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앙드레 말로 지음, 김붕구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은 1927년의 중국을 무대로 한다. 장제스의 군대가 들어오기 전날인 1927 321일부터 무장해제를 거부하는 공산당원들을 학살한 412일까지의 상하이가 배경이다. 중국은 1차 대전을 계기로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감이 형성되었으며, 그 후 신문화 운동으로 베이징대를 중심으로한 사회주의 사상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1921년 좌파는 천두슈를 서기장으로 하는 중국공산당을 창립하였으나, 쑨원의 중화혁명당에서 중국국민당으로 개편한 우파 진영이 주류인 상황에서 좌파 진영은 스스로는 정치적 영향력을 가질 수 없었다. 결국 공산당원들이 개인자격으로 국민당에 가입함으로  국민당과의 연합(국공합작)을 통해 중국 공산당은 취약한 조직기반의 강화를 모색하였다.  4 12일은 이렇게 유지되어오던 1차 국공합작이 장제스의 공산당에 대한 공격과 난징정부 수립으로 결렬된 날이다.

 

이런 격동의 와중에서 말로는 이 시대를 사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대가 중국임에도 특이하게 주인공들은 대부분 외국인이나 혼혈들이다. 그들을 통해 Malraux는 극단적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으로서 서있으려는 주변인들의 몸부림을 보여준다. 그들은 결국 러시아에서, 일본에서 밀려들어온 서양적 사고의 대리인임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서양이 4억 중국인민의 운명을, 어쩌면 서양자신의 운명을 지켜보고 있는 이 도시에서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적 사고와 공산주의의 격돌은 결국 서양문명의 변방인 이곳에서 중국인의 목숨을 처참히 빼앗아간다. 이런 잔혹극의 이유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두 가지 상이한 주장의 충돌, 비인간화의 저지과 복수라는 명분, 피흘림의 반복과 위선에 대한 미움으로 인한 격화이다. 18,19세기 서양철학이 만든 갈등은 도리어 동양의 이곳 중국과 그리고 바로 1950년의 우리에게 더 지독한 고통으로 남아있는지 모른다. 동양인인 우리가 결국 서양사상에서 우리의 인생의 의미를 찾아왔고 그 대리전을 위해 목숨을 바쳤왔다는 것인가?

 

이런 사상의 표현으로서의 주인공들. 테러를 통해 인생의 구원을 찾으려는 첸첸은 삶의 무의미를 도덕적 이상주의의 명분아래 폭력으로 승화하는 정신적 일탈과 같은 테러에 의한 구원을 꿈꾼다. 그들 시대의 일탈. 우리시대의 일상인 테러.[자기인생에 어떤 의미를 주기 위해서 그들은 죽어가는 것이다.죽음을 각오하고라도 받아들일 만한 인생이 아니라면 대체 그런 인생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첸이 바라보는 자본주의 세계는 유일한 인간의 존엄성인 죽음마저도 인간에게서 박탈해버린 곳이다. 죽을 수가 없는 인간 조건. 테러리스트에게 인생은 살인의 중독이며 죽음의 추구. 그 중독은 의미에 대한 강렬한 추구와 경험이 만들어내고 있다.

 

또 다른 인물 기요. 그는 조직 행동을 통한 보편적 가치의 역사적 실현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지조르가 프랑스 자본가 페랄과의 대면에서 말하듯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참을 수 있기란 쉽지 않을 일이다. 이해타산을 초월하여 그것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모든 사상은 인간 조건의 토대를 존엄성 위에 세움으로써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욕구를 나타낸다. 인간조건에 존엄성을 주는 것으로, 이를테면 예전에는 기독교가, 근대시민에게는 국민이란 개념이 그리고 노동자에겐 코뮤니즘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늘 중독되어 있어야 한다.첸과 살인, 클라피크와 괴벽,카토프와 혁명, 메이와 사랑, 지조르 자신과 아편, 기요만이 어딘가 중독되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중독없는 기요의 조직 세계는 해답은 가지고 있는가? [행동만이 인생을 정당화하고, 백인에게 만족을 줄 수있는 것도 결국 행동뿐이다. 본질적인 것을 행동으로 끌어넣으면 삶을 보다 강렬히 느낄 수 있다. 자본주의는 권력에의 의지라기보다는 오히려 조직에의 의지이다.권력의지라는 것도 결국 자기자신을 소유하려는 의지인 것이다.] 조직의 의지를 파괴하려는 또 다른 조직 속의 인간도 결국 자기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 안에 갇히고 만다. 인간의 조건을 벗어나지 못하고 서로 다른 조직 속의 서로를 해치는 행동의 연속들.[모든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는 자기가 괴물이며, 저마다 자기 가슴 속으로 파고 들 때는 헤아릴 수 없는 괴물인 것이다. 그 무엇으로도 자기자신에게서 해방될 수 없는 미치광이 같은 인류.]

 

그의 아버지 지조르, 아편을 통해 찾으려는 해방, 덧없이 죽은 자기희망의 자취인 아들 기요을 통해, 사상의 힘도 죽음이 한 인간에게 일으키는 변화에 대해서는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생각. 그에게 더 이상 현실이란 없는 것이다. 노년이 허무한 것은 인생이란 원래 허무한 때문이라는 고백. 후일 Malraux가 도가적 현실도피의 인생관을 가졌음을 보면 지조르는 사실 작가자신의 투영이기도 하다. 결국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것이 인생의 결론인가[인간답다는 것은 죽음과 의미 사이의 고뇌이다. 한 인간을 완성하는 데는 아홉달이 아니라 60년의 긴 세월이 필요한거다. 그런데, 그 인간이 다 만들어졌을때, 정말로 그가 한 인간이 되었을 때,그 때는 이미 죽는 것 밖에 남지 않는거다.]

 

인간의 조건은 바로 의미를 찾기 위한 간절함이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고 인생을 던지고 싶은 열망이다. For many are invited, but few are chosen. 그것이 일탈이든, 사상이든, 의미의 포기이든 인간은 자기를 넘어서는 가치를 위해 살기를 원하는 존재이다. 이것은 때로 가장 처절한 시간 속에서 더 잘 드러난다. 간절함, 처절함,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함이 드물어지는 풍요의 시절에는 오히려 인간은 인간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한지도 모른다. 끝으로 이 책의 미덕으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책의 말미에 덧붙인 김붕구 교수의 [앙드레 말로의 연구]이다. 어떤 글보다 전반적인 말로의 기조와 [인간의 조건]과 다른 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말로의 인물의 가공과 주제의 진행을 잘 보여준 뛰어난 작가해설이었다. 말로의 이해와 이 책의 깊은 공감을 위해 꼭 같이 읽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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