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수필 - 이문구 문학선 나남문학선 1
이문구 지음 / 나남출판 / 1999년 10월
평점 :
품절


‘근대화’에 대한 냉소적 감성 비판

-이문구의『관촌수필』읽기



지금은 종영되었지만 한때 내가 즐겨보던 TV 프로그램 중에 <KBS 인물현대사>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작년 1월쯤에 소설가 이문구 편이 방송되어 내가 그것을 시청할 때만해도 나는 솔직히 그런 소설가가 있었는지도 전혀 몰랐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얼핏 들어 봤을 런지도. 물론 내 기억에서는 여전히 가물가물하지만 말이다.


이번에『관촌수필』을 읽고 서평을 쓰면서 다시 그 방송을 찾아서 보았다. 정확한 제목은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해방 - 소설가 이문구>였다. 다큐멘터리에서 이문구는 대충 이렇게 소개된다. “분단의 비극 속에 남겨진 한 소년. 소년은 살아남기 위해 문학을 택하고 문학을 위해 시대에 저항한다.……이념과 계파를 넘은 문학동네의 진정한 어른. 한국 현대사의 비극 한가운데를 살아왔던 이문구. 김동리의 수제자이자 최측근 비서였다는 사실에서 엿보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삶의 보수성과 동료문인들과 함께 한 군부독재정권에 대한 격렬한 저항적 실천의 이력 중에서 그의 정체성은 정확히 무엇인가? 그에게 중요한 것은 반공과 용공, 보수와 진보 같은 이념적 선택이 아니었다. 이념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한데 어울려 사람답게 사는 세상. 그것이 바로 그가 일구려고 했던 세상이다. 분단과 이념 대립의 한 가운데를 살다 간 이문구. 그는 시대를 포용으로 이끈 우리 동네의 진정한 촌장이었다.”1)


소설도 소설이었지만 먼저 개인적으로 추적해본 이문구라고 하는 한 작가의 삶의 이력은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관촌수필』맨 앞에 나오는「일락서산-관촌수필1」에서도 잘 소개되어있듯이 그는 몰락한 충남지방 양반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할아버지로부터 엄격한 유교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6ㆍ25 전쟁 시기에는 남로당 간부였던 부친과 두 형이 포승에 묶여 산채로 고향 앞 바다에 수장되는 모습을 직접 목도하는 비극을 경험했다. 연좌제의 서슬이 퍼렇던 시대에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빨갱이 자식인 자신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심한 심리적 압박감을 늘 겪었다. 그러다 결국 문학만이 살 수 있는 길이라 믿고 그 길을 택했다. 자신의 보호막으로 문단의 대표적인 보수 우익에 친정권 인사인 김동리를 택해 그에게서 일찌감치 높은 인정을 받고 전도유망한 작가의 대열에 섰지만 이내 유신체제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참여문학의 흐름에 깊숙이 자신을 연관시켜 버린다. 그 후 그는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면서 여러 계열의 문학단체를 넘나들며 문단통합적 활동을 주도했다. 작품 창작에 있어서도 그만의 독특한 토착어 지향의 문체를 구사한 작품들을 통해 정말 (김동리의 예언대로) “한국 문단에서 가장 이채로운 스타일리스트”가 되었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이문구에게는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보수적인 가치관을 옹호하고 지향하는 성향과 (평생 거부 하려고 발버둥 쳐봤지만 어쩔 수 없었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불의에 저항하는 진보적인 정치적 성향이 평생 분열적으로 공존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분열을 억지로 하나로 통일시키려 노력하지 않고 문학을 통해 양자를 지양(止揚)하고자 했기 때문에 그가 이념과 계파를 넘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어떻게든 추구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첫 번째 이야기인「일락서산-관촌수필1」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하여 아버지에 대한 회고로 끝을 맺고 있으며 뒤에 이어지는 다른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 실마리가 되고 있다. 뒤에 나오는 이야기들의 개별적인 주인공들이 거의 한 번 씩은 이 첫 번째 이야기에서 다 등장하고 있지 않나 싶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읽는 내내 내가 지금 소설을 읽는 것인지 작가의 자서전을 읽고 있는 건이지 순간 혼동을 느낄 만큼 사실적인 묘사를 하고 있었다.


「화무십일-관촌수필2」는 윤영감과 그의 일가에 대한 작가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역시 소설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읽는 내내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이 작가 개인의 인생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들임에 틀림이 없다고 단정 짓곤 했다.) 며느리를 찾아 아니 잃어버린 손자를 찾아 소반장수가 되어 전국을 떠도는 윤영감의 모습은 근대화가 폭압적으로 추진되어 온 우리 역사의 어느 한 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가족 해체의 비극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으리라.


「행운유수-관촌수필3」가 이 연작소설집에서 내게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아마「관촌수필」에서 주인공이자 화자인 작가 자신을 제외하고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인물이 옹점이라고 하는 이 여인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네 집의 식모나 다름없는 종년이었지만 사실상 주인공에게는 친누나 같으면서 때로는 어머니를 대신하는 유모 같은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 그녀. 결혼 생활에 실패하고 약장수 틈에 끼어 노래 부르는 신세가 된 그녀를 바라보던 화자의 감정은 왜 그토록 충격적이었을까. 실망감이었을까 아니면 죄의식이었을까.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화자는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 자리에서 그녀로부터 도망을 간 것인가 아니면 노래 부르는 옹점이가 부끄럽고 실망스러워 그 자리를 도망친 것일까. 그 후 그는 그녀를 다시 만났을까. 많은 의문들이 남는다.


