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뚝 박완서 소설전집 7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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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엄마의 말뚝」의 제1편은 화자인 ‘나’가 엄마와 할머니 손에 이끌려 ‘농바위 고개’를 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엄마는 아버지가 어느 날 심한 복통으로 괴로워하다가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죽게 되자, 아버지를 죽게 한 병이 대처의 양의사에게만 보일 수 있었으면 생손앓이처럼 쉽게 째고 도려내고 꿰맬 수 있는 병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그때부터 대처(大處)로의 출분을 꿈꿨고, 아버지의 3년상도 받들지 않고 오빠를 서울로 데려간 데 이어 ‘나’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 고향이자 낙원과도 같았던 박적골을 떠나 대처인 송도(松都)로 향하는 길이다. 송도는 박적골과 서울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통과지점이라고 한다. 서울과 송도는 모두 대처이고, 이는 엄마의 짧은 말, “봐라, 송도다. 대처(大處)다.”로 압축되어 나타난다. 대처는 당시 일제에 의해 근대화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곳으로서, 박적골이라는 전근대적 공간에서 태어나 자라온 어린 ‘나’에게 이질적이다 못해 막연한 두려움마저 주게 된다. 바느질 솜씨 하나만 믿고 아들을 출세시키겠다고 집을 떠났던 엄마는 이번엔 '나'에게 '신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설득하며 '나'를 서울로 데려간다.

하지만 막상 엄마를 따라 ‘나’가 가게 된 곳은 사대문 밖의 현저동 산꼭대기의 단칸 셋방이었다. ‘나’는 엄마가 강요하는 도시적인 삶에 길들여진다. 군것질도 하고 땜장이 딸과 어울려 놀다가 의도치 않게 사고를 쳐서 안집 아저씨로부터 오빠가 봉변을 당하게도 만든다. 그 외에도 동네 이웃에 있는 감옥소 마당에서 놀다가 엄마에게 혼나는 등 엄마로부터 제한당하고 있는 ‘행동 반경’과 ‘교우 범위’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말썽을 부린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나’에게 상것들하고 놀지 말라는 꾸중을 한다.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는 서울서 '나'를 데리러 시골집에 내려왔을 때 보이던 그 ‘허영’과는 사뭇 다른 ‘긍지’로 비쳐진다. 바로 엄마가 배신한 온갖 과수가 있는 후원과, 토종국화 덤불이 있는 사랑 뜰과, 정결하고 간살 넓은 초가집과 선산과 전답과 그 모든 것을 총괄하시는 비록 동풍은 했으되 구학문이 높으신 시아버지가 뒤에 있다고 믿는 마음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던 중 엄마는 '나'를 사대문 안에 있는 학교로 입학을 시키기 위해 먼 친척 댁으로 주소까지 옮기면서 ‘나’를 신여성으로 만들고자 하는 자신의 계획을 본격적으로 실행해나간다. ‘나’는 엄마가 바라는 신여성이 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고 또 앞으로도 알게 될 것 같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그러한 엄마의 극성스러운 행동 속에서 급체(急滯)인지 맹장염인지 걸린 남편을 굿을 해서 고치려다 잃고 층층시하와 봉제사의 의무와 안질에 거머리가 약인 무지를 떨치고 도시로 나온 엄마의 자식과 자유스러움에 대한 피 맺힌 원한과 갈망은 벅차고 뭉클한 느낌이 되어 전해 옴을 깨닫게 된다. 이후 셋방살이의 수모에서 벗어나려고 절치부심하던 엄마는 집값이 싼 이 동네에서 집을 살 엄두를 내기 시작했다. 물론 결국 금융조합에서 융자를 받아 인왕산 마루턱에 있는 집을 샀다. 이사 간 날, 첫날밤 세 식구가 나란히 누운 자리에서 엄마는 감개무량한 듯이 말했다. “기어코 서울에도 말뚝을 박았구나. 비록 문밖이긴 하지만……” 그 뒤, 우리는 해방을 맞고 문안 평지에 집을 장만했다. 엄마는 “그때에 대면 지금 부자가 됐지” 하고 곧잘 그때와 비교하곤 했는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그 최초의 ‘말뚝’에 여전히 매여 있는 셈이었다. 어머니가 세운 신여성의 기준인 “너무 뒤떨어진 겉모습과 터무니없는 높은 이상과의 갈등, 영원한 문밖의식”, 이런 것들로 해서 아직도 '나'의 의식은 말뚝을 가지고 있다. 제아무리 멀리 벗어난 것 같아도 말뚝이 풀어준 새끼줄 길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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