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내 장은 무척이나 예민하다.
매 끼니 후 30분 안에 반드시 화장실에 가야하는데-물론 큰일 얘기다-
아침에는 장이 더 민감해져 과자라도 한쪽 먹으면 출근길 내내 화장실에 가고 싶어 몸살을 앓는다.
내가 버스보다 기차를 선호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텐데
어찌되었건 남들은 하루 한번씩 가는 화장실을 서너번씩 가고 있다보면
내 삶은 도대체 왜 이리 힘든가, 하는 생각에 슬퍼지기도 한다.
내가 가끔 테니스를 치러 가는 곳은 헌인릉이라고,
누구 무덤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화원이 모인 곳에 위치한 4면짜리 코트인데,
거기 화장실이 정말 끝내준다.
남녀가 같이 써야 하고, 그나마도 수세식이 아니라 냄새가 끝내준다
언제 한번 소변을 보러 갔다가 그냥 나온 적이 있는데-위에서도 말했지만 난 좀 민감하다-
같이 치는 언니들 역시 화장실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날 이후 난 웬만하면 참고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루종일 테니스를 치는지라 사람들은 술과 음식을 중간중간 먹는데
술만 보면 땡기는 나 역시 부지런히 먹고 마신다.
정말 대단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번도 화장실에 간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대회가 열렸던 지난 금요일,
난 막걸리 몇잔에 맥주를 꽤 많이 마셨는데
그 와중에 먹은 안주가 마른오징어와 웨하스였고
점심으로 먹은 건 공기밥에 훈제오리(회원 중 하나가 오리공장을 한다)였다.
평소 같으면 화장실에 몇번은 가고 남았을 양이지만
그날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 난 화장실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심지어 소변도 안봤다.
대회가 끝나고 그럴듯한 맥주집에 갔을 때 비로소 화장실에 갔는데
이 얘기는 내 정신력이 장의 민감성을 조절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옛 선인들은 그래서 이렇게 말했으리라.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화장실이 후진 곳에 가면 난 정신을 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