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로 버지니아 울프 전집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머니를 잃는 것이 아이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 어머니와 떨어져 살던 12살 때 나의 사진은 초점잃은 얼굴의 깊은 박탈감을 아직도 잘 보여준다. 단지 잠깐 떨어진 것도 그러한데 사별은 얼마나 큰 아픔으로 아이에게 남는가? 이 소설은 버지니아 자신의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프루스트, 조이스, 포크너와 맥이 닿는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한 고백적 성찰]이다. 작가자신도 밝히듯 이 소설은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고스란히 자신의 아버지를 담아낸 소설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죽고 억압적 아버지 아래서 자라야 했던 그녀가 느낀 아버지에 대한 애증의 양가감정. 그녀에게 아버지란 단지 한 인간으로 그 자신의 완성을 꿈꾸던 학자였다. 한 인간으로 충실히 산다는 것과 부모로서 충실하다는 것은 다르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인생을 걸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들 삶의 가장 단단하고 따뜻한 기반 없이 자라야만 했다.
 
아버지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그도 삶의 기반인 아내를 잃고 무의미한 삶을 살아간다. 인생은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발견할 때까지. 멀리 보이는 등대처럼 무언가 대단한듯 했던 학문과 예술, 자연과 행복은 결국 초라한 삶살이에 지나지 않았다. 프루스트가 말했듯 멀리서 보면 대단해 보이던 사람도 막상 가까이에서 겪으면 일상의 사람이 되고말듯, 의미라는 것, 이상이라는, 예술의 완성에 대한 열망은 찬란한 빛으로 번쩍였으나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말한다. [우리는 각자 홀로 죽어가노라] 의미란 없고 우리는 혼자일 뿐이고 죽어갈 것이다. [우리는 질풍을 무릅쓰고 달린다. 우리는 침몰할 것이 분명하다] 진력하나 의미란 없고 끝은 소멸이다.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미움도 분노도 이상도 애정도… [램지씨는 상륙했다. 이제는 끝났다…꾸러미는 등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줄 것이야.] 아버지와 두 자녀가 상륙한 등대에는 허름한고 누추한 등대와 등대지기의 초라한 모습이 있을 뿐이다.
 
버지니아는 인생이란 것, 예술이란 것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는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좀더 거센 파도 밑에서 그보다 더 깊은 심연에 가라앉노라] 호주머니에 돌을 채우고 강에 빠져죽은 그녀의 마지막처럼, 오필리아에게서 내려오는 영국인의 水葬에의 동경만이 그녀에게 남았다. [비가 올거야 너희는 등대에 갈 수 없다.] 반대를 무릅쓰고 그것을 동경할만한 가치가 과연 우리가 우발적으로 의미를 두는 그것들에 있기나한건가. 왜 평생 그녀는 고통스러워했고, 결국 지쳐 어린시절 충격에서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정신질환의 굴레를 메고 우울한 삶을 마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P.S 이 독자도 한정되어있는, 난해하기 그지 없는 텍스트를 번역하기로 마음먹은 역자와 출판사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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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유 2006-04-26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시절엔가 에리히 아우얼바흐가 쓴 [미메시스]를 읽다가 울프의 [등대로]를 처음 만났었어요. 아우얼바흐는 사건(과 현재)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의식의 흐름을 좇는 울프의 서술 기법을 꼼꼼히 분석해냈는데, 그나 울프나 당시의 제게는 놀라울 수밖에 없었지요. 그 충격은 여전합니다. 소설과 서술의 세계가 4차원으로 직접 육박해들어가던 것...울프에 대한 리뷰가 넘 반가워 몇 자 붙입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