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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바지 ㅣ 오세곤 희곡번역 시리즈 3
장 아누이 지음, 오세곤 옮김 / 예니 / 1999년 5월
평점 :
절판
스스로를 우익적 무정부주의자로 여긴 아누이의 1978년,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조롱투의 희극 극본이다. 그리스의 아리스토파네스 희극과 유사성은 보수적 관점 뿐 아니라 이야기의 비현실성과 그 안에서의 나름 흐름을 엮어내는 솜씨이다. 반바지는 남성중심적 사회에서의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을 상징한다. 아누이가 대변하는 것은 이런 억압계급이라고 불리워지는 남성, 자본가, 보수언론이다. 그는 여성이 정권을 장악한 미래를 보여주며 여성의 해방이란 것이 인간의 본성과 자유, 남녀간의 사랑, 아버지와 아들, 부부 사이의 관계를 파괴하고 있다고 고발한다.
약자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인생은 나름 각 사람의 살 의미가 있다는 안정지향적 관점을 담은 우스갯소리에 가까운 작품이다. 연극이라는 것이 관객들의 마음 속에 공감을 주는 억압된 의견의 한 통로라면 분명 여성운동이 거세게 일던 당시의 한 배출되지 못한 남성의 심리적 위축을 표현하고 있다.
30년전의 프랑스 연극이 놀랍게도 오늘 우리 보수와 진보라는 싸움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인간해방과 약자의 보호는 분명 억압자의 제어와 이익의 분배를 요구한다는 면에서 명분을 갖는다. 하지만 그 명분이 드러나 현실이 된 순간, 인간의 관계를 위협하고 이론 속에서 실속은 없어지고 천박하고 서로를 인간이하로 취급하는 진흙탕으로 들어가고 만다. 이건 아니었는데 왜 진보의 이론과 이상주의의 꿈은 항상 우리를 배반하고, 보수의 목소리는 정당하고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가?
[오늘의 무능한 지도자는 어제의 불평 많은 반항자였음]을 이제 우리는 이 책이 아닌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도 알고 있다. 불만 속에서 사회를 질타하던 우리들이 도리어 정권으로 근사한 일은 제대로 못하고, 또 다른 불만을 생산해 내고만 있다. 이제 다시 서로를 비난하며, 지리한 진보-보수 이야기로 엮기보다 [내일의 유능한 지도자는 오늘 말없이 자신의 일을 해내는 사람]임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그리 아깝지 않은 수업료를 낸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