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코.초상화 범우 사르비아 총서 603
고골리 지음, 김영국 옮김 / 범우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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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외투]
 
고골리의 [외투]는 19세기 중엽 러시아가 배경이다. 말단 관리인 아카키는 어느날 어렵사리 마련한 새 외투 한벌로 대단한 사람이 된 기분에 들떴었다. 주위의 부러워하는 눈빛과 다시 봐야겠다는 반응에 행복했던 그는 길에서 강도를 만나 외투를 빼앗기고 좌절한다. 되찾고자 백방 노력하다 되찾아줄 힘이 있는 사람을 만나 부탁해보나 결국 거절 당한뒤 상심하여 죽어버리고 만다. 인생의 의미를 같이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 19세기, 산업혁명후 인간의 삶이 소유물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물질이 인간에게 끼치는 놀랄만한 혜택에 기뻐하던 사람들은 점차 물질 자체에 휩쓸리는 존재가 되어간다.  이것은 읽는 사람에게는 우스꽝스런 놀음이고 재미있는 이야기꺼리지만, 이것이 인간이 당한 현실인걸. 이제 옷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허름한 옷의 고객은, 혹은 동료들은 차별 받는 세상이 되었다. 사회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우대하도록 이미 포맷되어져 있다.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람의 옷, 머리 스타일과 장신구에 주목하도록 짜여진 틀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그의 시계는, 핸드폰은, 차는 무엇인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 자신한다. 우리는 사람 그 자신에게는 점점 관심이 없어진다. 인간은 어디에 있을까? 고귀한 성품, 뜨거운 사랑, 부드러운 마음이 들어있는 인간. 나도 너도 서로에게 인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존경받기 위해 갖추어져야 할 것은  성품이 아니라 명품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행복의 기준도 물론 [소유]이다. 더욱이 그런 소유를 사람들이 부러워해 주어야 인간은 비로소 행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이면 외투는 이미 아카키를 집어삼킬 지경에 이른 셈이다.
 
[외투]는 인간의 원래 의미, 행위의 원래 의미를 잃게 만든다. 인간의 희망은 무엇을 갖게 되느냐에 있고, 즐거움은 얼마나 비싼 미술, 음악, 요리를 소비하느냐에 있다. 학문도 상품가치로서 평가된다.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지식인가. 얼마에 팔 수 있는 특허인가. 21세기에 무한히 많은 돈을 벌어들일거라 큰 소리치는 학문만이 정부의 지원과 세인의 관심과 자기 명예를 벌어들인다. 몇년을 묵혀두면 얼마가 되는 그림, 악기, 와인인가. 인간은 왜 사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으면서도, 자기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는데 저항하지 않는다. 돈으로 환산된다면 그 가치는 인간의 가치는 아니다. 이런 짓거리가 우스꽝스럽게 비쳤던 고골리의 19세기는 차라리 얼마나 행복한가.
 
아카키는 외투만큼의 가치를 가진 존재로 그려진다. 그가 진정 외투와 등가치인 것은 그가 죽어서도 혼백으로도 외투를 찾아다닐 때 더 극적으로 나타난다. 나의 등가치는 무엇인가? 내가 죽어서도 찾아다닐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돈 혹은 명예인가? 자긍심 혹은 칭찬인가?  내안의 성품 혹은 깨끗하여진 영혼인가? 아니면 아직 다 닮을 수는 없었지만 언젠가 닮고 싶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형상인가? 
 
P.S 주인공의 이름 아카키는 러시아인이 쓰는 이름이 아니다. 이 작품 속에만 등장하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있는 복선이다. 그리스 어원은 [A-Kaki] 흠과 티가 없는 인간 이다, 그리고 전체 이름,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아카키의 아들, 아카키]이다. 아버지의 아들이란 의미만을 같는 이름이다. 흠과 티가 없는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아들. 고골리의 종교적 배경에서 이것은 곧 인간의 본래 형상, 아버지의 형상을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 그것은 곧 인간이 원래 기원한 신의 형상을 뜻한다. 그가 잃은 것은 인간성이고 그 인간성은 신성, 곧 하늘의 형상이다. 어쩌면 아카키는 마땅히 되어야 할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잃어버린, 신의 흠없는 모습을 닮아야할 자신의 목적도 상실한 현대인의 코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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