물과, 도청에 끝까지 남아 있었던 시민군들의 아들, 딸들이 26년이 흐른 후에 모여 법이 응징하지 못한 ‘전범’ 전두환을 단죄한다는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다. 5ㆍ18 당시 가해자의 처지에 있었던 김갑세와 같은 계엄군 출신 인물들이 갖게 된 죄의식의 트라우마티즘은 이미 영화「박하사탕」등에서 깊이 다루어진 바 있다. 그보다 ‘5ㆍ18 이후’ 세대를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인물들로서, 김갑세가 기획한 암살 계획에 동참하는 주인공들의 면면이 중요한데, 5ㆍ18 당시 자신이 보는 앞에서 남편을 사살한 계엄군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진 어머니를 둔 광주지역 조직폭력배 진배, 도청 앞에서 아내를 잃은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아버지와 단둘이 살며 복수심을 키워온 사격선수 미진, 5ㆍ18 때 부모를 모두 잃은 슬픔을 묻어둔 채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5ㆍ18때 고아가 된 여성을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새 삶을 꾸리려 하는 흉상조각가 치영, 갓 돌이 지난 한 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여 지금은 자신의 아버지를 그때 그곳에서 죽게 만든 전직 대통령의 바깥나들이를 돕기 위해 교통신호를 통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경찰관 정혁, 그리고 계엄군으로 광주에 내려가 5월 27일 전남도청을 최후까지 사수하고 있던 치영과 진배의 아버지를 죽인 김갑세의 아들 주안 등으로, 다들 부모 세대가 겪은 비극을 불가항력적인 유산으로 물려받아 평생 고통으로 일그러진 삶을 견뎌온 이들이다.

인간에 의해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에 따라 행해진 5ㆍ18 폭력의 비극은 한국 사회의 제도적 민주화를 계기로 하여 물질적 보상과 정치적 복권으로 한 필의 천을 짜낸 듯 보이지만, 실상 그 천의 가로줄과 세로줄 사이에 여전히 잘 짜여지지 못해 생긴 커다란 틈들이 보이는데, 이 틈들 사이로 억압된, 치료되지 못한 과거 기억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라는 고립된 한 지방 도시에서 발생한 비극이지만, 5ㆍ18이 기억의 방을 여전히 점유하면서 살고 있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 기억들이 5ㆍ18 학살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들은 물론 그 가족들과 우리 모두에게 현재까지 육체적ㆍ심리적으로 엄청난 비용의 지불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 만화가 갖는 가치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 만화가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인물들이 모두 5월 27일의 전남도청 최후 학살에서 희생된 이들 즉 국가의 정규군을 상대로 벌인 최후의 전투에서 사망한 시민군들의 자녀들이라는 점은 작가의 정치적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더불어 5ㆍ18은 피해자들에 대한 경제적 보상, 기념사업, 명예회복 등으로 마무리가 되어가고, 역사적 사건의 차원에서 볼 때도 5ㆍ18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해결이 된 과거의 일이라는 식의 국가/시민사회 간의 합의된 의도적 망각이 이루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 가운데서, 이 만화는 5ㆍ18의 보상, 명예회복, 진상규명 노력, 민주화운동 세력의 집권 등의 결과가 과연 우리에게 진정으로 ‘5ㆍ18 트라우마티즘’의 불안을 제거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나아가 5ㆍ18이 그것을 직접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5ㆍ18 이후’ 세대들에게까지 각인시킨 심리적 외상들을 작품 속의 인물들의 이력에 상상적으로 투영시켜, 결과적으로는 5ㆍ18에 관한 성찰의 지평을 총체적인 ‘5ㆍ18 트라우마티즘’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리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비록 전두환 개인을 상대로 한 복수극이라는 플롯을 채택함으로써, ‘5ㆍ18 이후’ 세대가 겪은 트라우마티즘의 현실을 보다 깊이 묘사하지 못하고, 전두환 암살 작전의 성공 가능성에만 극의 초점을 맞추는 흥미 위주의 결말로 나가고 말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 보면 그것은 무모한 암살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그간 한국 사회에서 ‘5ㆍ18 트라우마티즘’을 겪고 있는 피해의 당사자들이 그 치유의 해결책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징후적으로 드러냈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즉, 학살의 책임자 전두환의 상징적, 정치적 죽음조차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그의 육체적 생명을 실제로 거두고자 하는 모종의 움직임이 만화 속에서나마 실현되고 있다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5ㆍ18 트라우마티즘’을 성찰하는 방식에 있어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폭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독자로 하여금 역사적 사건에 대한 냉철한 판단보다는 감정을 자극하는 복수극의 플롯을 취했다는 비판을 이 작품에게 던지기 전에, 그보다 먼저 왜 우리는 ‘5ㆍ18 이후’ 세대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지 못해 그들이 직접 전두환을 암살하려들 수밖에 없도록 내버려두었는가 하는 물음부터 진지하게 되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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