「녹수청산-관촌수필4」는 대복이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마지막 반전이 놀라운데, 순심이와 대복이의 사랑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는 것이 아쉽다. 작가는 마지막 문장에서 딱 한 단어, ‘입덧’이라는 단어를 불쑥 언급하며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 둘의 관계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짐짓 모른 체하며 다 들려준다. 대복이가 출정하던 날 변소 속에서 시선으로 그를 배웅하던 그녀. 이 소설집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비극적이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바로 이들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공산토월-관촌수필5」는 화자의 부친을 열심히 따르며 그로인해 함께 숱한 고초를 치룬바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동안 화자의 집안을 돌보아주었던 석공의 이야기이다. 석공이라고 하는 한 인물의 개인사가 그대로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모습의 전형이기도 하며 석공이 보여주었던 상부상조의 삶의 모습은 작가가 그리워하는 바람직한 사회상이기도 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석공의 임종 장면은 죽음 앞에서 가장다운 초연함을 보이고자 하면서도 한 인간으로서 살고자 하는 본능적 욕망이 교차하고 있는 어쩌면 우리들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는 그런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문구가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 석공에 대한 기억에 더 많은 소설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문구 개인이 당했던 그 정신적 외상의 근원이 과연 누구였는가를 짐작하게 해주는 실마리일지도 모른다. 이문구의 살부(殺父)의식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관산추정-관촌수필6」은 화자의 죽마고우라고 할 수 있는 복산이의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들려주고 있다. 아버지 유천만의 성품을 그대로 닮아 “내 일 제쳐놓구 넘의 일부터 봐주는 성질”을 갖고 현재도 고향에서 동네 유지 노릇하고 있는 유복산의 모습에서 농촌이 현실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도 간접적으로 시사된다. 관광지로 개발되어 발전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로인해 도시의 퇴폐문화가 그대로 유입되어 인간 공해를 겪고 있는 농촌 현실에 대한 간접적 폭로의 의도가 작품 속에 깔려 있는 듯하다.


세태풍자극을 연상시키는 그래서 다 읽고 나면 씁쓸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여요주서-관촌수필7」은 필경 박정희나 전두화이 집권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것일 게다. 마지막에 법정에서 “지은 죄 없이 고개 조이고 살아온 사람이 오랜만에 켜보는 기지개와 같은 몸짓으로 믿어야 될 성싶은” 그런 용기로 용모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법이 정작 국민들의 실질적인 이익과는 무관한 국가 만들기와 국민 훈육을 위해 동물과 자연을 먼저 보호한다고 나서고 있는 서글픈 현실을 비난한다. 그 시대 무자비한 공권력의 횡포에 시달리며 불행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던 한국 민중들의 역사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월곡후야-관촌수필8」은 이제 장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다시 고향을 찾은 화자가 경험한 현재 고향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골에 요양 차 내려온 중년 남성이 자기 딸의 친구를 겁탈하고 그 일로 인해 마을 청년들이 그를 징계하고 축출한다는 이야기인데 마지막에 보면 그렇게 정의감이 투철한 청년들 중 한 명-화자의 친구 동생인 수찬이-이 바로 그와 상황은 다르지만 어쨌든 떳떳하지 못한 이유로 고향을 몰래 빠져나가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관촌수필』은 전체적으로 한국의 민중들 특히 농민들이 경험했던 해방정국과 6ㆍ25전쟁 그리고 개발독재 근대화의 야만성을 곳곳에서 폭로하고 있는 소설이다. 그와 동시에 그러한 근대화 과정에서 농촌이 잃어버린 그 어떤 가치와 정서들에 대한 작가 자신의 회한을작중인물의 대사나 내적 화자의 서술을 통해 작품 곳곳에서 절절히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나아가 작가가 이 소설집을 통해 보여주는 도시화ㆍ산업화에 대한 냉소적 비판은 “한국사회의 근대화가 일차적으로는 고향의 상실이며, 사람들 개개인의 실존에 있어서 의미로 충만한 원초적 세계의 소멸이며 나아가서는 인간사회를 따뜻하고 인간적인 공동체이게 하는 경제적ㆍ도덕적 위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2)고 볼 수도 있을 것이며, 한편으로는 그러한 근대화ㆍ산업화 속에서도 혜택과 피해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담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권력에 의한 차별적인 분배가 발생하고 있음을 명확히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소위 이 근대화 프로젝트의 열매를 맺기 위해 죽어나고 있는 사람들과 그 열매의 달콤한 맛을 즐기는 사람들은 결코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 권력이 있는 곳과 없는 곳에 비치고 있는 근대화의 명암도 각각 다르다는 이 아이러니를 이문구는 너무나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입장에서 비판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문학을 통해 근대화 자체에 대한 냉소를 보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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