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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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왠지 생각에 잠겨보지도 않은 채 덜컥 이런 곳에서 산다는 것은, 인간

의 도리가 아니라는 말투였다. 듣는 사람에 따라, 또 새겨듣기에 따라

화가 나거나 서운하거나 서러움이 복받치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그런

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감정에 사로잡혔

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화가 나거나 서운하거나 서럽지 않고, 대신

 

 

(페이지 넘김)

 

 

외로웠다.

 

 

 

 

: 박민규,「갑을고시원 체류기」(『카스테라』문학동네2005, pp.281~282) 

 

 

 

 

나도 다시 고시원에 들어가게 되었던 작년 가을 그때, 나의 짐을 날라주던 친구들 앞에서 바로 저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던 그곳에서 앞으로 살아가야할 나를 위해 친구들은 진심으로 위로를 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의외로 담담했다.

10개월이 되어 간다. 고시원에 들어온지 말이다. 이젠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옆방에서는 밤마다 방안에서 영화를 보는 사내의 거친 숨소리가 나를 극도의 분노 상태로 몰아가고, 앞방에서는 헛기침 소리와 체중을 다해 내딛는 발자욱 소리로 나의 휴식을 방해한다. 벗어나고 싶지만, 내가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이 서울 하늘 아래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우울하게 한다. 여기보다 좀 더 시설이 좋은 고시원으로 옮겨볼까를 수도 없이 고민했다. 웃지 마시라, 그래봐야 고시원이니까. 갈 데가 없는 걸 어떡하란 말인가, 당신은 웃겠지만, 쓰는 나는 지금 울고 싶으니까. 공부를 위해서 잠시 집 놔두고 들어온 인간들이랑 정말 갈 데가 없어 이곳으로 들어온 인간의 차이가 뭔지 아는가? 잠깐 들어온 이들은 절대 이불을 빨지 않는다. 왜? 잠깐 덮고 지내다가 그냥 버리고 가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계속 살아야 이에게 그 이불은 영원히 내 이불이다. 그래서 자꾸 자꾸 빤다. 고시원에서 이불 빠는 사람은 오래 있을 사람이다. 제기랄! 그저께 나도 이불을 빨고 말았다. 그랬던 것이다.

 

 

박민규의 소설은 가볍다. 아니 발랄하다. 그의 서사세계 속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이 숨막히는 지구-세계로부터 가볍게 도약하여 우주로 날아가버릴 수 있다. 박민규의 소설을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그의 상상과 모험이 그 자체로서 신선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반복되면 이제 지겨워진다. 떠나는 건 좋다. 그렇게 오리배를 타고 기린이 되어 지구를 날아다니며 너구리나 대왕오징어와 노닐고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해 세상사는 법 아니 세상 비트는 법에 대해 한 수 배울 수 있다. 박민규는 정말 그렇게 무규칙 이종격투기하듯 세상의 논리와 공식을 뒤집고 무너뜨린다. 박민규의 소설이 갖는 힘이다. 너무나 엄숙하고 너무나 진지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는, 근데 그래봐야 결국 개복치일 수 밖에 없는 이 세상 안에서 그런 상상의 즐거움이라도 있어야 우리는 내일을 또 살아갈 것 아닌가? 박민규의 소설이 가장 힘을 발하는 그 지점에서 박민규의 소설은 가장 무기력해진다. 마치 계기판이 제 멋대로 작동하며 날개없이 추락하는 비행기마냥 박민규 소설은 가장 높이 올라간 지점에서 가장 멋지게 곤두박질친다. 현실의 바닥으로 말이다. 그나마 박민규의 소설 가운데 덜 환상적인 그래서 가장 리얼한 소설이 있다면 바로 저 위에 그리고 이 아래에 인용한「갑을고시원 체류기」일지 모른다. 너무 잔인하게 리얼해서 고시원의 일상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것도 지금 고시원 방에 틀어박혀 이 소설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리얼하다. 

 

 

 

어쨌거나

그 특이한 이름의 고시원이

아직도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 거대한 밀실 속에서

혹시 실패를 겪거나

쓰러지더라도

또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그 모두가 돌아와

잠들 수 있도록.

 

 

그것이 비록

웅크린 채라 하더라도 말이다.

 

 

: 박민규,「갑을고시원 체류기」(『카스테라』문학동네2005, p.304) 

 

 

 

 

하릴없이 컴터를 켜서 메신져에 로그인을 한다. 그리고 접속한 사람 아무나 붙잡고 취중진담하듯 아무 얘기나 지껄인다.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고시원에서는 정숙해야 하니까. 누구랑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고시원 관리하는 총무랑, 저 방값 좀 늦게 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세요 그럼. 죄송합니다. 자, 누구랑 무슨 얘기를 또 할까.

 

 

그 특이한 이름의 고시원이 아직도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나도 언젠가 말할 수 있을 날이 오겠지. 설마 여기서 평생 살지는 않겠지. 그래 나도 나의 방식으로 이 고시원같은 세상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다시 문을 열었을 때 그 안에서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카스테라를 맛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맛, 바로 그런 맛을 느끼며 이상하게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런 날이, 「신일고시원 체류기」쓸 수 있는 그런 날이 정말 올까? 고시원을 벗어나 살게 되는 그런 날이 정말 온다면, 난 체류기 따위는 쓰지 않으리라. 한국 땅에 고시원이란 고시원은 모두 사라져 버려 누군가가 그에 대한 증언을 해야만 상황이 아니라면 난 절대 체류기 따위를 쓰지 않겠다. 근데 고시원이 사라질까, 이름을 다른 것으로 바꾸었으면 바꾸었지 불 한 번 나면 모두 그 안에서 통구이되는 그런 곳이 계속 이 땅에는 존재하겠지. 시골에서 막 상경한 청년 구직자들, 신용불량자와 수배자, 도망자, 잠수탄 자, 막노동판 인부, 기러기아빠, 고시생, 나가요 언니들이 계속 존재하는 한, 그런 하류인생들도 웅크린 채로 잠잘 수 있는 그렇게 그들을 받아줄 수 있는 공간이 이 세상에 하나쯤은 함께 존재해야 할테니.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이니까.

 

 

근데 그런 일이 있기 전에 차라리 박민규에게 나도 당신의 그 냉장고에 넣어달라고 부탁을 하고 싶다. 내가 보기에는 나 역시 당신이 당신의 냉장고에 넣어버린 세상의 두 종류의 것들, 유일하여 가장 소중한 것이거나 존재 자체로 이 세상에 해악인 그런 것들 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으니까 말입니다,라고 하면서. 아무래도 난 후자겠지요,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에게 나를 카스테라로 만들어달라고 애원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그쪽이 내가 야쿠르트 아줌마로부터 야쿠르트를 공짜로 선물받는 것보다 혹은 외계인들로부터 KS라고 인정받는 것보다 좀 더 수월할 듯 싶다.

 

 

오늘도 나는 인간은 누구나 밀실에서 살아간다라는 말에 이하동문이라는 댓글을 반신반의하는 태도로 달면서 이 밀실같은 세상에서 기린이 되지는 말자고 다짐해본다. 차라리 남들의 입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살찌워주고 한 덩어리 똥으로 화할 카스테라가 될지언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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