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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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이해에 있어 이 두 책은 큰 의의를 지닌다고 한다. 서사시적이며 비유적인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이 책들에서야 비로소 그의 사상의 맥락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의 전집의 일부로 이런 번역본이 국내에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큰 혜택인 셈이다. 더욱이 [도덕의 계보]는 [선악의 저편]의 속편으로 그 이해를 돕기 위해 써진 책이니만큼 [도덕의 계보]의 독서는 니체 이해에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또 품절이다...흑

[도덕의 계보]

니체는 힘의 원리에 의해 세상을 본다. [좋다]라는 정의는 힘있는 자의 자기정체이고, [나쁘다]가 약한자들에 대한 강자의 정의라면, [악하다]는 약자의 강자에 대한 원한과 복수심의 투영이고, [선하다]는 약자의 자기위로와 궤변적 인간이해라는 것이다. 니체는 현대사회의 모든 병리가 이 선악에 의한 인간사회 체제에 있다고 본다. 약자들이 개발해낸 궤변의 그물에 강자들은 얽매여, 병들어 죽어가는 사자와 같은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모든 선악을 논하는 도덕이라는 것, 어떤 의미가 인간에 있다는 주장,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모두 강자를 속여 무장해제시켜왔다는 것이다.

이런 선악의 이해는 결국 니체로 진리자체를 문제 삼게까지 한다. 플라톤을 그리스도교를 문제삼는다. 진리의 원형, 도달점, 어떤 목적지가 있으리라는 인간역사의 오랜 개념 자체를 문제삼는다. 인간은 인간의 본능에 쓰여진 인간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적인 혹은 기독교적인 인간의 이해와 사회의 체계가 인간이 인간되지 못하고 자기의 단순한 생리적 문제를 해결치 못한 것을, 더욱 배배꼬이게 하여 복잡한 콤플렉스 속으로 빠뜨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진리라는 것,목적이라는 것, 기준이라는 것에 대한 부정이다. 아니 참된 긍정이란 없으므로 부정도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의 고통에 이유를 달지말고 해결하면 된다는 처방이다.

이런 이유에서, 한편으로 그는 진화론도 반대한다. 인간의 자기멸시 즉 현재 있는 그대로가 아닌 과거의 동물이었던 인간으로 바라봄과, 이런 독단론으로 인간을 해석하는 것이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고 결국 저편의 세계를 바라고 이 세상을 바로 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란다. 이 모든 일체의 진리의 추구를 그는 썩은 공기를 뿜는 수천년의 거짓말이라고 규정한다. 결국 목적점이 없어야만 인간이 위대하지도 비참하지도 않아야만 자유로와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에게 있어 이런 위버멘쉬(초인)이란 이런 도덕적 체계를 벗어난 창조적 인간이다.

진리란 없다. 목적이란 없는 셈이다. 오직 니체에게는 힘만이 있다. 증폭이 있다. 풀려난 힘의 의지와 위로의 상승이 있다. 그것은 더 높은(위버) 것인데 이제 허공 한가운데, 진리란 없다는 지점에 섰으니 어느쪽이 위인지는 모른다. 니체는 거꾸로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상관치 않는다. 그가 위라고 생각하는 위가 위다. 초인은 다른 인간이 보기에 동물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상관없다.  니체에게 더 강력한 비도덕적적 인간은 초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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