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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신체에 각인된 습속을 통해 바라본 한국인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장담컨대, 적어도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대학에 들어간 세대 가운데 인터넷에 글줄 꽤나 쓴다는 젊은이들치고 자신 있게 진중권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 말할 수 있는 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1999년 3월 진중권이 계간지 <당대비평> 봄호에 기고한 장장 5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지배의 언어, 탈주의 언어”라는 글이 있다. 진중권 본인의 대학원 시절 문제의식에 대한 언어철학적 자기해답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글에서 NL(민족해방)진영의 인식은 ‘맹목적 추종’으로, 이진경 고길섶 등으로 대표되던 <문화과학> 진영의 소위 ‘탈근대-맑스주의’는 ‘맹목적 거부’라는 이름으로 거세게 질타 당한다. NL 진영의 언어를 전대협의『불패의 신화』라는 책을 통해 ‘해체-비평’하면서 NL이 ‘시대의 변화에 초연한 영원한 언어’를 쓴다며 맹공을 퍼붓는다. 과학적 논리가 아닌 눈물, 감동, 품성 등 봉건적 언어를 통해 ‘불패의 신화’를 만들고, ‘남한의 식민지성’ 등 비과학적 현상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 PD 진영의 언어는 이진경의 글을 통해서 해체-비평 한다. 그에 따르면 이진경은 근대 비판의 형식으로 과거의 반성을 대충 얼버무리고 있으며 유토피아적 열망에서 디스토피아의 절망으로 이행함으로써 구체적ㆍ현실적 희망의 모색을 포기하고 있으며 가장 큰 문제는 아직도 프랑스산 원전을 숭배하는 낡은 ‘습속’에서 ‘탈주’하기를 거부하는 수행적 모순을 범하고 있다는 것. 진보진영에서는 그간 비판이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던 전대협-한총련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모자라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이진경을 그토록 가혹하게 비판한 덕분에 그는 한때 좌파 사회에서 소외-고립되기도 하였다.
물론 그 외에도 그가 벌인 싸움은 한 두 개가 아닌지라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내 인식의 기초이고, 벤야민은 내 영감의 원천”이라고 자주 말하는 진중권은 그간 파시스트 박정희의 망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사회의 정치적 국가주의와 경제적 자유지상주의와 문화적 보수주의에 대한 비판적 통찰력을 선보이는 다양한 스타일의 수많은 글들을 써왔다. 특히 지난 1∼2년간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숱한 논란의 한가운데서 누구보다 많은 안티 세력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 진행하던 프로그램을 그만두면서 공적(정치적) 글쓰기를 잠시 중단하겠다고 밝힌 그가 최근 인문학자, 문화평론가로 돌아와 한국인을 조망한 책『호모 코레아니쿠스』를 펴냈다.
“한국 사람들의 독특성을 추적한 책입니다. 정체성이나 국민성은 매우 이념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하비투스’(habitus)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살펴봤습니다. 우리말로 ‘습속’이라 번역되는 하비투스는 특정 사회 성원들의 사고방식, 감정구조, 행동양식의 총합이라 할 수 있어요. 한국인을 다룬 기존의 책들이 자화자찬이나 비하가 많은데, 지금 우리에겐 무엇보다 냉정한 자기인식이 필요합니다.” (2007년 1월 19일 국민일보 인터뷰)
진중권이 명명한 호모 코레아니쿠스(homo coreanicus)는 근대화 이후 급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들의 자화상을 일컫는다. 서구에선 전근대와 근대, 그리고 탈근대 사이에 비교적 큰 시간차가 있지만 유례없이 압축ㆍ성장해온 한국에선 이 세 가지 시간대가 공존한다. 한국인의 몸 역시 세 가지 층위가 동시대에 존재한다는 것이 진중권의 지적이다.
이에 따라 과시와 체면, 수직적 예법과 가부장적 생활을 여전히 받아들이면서도 인터넷 상에서 미디어의 주체가 되어 여론을 주도하는 기이한 현상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책은 한국의 근대화를 다룬 1부, 근대화 속에 내재된 전근대성을 해부하는 2부, 전근대성이라는 모순적인 토대를 바탕으로 생겨난 탈근대성을 분석하는 3부로 크게 나뉜다. 저자는 ‘박정희’ ‘국가대표’ ‘황우석’ ‘양반’ ‘명품’ ‘카리스마’ ‘된장녀’ ‘회사인’ ‘군대’ ‘놀이’ ‘짝퉁’ ‘디지털’ ‘문맹’ 등의 요소를 통해 한국인의 이미지를 냉정하게 그려낸다. 그는 이러한 한국사회의 분석을 통해 마지막으로 “너 자신을 디자인하라”라고 주문한다. 즉 압축된 한국의 급속한 근대화를 통해 미처 따라가지 못한 정신과 의식의 재배치 또는 디자인을 하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니체 식의 “너 자신을 발명하라”로 요약되는 존재미학적 삶의 방식은 이주노동자나 비정규직으로 표상되는 권력의 새로운 생체공학에 여지없이 포획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진중권의 이러한 생각의 배후에는 미셸 푸코의 자기 통치의 개념이 존재한다. 푸코가 말년에 고민했던 것 즉 지배적인 관계에 의해 포섭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지배관계를 구성하지도 않는 일종의 생명윤리의 한 방식으로서 자기의 테크놀로지. 이 책을 읽으면서, 진중권과 더불어 그리고 푸코와 더불어 신체를 기계화하는 고통스러운 근대의 ‘군대화’적 습속을 해체하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미학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