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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정편
존 바니언 지음, 황찬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나의 신앙 속에 구원에 대한 확신을 빙자한 안이함과 뻔뻔스러움이 있었음을 느끼게 해 준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의 길을 가라.] 성경은 늘 우리에게 머리가 쭈뻣하게 정신들도록 해 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소견에 좋은대로 살면서 걱정이 없다. 말로만 변명할 수 있다면... 신앙에 대한 것이면 모르는 것이 없지 않나? 이단적 위험의 감별과 新思潮의 맥락까지를 논한다면 아는 것으로야 수준급이라 할 수 있지. 그러나 과연 마음이 바뀌지 않았다면, 삶이 변하지 않으면서 판단만 드높은, 이 책에 나오는 '수다쟁이'가 빠진 오류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수다쟁이는 결국 하늘길이 아닌 곳을 향하던 인물이 아닌가?
이런 삶은 신앙의 핵심은 피한체로 정말 나의 정신 건강, 해나가는 일의 위로, '내 일'의 성공적 진행을 위한 축복으로만 신앙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니체가 역겨워하던 신앙의 모습은 사실 이 책의 순례자도 고개를 흔드는 것이기도 하다. 하늘의 축복과 땅의 지배권을 동시에 붙잡으려는 마음. 금욕과 선행의 이유가 내 안에 있는 심리적 이유들과 그 해결책 때문이라면 이런 발걸음은 올바른 목적지에 결코 다다르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부터 하나님은 내 머리 안에 갇혀 계시고 그분에 대한 생생한 두려움과 기쁨의 마음은 記述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순례자의 길 어디에서 잘못 들어 이런 지경에 왔는지는 모른다. 슬금슬금 신앙의 길과 나란히 가는 어느 길에선가 길을 잘못든 것일거다. 내 믿음이 다만 [죽음의 의미]를 획득하기 위한 위로책에 불구했다면 어떻게 위로의 한 단편이라도 맛볼 수가 있었을까?
이 순례의 마지막에 순례자Christian과 동행자Hopeful이 하늘성에 들어갈 무렵, 뒤에 남겨진 한 사람이 잊혀지지 않는다. Ignorance. 번역은 무지, 그의 이름은 무시이기도 하다.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사실은 뻔한 진실을 없는듯, 별것 아닌듯 하고 끝까지 살아버리는 삶이다. 그는 목적지의 바로 앞에서 나락의 구멍에 떨어뜨려지고 만다. 그리고 천로역정 정편은 순례자의 다음 독백으로 끝난다. [지옥을 가는 길은 멸망의 도시뿐만이 아니라, 천국의 문 옆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훌륭한 번역과 영문판의 삽화뿐 아니라 우리나라 옛 번역판의 한복입은 삽화가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신이 살아계시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자기 삶을 되집어보기 위한 일독을 권하고 싶다.